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파격이 거침없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풍산동이 한효주의 케릭터는 사극에서 보기 힘든 대단히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데, 그보다 훨씬 아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인 케릭터로 변신한 숙종에게 마침내 누리꾼들은 '허당숙종'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말았다. 숙종은 운석조각으로 관자를 만들어 흉조 운운하며 장옥정을 음해하려던 서인들을 일축하던 유머러스한 통치스타일이나 궁녀들에게 손 인사를 나누는 로맨틱한 모습보다 훨씬 더 비약적인 파격을 보여주었다.

입궁하자마자 벌어진 음변사건으로 인해 장옥정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고, 숙종은 의금부와 사헌부에 원인을 당장 찾아내라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 사건의 와중에 동이는 장옥정 처서를 기웃거리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외딴곳 헛간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에서 편경장인의 죽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노비다운 억척스러움과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집념이 강하고, 겁도 없었던 당찬 동이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음에도 음변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 헛간을 또 찾아나섰다.

한편 의금부 등이 음변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자 숙종은 직접 나섰고 마침내 허위신고로 여길 수 있었던 사소한 일조차 놓치지 않았던 포도청 서용기와 만나게 된다. 서용기를 신뢰하면서도 사안이 워낙 시급한 터라 숙종은 호위 몇 명과 함께 직접 그 헛간에 들러 단서를 찾아보는데 마침 들이닥친 정인국의 수하들과 싸움이 벌어진다. 그때 헛간 안에서 마주치게 된 동이 덕분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헛간 안에서 발견한 암염 조각과 동이가 그동안 추적한 내용들로 인해 음변의 결정적 원인에 바싹 다가서게 되었고, 그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서 동이와 함께 담까지 넘게 된다. 이렇게만 서술하면 아무런 일도 없었으나 실제로는 헛간을 탈출하고 동이와 함께 담을 넘는 과정에 지금까지 사극을 통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동이와 함께 헛간을 도망쳐 나와서는 얼마 못가서 주저앉는 저질체력을 보이는 숙종은 "난 이렇게 뛰어본 적이 없다"고 엄살을 떤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임금이 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행 나온 임금이 신분을 밝힐 수도 없는지라 한성부 판관이라 둘러댄다. 그 바람에 동이가 장악원 노비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간 동이가 알아낸 것을 확인하기 위해 괴한들의 본거지까지 간다.

술시에 배를 타고 한양을 빠져나가기로 한 그들을 막기 위해 동이는 그 집 담을 넘으려 하는데 군사를 부르러 떠났던 숙종이 다시 나타난다. 아무래도 여자인 동이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역시나 자상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숙종대왕이시다. 그러나 누구한테 친절을 받아본 적 없는 천비 동이에게 그런 모습은 그저 한심해 보이는 양반짜리로 보일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기왕 그렇게 된 거 암염을 없애려고 연못 앞에 둔 것을 안 동이가 담을 넘어 증거를 확보하자고 한다.

담을 넘으라는 동이의 말에 숙종은 또 역시 담을 넘어본 적 없다고 하자 동이는 그럼 자기가 넘을 테니 엎드리라고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임에도 허당 숙종의 코믹스러움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결국 담을 넘어 버려지기 전의 암염을 확보까지 했으나 결국 괴한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여기에서도 허당 숙종은 검을 쥐고도 실전 경험이 없다고 동이에게 말한다. 그러나 숙종이 지나는 행인에게 발병부(왕이 군사동원을 지시하는 패)를 서용기에게 전해주라 하고 다행히 곧바로 포청을 찾아갔기 때문에 별탈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장옥정을 모함하고자 마련된 음변의 실마리가 풀리는 동시에 숙종과 동이 그리고 장옥정과 동이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됐다. 그런 과정이 긴장감보다는 숙종의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포복절도를 뛰어넘어 통쾌함마저 주고 있다.

아무리 미행 나온 왕이라 할지라도 여노비 앞에 무릎을 꿇는 상황은 상상도 못한 파격이었다. 왕조를 배경으로 한 그간의 사극에 익숙해진 시각에서는 납득할 수 없기도 하고, 실제로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허당 숙종의 케릭터 설정과 음변의 음모를 파헤쳐야 한다는 절박감이 버무려져서 개연성을 따지기도 전에 어어 하다가 당해버린 꼴이 되었다.

노비에게 꾸중을 듣고, 결정적으로 계집종 앞에 무릎을 꿇은 사극 사상 최대의 굴욕을 당한 숙종은 굳어져가는 허당 케릭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려심이 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노비인 동이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사나이의 기세를 잃지 않고 있어 호감을 끌어올렸다. 이런 숙종의 케릭터가 앞으로 남은 드라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음변의 음모를 밝혀내고 또한 동이를 알게 된 이상 숙종이 용포를 벗고 잠행을 나와서 이번 같은 봉변을 당할 일은 없기 때문에 6회의 해프닝은 아쉽(?)게도 다시 보기 힘들 것이고 대신 애초에 보인 유머러스하고 로맨틱한 군주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으로 짐작된다. 파격은 어쩌다 한번의 파괴력으로 족하기도 하거니와 숙종이 더 이상 가벼워지면 극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탓이다.

그렇지만 허당 숙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일단 낮은 연령층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초반의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를 천방지축 동이와 더불어 일신해주었다. 다시 지엄하지만 부드러운 왕의 모습으로 돌아가 치명적 귀여움을 가진 동이와의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허당숙종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병훈표 사극의 파격적 변화가 동이의 시청률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지만 일단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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