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KBS 노조가 공정방송을 기치로 파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이상한 것은 이 파업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혹은 선동하는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상파 티비 편성표는 온통 재방송으로 채워져 있는데도 이 또한 불편하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물론 외주로 제작되는 드라마와 예능은 파업에도 건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이 의아한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9년간 지상파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존재감이 없었는지를 말해주는 씁쓸한 사실이다. 한 달이 넘게 공영방송 3 채널이 온통 재방송으로 채워져도 불편함이 없다는 현상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가슴에 새겨야 한다. 심지어 뉴스를 녹화로 내보내는, 세계에 전례가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도 말이다. 그 원인은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도 추락에서 찾을 수 있다.

10일 JTBC에 대한 심층보도를 담은 <시사IN> 기사를 통해 몇 가지 숨어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시사IN>이 여론조사업체인 <칸타퍼블릭>과 함께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들 중 89%가 두 공영방송의 파업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노조의 주장을 더 신뢰한다는 응답(62.3%)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13.6%)보다 압도적이라는 사실에는 희망과 기대를 가져도 좋을 희소식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KBS·MBC 공동파업과 언론노조 총력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분명 시민들은 현재의 아니 지난 9년간의 공영방송들이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조용히 정상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해석도 분명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긍정적 해석에만 몰입된다면 그 조용한 기다림 속에 숨어있는 다른 의미 혹은 더 무거운 진실을 놓칠 수 있다. 파업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KBS와 MBC 뉴스를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인 것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공영방송은 드라마와 예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평가라는 것이다.

특히나 조선일보와 더불어 가장 불신하는 매체로 꼽힌 MBC의 경우 더 심각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가장 신뢰하는 방송으로 14.7%가 MBC를 선택했는데 2017년에는 고작 2.5%만이 그렇다고 인정한 것이다. KBS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07년 21.8%로 현재 JTBC가 얻고 있는 24.7%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2017년의 KBS는 7.1%의 신뢰를 얻는 데 그쳤다.

신뢰도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방송 특히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믿지도 않을 뉴스를 굳이 볼 이유는 없다. 때문에 파업의 불편이 그만큼 적다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은 공정보도를 하겠다는 두 공영방송사 노조의 말을 믿고 지지하지만 그 결과가 기대한 만큼이 아니라면 언제든 안 보겠다는 조용하고 준엄한 경고가 담겨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9년간 안 봤고, JTBC가 있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있는데 새삼 KBS, MBC가 진짜 제대로 될 때까지 안 보는 게 별 일 아니라는 것이다. 한 달 넘게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는 매정한 말을 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싸움이 길어지고 고될수록 시민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의심과 우려를 한시도 잊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가장 절실할 때라야 더 깊이 새길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승리를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촛불혁명 이후 여론 형성의 헤게모니는 언론에게서 집단지성인 시민에게로 이행됐다고 봐야 한다. 또한 현재도 진행 중이다. 부분적으로는 언론과 시민의 충돌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런 현상은 특히 진보언론과 진보독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사IN>의 보도 안에는 진보성향 독자들이 신뢰하는 언론에서도 JTBC는 16.3%에서 49.7%라는 비약적 증가를 보인 반면 한겨레는 11.5%에서 6.2%로, 경향신문은 4.1%에서 1.9%로 급락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방송 종사자와 시청자 사이에 방송 정상화에 대한 다른 기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언론노조 KBS본부 강윤기 정책실장은 <시사IN>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9년 동안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못한 것에 대한 꾸짖음인 동시에,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싸움이 정당함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언론노조 MBC본부 허유신 홍보국장도 "그동안 MBC가 걸어왔던 길에 비추면 참담하기 그지없지만, 앞으로 다시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조사 결과다. 아프게 맞겠다"고 말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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