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한 보수신문 논객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기화로 시국선언에 동참한 지식인들의 태도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 논지의 핵심만 추리면 대략 이렇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부 대학교수들의 릴레이 시국선언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선동에 휘둘리고 미망에 빠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란 객관적 사실은 몇 차례의 상징조작과 논리비약을 거쳐 이제 반정부 투쟁의 대의로 탈바꿈했다.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야 할 교수들마저 이런 무책임한 선동에 휩쓸려 시국선언이란 걸 줄줄이 내놓고, 여기서 빠지면 흡사 지식인 축에 끼지 못할까 안달이니 딱한 노릇이다.” 시국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교수들을 ‘무책임한 지
최근에 주목한 두 가지 발언이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다. 하나는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국정감사 때 한 발언이다. "4대강 사업의 목표가 수질만이 아니다. 수질만 갖고 따지면 지금 하천 그대로 두는 게 낫다." 정부 여당 공히 4대강 사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수질 개선을 꼽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관계부처 장관의 이런 발언이 가진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또 하나는 11월 20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김성조 정책위의장이 한 공개 발언이다.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4대강 하천 정비를 마무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어떻게 운하로 변질될 거라 생각하는지 정말 갑갑한 노릇이다. 정말 4대강이 운하로 변질되기 위해서는 차기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대운하
일본의 원로 중국 연구자 미조구치 유우조(溝口雄三)는 ‘중국의 충격’이란 말로 현재의 아시아 내지 동아시아 상황을 문제화한다. 그는 일본인의 ‘탈아시아’ 인식과 현실적인 ‘아시아’ 즉 일본인이 아시아에 의해 리드당하기 시작했다는 상황 사이의 미묘한 갭,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인식상의 이중의 갭을 ‘중국의 충격’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 ‘환중국권’(環中國圈)의 형성을 내세운다. 중국의 농촌문제와 일본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상호 연동되어 있는 현상 등은 현재 동아시아가 ‘환중국권’이라는 경제관계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증거이며 주변 국가들을 다시 주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가설적인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분석을 중국위협론의 시각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정말 재밌게 됐다. 원래 낙하산을 투여할 것일랑 이정도 스펙터클은 보여줘야 제 맛이다. 사실, 이병순은 낙하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성능이 떨어져 지금 던진 것이 낙하산인지 아니면 낙하산을 던지려다 실패해 그냥 손에 잡힌 것을 던진 것인지 애매했다. 방송특보 출신, 그것도 그냥 방송특보의 1/N이 아니라 전체 방송정책을 총괄했다는 이. 인수위에도 가뿐히 들어갔었던, 그리고 그걸 KBS 사장이 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하는 뻔뻔함을 겸비한 이. 누구랄 것도 없이 MB가 가장 아끼는 언론계 인사라고 이구동성을 외치는 김인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이 결국, KBS 사장이 됐다. 절치부심 1년 만이다. 결선 투표까지 가긴했지만,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이병순 사장의 연임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예측을 부끄럽게
조선과 동아가 발작을 일으켰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해 정통성이 북에 비해 부족하다는 좌파사관의 확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동아일보는 사전이 발간된 바로 다음날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노린 좌파 사관 친일 사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조선과 동아를 제하고도 사전 발간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만한 논란을 일으켰다.조선과 동아를 비롯해 사전에 등재된 당사자의 후손은 물론이고,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네티즌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친일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자극적인 용어인듯하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정치적 올바름, 민족 정체성, 국가 정당성과 관련된 논의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State of Denial. 워싱턴 포스트의 전설적 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의 백악관 비사를 담은 책의 이름이다.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세 권의 시리즈 중 마지막에 속하는 이 책은, 백악관 내의 의사소통이 부재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내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만약 누군가 참여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대해 책을 쓴다면 역시 같은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State of Denial. 어떤 면에서는 부시 정부보다 못하다. 노무현 정권은 대체 왜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하는지,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못한 채 순식간에 협상단을 파견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영국 런던 로햄턴 연구소의 스포츠발전연구 센터소장을 역임한 개리 워널이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과 관련한 에세이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 “대중언론의 처벌, 구원 그리고 찬양”인데요. 국내에는 “스포츠 스타”(2002, 이소출판사)로 번역된 책의 한 챕터로 나왔습니다.내용은 한 마디로 “스포츠 스타에 대한 미디어의 감시, 그리고 그것을 처벌하는 대중”, 뭐, 이런 것인데요. 확실히 오늘날 ‘스타’로 대표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그리고 몇몇 정치인들은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시의 망’에 포섭되어 있는 듯싶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역시, 그러한 대중의 감시망에 걸려 ‘처벌’받고, 지속적으로 감시받게 될 운명에 처한 한 선수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시계가 거꾸로 가는 모양이다. 20, 30년전 군사독재 시절에 보았던 모습이 자주 목도된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거나 정부정책을 반대하면 마구 잡아 가둔다. 경찰의 곤봉과 검찰의 공소권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형세다.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나 있는 사문(死文)일뿐이다. 집권당도 다를 바 없다. 국회에서 다수의 힘이 날치기로 밀어붙이면 그것이 곧 법이다. 절차상의 불법, 위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옛날 관권-금권선거로 태어난 국회와 너무나 닮은꼴이다.7월 22일 국회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소관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않은 신문법-방송법개정안을 의장직권으로 상정하고 제안설명, 심의절차, 질의토론도 생략한 채 날치기 처리했다. 표결절차도 위법 투성이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하고 재투표를 실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아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데 큰 원인이 있는 듯하다. 지역-계층간의 발전불균형에 따라 박탈감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벌-연고사회와 부패구조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기회를 주지 않는데 따른 배반감도 큰 원인이다. 자녀양육비, 사교육비로 봉급을 몽땅 바치는 현실이 행복감을 앗아간다. 내 집 마련의 기회는 멀어지고 셋방으로 전전하는 신세가 슬프다. 지역-외모차별도 일조한다. 정치권력의 반민주적-반노동적 행태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날로 높아지는 자살률이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는 증좌이다.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조사가 나왔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0개국 중 최하위권인 25위라는 조사가 그것이
한국 언론의 정파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의 정파성 혹은 정파적 보도는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은 20세기 초 대중지 시대가 열리면서 뉴스의 상업화 차원에서 어떤 정파의 편도 들지 않는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만,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이보다 더 다양한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정파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파적 보도에 대한 평가도 다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언론이 왜 정파적 보도를 하는가에 대한 이유인데, 첫째로 이념적 도구로서 언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중동과 같이 보수신문들이 규제 없는 시장자유를 주장한다거나 북한에 대해 부정적 글쓰기를 하는 것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이념적 성향과 연관 지어 뉴스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비즈니스적 차
16일자 경향신문 1면은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그것은 정운찬 총리의 쓰임에 관한 거의 모든 설명이었다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유망한 경제학자, 야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를 거쳐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를 수행하고 있는 그의 역할과 위상 그리고 너무나 명백한 한계까지. 어제, 경향신문 1면은 압축과 집약의 묘로 그를 펼쳤다. 경향신문 1면 헤드라인의 제목은 이었다. 그리고 헤드라인과 병렬로 정운찬 총리가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으로는 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3개의 기사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다. 누구나 에이스급 투수인줄 알았던 정운찬이 사실은 원 포인트 릴리프(one point re
-‘블랙홀’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에 앞서- 내가 밴드 ‘블랙홀’을 직접 알게 된 것은 2000년 초 문화연대에서 시작했던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을 주도할 때 즈음이었다. 물론 그 전이야 이 밴드의 음악과 명성을 음반으로만 알고 있었던 차였는데,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에 ‘블랙홀’ 팬클럽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블랙홀’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요 순위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팬덤은 서태지, 이승환, GOD 그리고 블랙홀 팬클럽이었는데, 1년이 넘은 이들과의 연대활동은 지금도 내가 했던 많은 활동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0년 같은 해 팬클럽 회원들과 ‘블랙홀’의 단독 라이브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이들의 음악적
정부는 아프간 재건을 위해 130명 규모의 ‘지방재건팀(PRT)’을 파견하고 이들을 경호하기 위해 300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할 예정이라고 한다. 2002년, 2003년에 파병했다가 2007년에 철수한 의료지원단과 건설공병지원단의 숫자가 2백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병력 규모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군대의 성격도 사뭇 달라졌다. 전투를 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군대를 파병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군대가 비전투 임무만 수행할 것이고 자체 방어 이외의 군 전투는 피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지난 2007년, 아프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몰랐던, 아니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부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선교 활동에 나섰던 이들이 납치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일이 있었
사회를 변화하는데 있어 운동선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전부터 가져왔던 의문이었습니다. 사실, 운동만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현 체제 내에서 운동선수의 사회변혁적 힘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이 가지는 명사성(celebrity)과 미디어의 관심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힘을 전혀 기대하지 못할 바도 아닌 듯싶습니다. 오늘은 사회변화를 위한 스포츠의 역할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사회를 변혁해보려 했던 지난 68년의 멕시코 올림픽 사례를 중심으로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인종차별에 저항한다!먼저 사진을 보시죠. 낯익은 사진인 분도, 처음인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무슨 시상식 장면인 것 같은데요, 신기하죠? 흑인 두 명이 손에 검은색 장갑을 끼고 번쩍 들고 있고, 고개는 숙이고
지난 7월22일 한나라당이 날치기 기도한 신문법․방송법 개악안은, 하루 전인 7월21일 한나라당이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최종안이 아니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요구로 생색내기 차원에서 포함된 매체합산 점유율 30%, 미디어다양성위원회 설치 등이 포함된 수정안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지난해 12월부터 고집해온 원안이라는 것이다. 물론, 수정안이나 원안이나 '오십보 백보'이다. 매체합산점유율 규제는 속빈 강정이고, 미디어다양성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절차는 위법․위헌인데 그 절차의 결과물은 무효는 아니다'는 헌법재판소의 10월29일 엽기적인 결정과 관련지어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무효는 아닌, 그렇다고 유효하다고 할 수 없는' 결과물이 원안이냐, 수정
쓴웃음이 나왔다. ‘조중동’에서 관련 미디어렙 관련 TFT를 꾸렸다는 얘기와 진성호 의원(한나라당)이 냈다는 미디어렙 관련 법안 내용을 접하고 나서다. 진 의원의 법안에 올인하는 조중동, 진 의원과 같은당 소속 한선교 의원의 법안에 정력을 쏟는 SBS, 아니 정확하게는 SBS를 자회사로 거느린 윤세영 회장이 지배하는 SBS홀딩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한 의원 법안대로라면, 51%까지 소유할 수 있을뿐더러, SBS뿐 아니라 유료방송에 진출한 계열 PP와 인터넷 분야까지 포함하는 크로스미디어 판매도 열려 있다. 종이신문이나 인터넷 광고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며 이윤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역민방 네트워크를 ‘필요악’에서 ‘불필요악’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그 어느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이나 지향하는 가치관도 각양각색이다. 성격따라 취향따라 가치관에 맞는 일을 직업까지 연계해서 한평생 그 일만 하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때론 이런 이상과 무관하게 직업이란 걸 밥벌이삼아 보내기도 한다. 어린이와 관련된 일이나 복지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들은 소명감이 투철한 사람들이라고 감탄하곤 한다. 사실 내 아이도 기르기 힘든데 남의 아이를 변함없는 사랑으로 품고 가르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일찌감치 결혼해서 연년생으로 딸아들 기르던 친구는 항상 이렇게 단언하곤 했다. “야, 애낳고 기르는 거, 그거 드라마처럼 고상하고 우아하게 ‘그랬니? 저랬니?’ 이렇게 안된다. 뭐 교양? 애가 말 안 듣고 징징거려봐라.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게 애 키우는 거다. 애 키우는
*스포일러 많음영화 를 본 이들은 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먼저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고들 했다. 에서 여성의 시각을 바탕으로 수컷의 욕망을 계보학적으로 밟아 올라갔던 박찬옥 감독이 7년 만에 나타나 형부와 처제의 금기된 사랑을 다룬다! 그것도 '탐나는 도다'에서 싱그러우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잔뜩 뿜어냈던 서우가 출연한다! 커다란 눈망울을 물끄러미 뜬 서우가 "이 사람 사랑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지 않는 듯 말하는 포스터까지! 영화가 극단적인 욕망의 소구점을 한껏 파고들어가 줄 줄 알았는데… "낚였다"며 허탈해 했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등장하는 안개처럼 그저 뿌옇다고도 했다. 인물 간의 감정 교차가 명확지 않았고, 오가는 대화조차 겹치지 않고 따로 논다는 푸념이었다. 영
어디 정치인뿐이겠는가.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항상 양지에서, 오르막을 오르며 생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류 공통의 아주 보편타당한 이기심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 인생이 있겠는가. 모두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어떤 정치인도 항상 양지에서 오르막의 흐름으로 경력을 이어갈 순 없다. 특히나 '대운'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오르막은커녕,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리막과 음지의 연속에서 비운과 시련의 쓴 국물을 삼켜야 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곱절은 길다. 그러다가, 대운이라는 것이 그렇듯, 순간엔 알 수 없고 돌이켜봐야 알게 되는 어느 한 순간이,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듯 극적인 순간으로 치환되고, 때마침 그때 내리막과 음지에서
세상에서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가령 지난해 대학 입학을 앞둔 조카가 교대와 어지간한 기업은 입사가 쉽게 된다는 실용 대학을 놓고 고민할 때 난 주저 없이 말했다. ‘조카야 니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올 때면 초등학생의 수는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고, 실력 빵빵한 니 선배세대부터 밀린 교대생들의 적체는 끔찍할 정도일 것이다. 삼촌은 그냥 취직 걱정이 덜한 곳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고 충고했다. 다행히 조카는 삼촌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대학으로 진학했다. 한 학기 동안 실기가 부족해서 고생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다. 내가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10년 후 이 땅에서 벌어질 출생률 저하에 따른 후유증은 눈에 보듯 선하다. 각종 출산 장려책을 내놓아도 아이 낳기를 꺼리는데 지금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