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 홍반장. 아무도 생각지 못한 법의학 지식을 통해 두 번째 장옥정을 구해주게 될 동이는 오태석이 보낸 자객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빠지게 되지만 그곳에 홍반장 숙종이 나타났다. 아마도 옥정을 구해주지 못한 답답함을 풀러 잠행을 나온 길에 만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은근히 차천수를 기대했던 시청자를 슬쩍 머쓱하게 만들었다.

보통 사극에서 왕의 케릭터는 가면을 쓰고 연기해도 좋을 정도로 변화가 없다. 그러나 진작부터 파격을 일삼아 온 숙종은 동이의 위기 때마다 나타나는 홍반장까지 되었다. 어차피 탕약의 비밀을 밝힘으로써 노비에서 궁녀로의 일차 신분상승을 가져오게 될 동이가 그쯤에서 자기가 등을 밟았던 그 판관나리가 사실은 임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다.

내심 숙종이 좀 더 신분을 감추고 동이와 깨알 같은 몰래 데이트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지만 전과 달리 빠른 속도감을 보이는 이병훈 감독의 요즘 추세로 봐서 더 뜸 들이지 않고 정체를 드러낼 것도 같다. 물론 아직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아직 숙종과 동이의 감정선의 연결고리인 해금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옥정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 해금소리가 동이였다는 것을 아는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또 다시 위기의 동이를 구해준 숙종은 자신의 신분을 잠시 더 감출 가능성도 반반 정도로 갖고 있다. 어느 깊은 밤 홀로 해금을 타는 동이의 모습에서 풍산동이가 아닌 여인의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벌써 두 번이나 해금소리에 반응하는 숙종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 신비감 없이 동이를 만나게 된다면 많이 싱거운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이 짐작이 맞더라도 스포일러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숙종과 동이의 만남에 낭만을 얹기 위해서 장악원이 필요했고, 죽은 오라버니가 그 장악원에 다녀야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이의 아비가 대단히 뛰어난 오작인이어야 했던 이유가 10회에 와서 밝혀졌다. 죽은 자도 말한다는 법의학의 기본을 안 동이는 정말이지 대단하달 수밖에 없다. 서용기가 감탄한 동이의 법의학 지식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동이의 아버지 최효원이다. 비록 어릴 때지만 아버지에게 주워들은 지식으로 이미 장악원에서도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고, 옥정에게 들인 탕약을 달일 때에도 익모초 다루는 방법을 상궁에게 일러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었다.

자꾸 동이에 대해서 딴죽 거는 것 같아 초기에 제기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바로 신분제도 하의 직업선택의 자유에 관한 문제였다. 조선시대 신분은 보통 직업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비가 오작인이었다면 아들도 당연히 그 직업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정도의 예외는 고증의 심각한 오류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기도 하다. 어쨌건 간에 개인적으로 의문을 품었던 한 집안 두 직업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었다. 작가가 부분적인 허구를 통해 드라마 속 개연성의 구조를 치밀하게 고민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비에서 감찰궁녀가 되고, 그 후 숙종과의 낭만적인 만남을 위해서 동이의 아비와 오라비의 직업은 그토록 달라야 했다. 결국 동이의 행보에 따라 드라마는 베토벤 바이러스가 됐다가 이제는 법의학드라마 한양 CSI가 되고 있다. 동이 안에는 참 많은 것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버라이어티한 모습까지는 좋은데 동이가 감찰궁녀가 되고나면 애초에 장악원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궁중음악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겠다는 애초의 기획 의도는 이쯤에서 철회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이계진, 이희도 등 굵직한 중견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어 판단에 혼란을 준다. 개인적인 바람은 장악원에 대한 바람과 기대가 대단히 컸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미진한 모습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았고, 또한 제작진의 장악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의미를 주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속에서 재미를 끌어낼 수도 없기도 해서 향후 진행에 대해서 덤덤하게 된다.

동이는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서 어느덧 50부 중 20%를 소화해냈다. 시청률도 그 정도이다. 동이가 감찰궁녀가 되고 짐작대로 해금을 통해서건 다른 어떤 계기를 통해서 숙종의 사랑을 받게 되는 과정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아직까지는 착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는 지극히 멋지고 우아한 장옥정에서 악녀 장희빈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 변화를 통해서 인물들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여전히 고생을 도맡아 할 동이를 위한 지원군 서용기, 차천수 등에 의해서 시청자는 감정의 온탕과 냉탕을 들락거리게 될 것이다. 이제 1차 성장기가 끝내고 2차 성장기로 접어들 동이의 본격 궁궐생활사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과거 검계사건 또한 동이의 아비 최효원이 누명을 쓴 것까지 밝혀내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해 장옥정처럼 배후의 세력이라고는 없는 외로운 동이를 서용기가 자연스럽게 바람막이가 될 것이다. 초반에 다소 당황스러웠던 전제들의 이유가 하나씩 모두 밝혀지고 그 얼개를 촘촘히 이어가고 있다.

포도청 허섭 부장이 부른 그 노래가 뭘까?

서용기 종사관이 숙종을 만나러 간 후 동이를 집으로 돌려보낸 포도청의 고문관 부장이 혼자 웅얼웅얼 부른 노래가 있다. "갈까부다 갈까부다"하는 것인데, 마치 야근이 싫어서 집으로 가고 싶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 노래는 춘향이 옥중에서 이몽룡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말이 나온 김에 판소리 상식을 잠깐 더하자면, 판소리는 1인 종합예술로 소리꾼이 혼자서 노래와 춤 그리고 해설까지 한다. 여기서 노래는 사설이라 하고, 춤은 발림 그리고 해설부분은 아니리라고 한다.

또한 몇 시간이나 되는 판소리 한바탕을 항상 다 부를 수도 없기도 하지만 많은 사설 중에서도 음악성이 뛰어난 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즐겨 부르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 그렇게 해서 민요로까지 발전하기도 하는데 그런 토막노래를 판소리 눈대목이라고 한다. 그 허섭부장이 부른 갈까부다는 그러니까 판소리 춘향가의 눈대목이다. 사극을 즐긴다면 판소리 한대목 들어도 좋을 듯싶다. 안숙선 명창이 부르는 갈까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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