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추진 중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개편 법안에 대해 비판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공정성' 심의 기능을 제외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제기된다.

공정성 심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의결 요건을 만장일치로 규정하거나 법정제재를 내릴 수 없도록 규정,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권력이 방송심의 규정을 악용, 언론·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통합형 자율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언론개혁정책집단 '세움'과 민주당 이훈기·조국혁신당 신장식·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이 주최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위한 방통위·방통심의위 개편방안'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29일 언론개혁정책집단 '세움'과 민주당 이훈기·조국혁신당 신장식·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이 주최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위한 방통위·방통심의위 개편방안'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김현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부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대표발의한 시청각미디어통신위 설치법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 건전성 심의를 규정했다. 시청각심의위 위원장은 '정무직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탄핵소추의 대상이 된다. 또 시청각심의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할 수 있고, 소관사무에 대해 국무총리에게 의안 제출을 건의할 수 있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시청각심의위의 독립 민간기구 성격은 유지되며 위원장에 한해 견제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독립 민간기구로서 위원장을 비롯한 임직원의 신분은 공무원이 아니었다.

김 의원 법안은 지난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심사소위 논의 과정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정책 기능이 제외됐다. 문화체육관광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와 플랫폼업계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법안의 명칭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으로 변경됐다. 추석 전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을 마치겠다는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계획은 변동이 없다.(관련기사 ▶김현 방통위 개편법에서 'OTT 정책' 빠진다)

김춘효 '세움' 정책위원(매체정치경제학 박사)은 28일 '독립성과 전문성을 위한 방통위·방통심의위 개편방안' 토론회에서 "방통심의위의 공정성 심의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언론개혁정책집단 '세움'과 민주당 이훈기·조국혁신당 신장식·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김춘효 위원은 "자유민주주의를 정치 체제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 국가가 방송내용 심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 대부분 방송사 내부의 자율심의체제를 관리·감독하는 간접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며 "한국의 공영방송과 종편이 자체 심의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비록 당장은 다소 미흡하더라도 이를 강화·발전시켜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김춘효 위원은 공정성 심의를 통해 방통심의위가 보수정권의 '호위무사'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방통심의위의 심의 임무는 사전심의가 아닌 사후심의다. 하지만 심의 기준과 진행 절차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심의기관의 자의적인 선택에 따라 프로그램 심의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

김춘효 위원은 "보도·시사·교양프로그램은 정치적·사회적 민감성을 지닌 사안이 많아 정치적 편향이나 특정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있고, 이에 따라 집권여당의 정치적 주장과 정책에 부합하는 심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여기에 방송심의 기준마저 포괄적이고 불명확해 공정성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춘효 위원은 방송심의 제도에 대해 방송사의 자율규제를 사후관리하는 수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은 "심의 원칙과 운영지침서를 각 방송사에 제시하고 이를 사후 관리·감독하는 간접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미국과 영국처럼 시청자의 직접적 민원이 제기될 경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를 공개적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주권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정청래 당대표(가운데), 최민희 위원장(오른쪽), 김현 부위원장(왼쪽)이 자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주권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정청래 당대표(가운데), 최민희 위원장(오른쪽), 김현 부위원장(왼쪽)이 자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세움' 이강택 연구위원(전 TBS 사장)은 1987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페어니스 독트린'(fairness doctrine·공정보도원칙) 폐기를 거론하고 "만시지탄이지만 우리에게도 공정성 심의 폐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강택 위원은 "정치적 공정성 심의의 역기능은 순기능에 비해 너무나 크다"며 "이런 것을 놔두고 '정권이 바뀌었으니 심의위원장을 국회가 견제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적어도 우리 집권 시기에는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강택 위원은 "정치적 공정성 심의를 통해 한국 사회가 얻은 이득이 무엇인가. TV조선 등 종편에 대해 일정한 효과를 거두지 않았느냐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데, 실제로 그랬나"라며 "집권세력에 대한 약간의 (비판적)논조 완화 효과를 누렸을 수 있지만 이게 정말 한국의 언론 생태계에 건강한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됐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강택 위원은 "방통심의위는 인적 구성에서부터 말이 안 되는데 누가 누구를  심판하고 재단하나"라며 "사실상 가장 낙후되고 문제있는 정치가 정파성을 갖고 심의를 한다. 국회가 (방통심의위를) 견제할 수 있으면 이런 문제가 완화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오만한 태도이고 내로남불"이라고 했다. 

이에 이남표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는 공정성 심의를 완전 폐기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남용될 수 없도록 '만장일치'를 제도화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남표 교수는 "미국에서도 페어니스 독트린을 다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현재 공정성, 객관성, 토론 프로그램 균형 관련 조항이 있는데 여기에 '행정처분을 내리는 심의·의결을 하려면 전원일치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한 줄 넣으면 된다. 만장일치를 하게 된다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강택 위원은 이남표 교수의 방안이 과도기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동의했다. 이강택 위원은 "바로 공정성 심의를 폐기하기가 어려우면 행정지도에 그치게 하는, 정치적 공정성을 이유로 법정제재를 못하게 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정수영 언론학 박사는 공정성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자율규제 체계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정수영 박사는 "공정성 항목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공정성이라는 항목을 없애면 남아 있는 또 다른 항목을 정말 창의적으로 활용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과거 '무한도전'은 오락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단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비판적인 얘기를 했다'며 심의·제재를 했다"고 지적했다.

정수영 박사는 "공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악용 소지가 많기 때문에 심의 조항을 없앤다면 그럼에도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언론 스스로 제대로 된 자율심의를 하고 사회적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통합형 자율규제 기구 모델은 왜 안 됐을까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정수영 박사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와 민간방송연맹이 공동으로 설립한 자율규제 기구 BPO(방송윤리프로그램향상기구)를 사례로 제시했다. 정수영 박사는 "일본은 정부에 의한 심의가 위험하다는 비판만으로 끝내지 않고 통합형 자율기구 모델을 만들었다. 기구 예산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사들이 각출했다"며 "시청자들이 방송사에 민원을 제기하고, 방송사와 시청자 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BPO로 민원을 제기한다. BPO에는 3개의 소위원회가 있는데 여기서 심의·조사를 해 권고 의견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 

지난해 1월 3일 서울 양천구 목동 코바코 한국방송회관 앞에서 열린 '류희림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미디어스)
지난해 1월 3일 서울 양천구 목동 코바코 한국방송회관 앞에서 열린 '류희림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미디어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입법 순서가 꼬여 심의기구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통합미디어법을 논의하고 규제체계를 개편해 미디어 진흥을 중심으로 제도의 무게추가 이동해야 한다"며 "현재의 디지털미디어 환경은 행정기관 홀로 커버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규제하기 어렵다. 행정규제와 자율규제가 조화롭게 맞물려야 한다"고 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정책 기능이 문제가 되어 제외되는 방식으로 (입법논의가)진행되고 있다"면서 "시청각미디어법을 만들어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포섭한 이후 규제목적과 체계를 먼저 정하고, 이에 맞춰 기구 설치법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논의 순서를 뒤집으니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민주당 언론개혁특위에서 온라인상 허위·조작·혐오·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형 DSA(유럽연합 디지털서비스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방통심의위의 역할·기능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며 자율규제와 행정규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논의부터 해야한다고 했다. 유럽은 국가가 직접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사업자를 통해 규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김동찬 위원장은 "디지털서비스법과 같은 사업자 중심의 규제 방식은 기존 방통심의위와 중복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방통심의위 역할을 사업자 규제를 관리·감독하는 역할로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런데 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방통심의위가 무엇을 더 심의하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추진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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