동이는 고증사극이 아니라 퓨전사극임을 이미 밝혔다.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별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지식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조선의 신분제도에 대한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조선왕조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골간이 되는 기본적인 사항이기도 하다.

동이를 감찰궁녀로 보내달라는 장옥정의 청을 받은 숙종은 중전을 찾았다. 중전은 숙종이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여 동이를 감찰궁녀로 입궁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12회 전반을 보면 이 교지를 중전이 내린 것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은 상황들이 계속 되는데, 교지는 당연히 중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감찰부 최고상궁조차 항명의지를 내수사에 전하라고 지시한다.

언문교지란 것 자체가 대비나 중전이 내린 것을 의미하는데, 궁궐밥 수십 년 먹었을 최고상궁이 내수사에 항의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최고상궁이 중전에게 읍소할 때 대비가 나타나서 장옥정의 천거로 내수사에서 동이의 인사이동을 한 것처럼 말한다. 교지란 왕이 신하에게 관직을 내릴 때 쓰는 문서라는 점을 잊거나 무시한 것이다. 내명부에 관련한 교지는 중전이 내린 것이다.

내수사는 왕실의 재산 및 노비를 관리하는 곳이니 노비신분인 동이에 대한 인사이동을 명한 것은 절차상 맞지만 내수사의 권한은 노비신분을 풀어주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궁녀가 된 동이에 대한 인사권은 없다. 이미 품계를 받은 동이는 내명부 소관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과정에 교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략되었는데, 바로 관례식이다. 생각시에서 궁녀가 될 때 왕의 여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관례식(성인식)을 치르기 때문이다.

한편 궁녀가 된 지 사나흘밖에 되지 않은 동이를 쫓아내기 위해서 유상궁은 감찰부의 시제를 이용한 함정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비와 병조판서까지 훌륭한 방법이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었다. 조선의 궁녀가 기본적으로 종신제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물론 조선의 궁녀들은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그것은 승진을 위한 시험일 뿐 자격시험은 아니다. 궁녀가 치르는 자격시험이라고는 생각시가 되기 위해 처음 궁에 들어와서 앵무새 피를 팔뚝에 떨어뜨려 처녀성을 점검하는 것이 유일하다. 물론 드라마의 극적 연출을 위해서 없는 퇴출시험이 있다고 인정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오류는 동이를 다시 장악원 노비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분사회에서 신분의 변동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교지를 통해서 품계를 받은 이상 동이는 더 이상 천민인 노비 신분이 아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한번 신분변동이 있었는데 시험 한번 잘못 봤다고 다시 노비로 퇴출된다는 것은 허구의 허용을 넘어선 오류이다.

때문에 동이가 시제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서 감찰궁녀의 자격을 잃고 궁녀의 직무처소 중 가장 낮은 세답방으로 보낸다면 모를까 다시 노비 신분으로 떨어뜨려 장악원으로 보낸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동이의 위기상황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신분까지 떨어뜨리겠다는 것은 과도한 설정이다.

인현왕후가 감찰부 최고상궁을 꾸짖는 장면에서도 나왔듯이 본래 조선의 궁녀는 공노비의 여식들로 구성되었다. 한번 궁에 들어가면 본인이 죽거나 노동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궁녀들도 사람인지라 잘못을 저지르고 또 게으른 자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궁녀들을 내쫓지는 않았다. 현실적으로도 적어도 10년 이상의 생각시 시절 동안 공들여 교육시킨 전문직인 궁녀를 쉽게 내칠 수도 없는 일이다.

10년 이상 걸리는 궁녀 교육기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조선의 궁녀는 500명 정도 수준으로 수가 넉넉하지 않았고 근무시간이 지금의 공무원보다 훨씬 더 적었기 때문에 궁녀를 시험 봐서 쫓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골탕 먹이고 모략하는 것이 낫지 이처럼 조선의 신분제도와 궁녀제도의 기본적인 사실조차 무시한 설정은 한참 물오른 동이에 빠져들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을 들게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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