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의 페이스북 글에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법적대응을 예고하고, 이에 다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반발하면서다.

정진석 의원의 글이 문제가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정진석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를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해 서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측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글 자체도 문제지만 그 너머를 직시해야 할 필요도 있다. 애초에 정진석 의원이 문제가 된 표현을 쓴 것은 ‘정치보복’을 논하려 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보기관을 동원한 권력남용에 대한 수사 움직임을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려다 헛발질을 한 것이다. 정진석 의원은 이후 해명(?)글에서도 “최대의 정치보복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라는 박원순 시장의 말에 반박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정진석 의원의 인식은 한국 정치가 선호하는 문법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진석 의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 ‘이명박 정권이 정치보복을 한 일이 없는데, 문재인 정권은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된다. 일상어법의 차원에서 이 문장을 뒤집어보면, 이 주장의 전제가 ‘정치보복을 했다면, 정치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임이 드러난다. 내가 한 대 때렸다면 너도 한 대 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정치는 편을 갈라 싸우는 이전투구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후 이어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보수진영의 대통령들은 마치 나쁜 짓을 하려고 정권을 잡은 양 무차별 조롱해대며 구악의 상징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노’자만 꺼내면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죄를 지은 양 발끈하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난리를 친다”고 썼다. 왜 ‘너는 되고 나는 안 되느냐’는 것이다.

또, 장제원 의원은 “보수진영의 대통령들을 조롱하고 박해하면 할수록 자신들 진영의 전, 현 대통령에 대한 막말과 비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이제 그만합시다”라고도 했다. ‘네가 안 때리면 나도 안 때리겠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피장파장의 오류를 몇 겹에 겹쳐서 쌓아 올리는 건 한국 정치의 일반적 문법이 된 지 오래이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자유한국당 서청원, 정진석 의원이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권이 좌파 연예인 TF와 블랙리스트를 통해 국가정보원을 국내정치에 개입토록 한 이유는 그 자신들이 이런 문법의 신봉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대통령 취임 직후에만 해도 대통령 선거에서 600만 표 이상의 차이로 정권을 되찾았다는 승리의 기쁨에 젖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 2008년의 광우병 촛불시위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 사태를 통해 온라인 공간의 여론이 여전히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보수세력에게 온라인 공간은 오랜 기간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2002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이회창’이라는 이름 석 자로 불리지도 못했다. 노사모와 ‘노풍’으로 대표되는 여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귀족 대 서민’의 프레임에 빠져 나오지 못해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결국 정권 탈환에 실패했다. 보수세력은 이 때부터 인터넷 공간에 대해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다. 이명박 정권에게 2008년 촛불시위는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 결정타’였다.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였다.

이명박 정권은 크게 두 갈래로 이 상황에 대응했다. 하나는 인터넷 공간의 여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거였다. 이는 국정원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각종 공작과 민간인까지 동원한 여론조작팀의 운영으로 구체화됐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활동이 정당화될 수 있도록 이 사태의 ‘불순한 배후’를 상정하고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이었다.

‘배후’로 지목된 것은 전직 대통령이었다. 정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봉하마을이 촛불시위에 쓰인 초를 다 댔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전직 대통령 정도는 돼야 ‘배후’의 지위에 걸맞는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지금의 여당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정보기관을 필두로 한 정부 관련 부처들이 이런 황당한 인식에 코드를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이유는 이 상황 자체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겨레는 2012년 총선 한 달 전 작성된 군 사이버사령부 내부 문건에 심리전단 인원의 증편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지시했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25일 지면에 보도했다. 이 문건에는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가 “주요 이슈에 대한 집중 대응 요구”를 했으며 이 ‘주요 이슈’에는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탈북자 인권 문제 등이 포함된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가 여론 조작 전반을 지시하고 일상적으로 관리했다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행태는 당연하게도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정보기관은 그 특성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더욱 철저히 법에 의한 통제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보복을 했다는 맥락과는 관계가 없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자는데 ‘정치보복’만 되풀이해 말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냉소적 인식만을 확산시킬 뿐이다.

황당한 것은 보수세력의 기만적 논리를 공론 조성의 책임을 져야 할 언론이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25일 사설을 통해 “비극적 최후를 맞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부부싸움’ 운운한 정 의원의 태도는 바르지 못하다. 그렇다고 과거 보수 정권을 애초 ‘적폐’로 몰며 사전 각본이라도 짠 듯 일사불란하게 칼날을 들이대는 여권 행태도 문제다”라며 “부처마다 편 갈라 과거사나 파헤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시국인가. 또 부처 내 분열과 이반은 어쩔 텐가. 위원회를 주로 진보 성향 인사로 채운 점도 걱정”이라고 썼다. 정부 여당과 자유한국당의 태도 모두가 문제라면서도 여전히 사건을 ‘똥 묻은 개와 똥 묻은 개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다른 보수언론들도 꾸준히 내놓아온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의혹은 박근혜 정권에서 수사를 한 결과 혐의가 없는 걸로 밝혀졌는데도 문재인 정권이 이를 재론하는 것은 정치보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둥의 내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엔 밝혀낼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들이 연일 그야말로 ‘발굴’되고 있다. 오히려 언론이 물어야 할 것은 왜 이런 사실들이 박근혜 정권에선 밝혀지지 않고 문재인 정권에 와서야 밝혀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정치보복’으로 만들고 문제를 그냥 두자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시스템을 위협하는 망가뜨리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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