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세계일보 안에서 통일교의 간섭을 배격하고,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 27기 기자들은 편집인과 국·부장단이 통일교 옹호 기사를 방기했다면서 “부끄럽지 않은가. 우린 부끄러워서 분노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 1월 입사한 세계일보 27기 기자 11인은 6일 <지면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명 성명을 사내에 게재했다. 그 옆에 막내 기수인 28기 기자들의 성명 <이제 다시,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스러움을 가지게 해주십시오>가 확인된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기수별 성명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27기 기자들은 지난달 23일자 1면에 배치됐던  김민지 한국평화종교학회장·선문대 교수의 특별기고문 <특검의 과잉수사, 마녀사냥 안 된다>에 대해 “기자들의 반발에도 그 글은 결국 신문 한구석을 차지했다”고 가리켰다. 특별기고문은 편집부장된 회의를 거치지 않고 1면에 게재됐다가 기자들이 반발하자 2판부터 오피니언에 배치됐다.

세계일보 사내에 나란히 게재된 28기, 28기 기명 성명서 (사진=독자 제공)
세계일보 사내에 나란히 게재된 28기, 28기 기명 성명서 (사진=독자 제공)

27기 기자들은 “편집인은 ‘재단으로부터 요구를 받은 게 아니라 내용이 좋아 보여서 1면에 넣었다’고 해명했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면서 “세계일보가 수사받는 피의자를 변호하는 기고문을 ‘내용이 좋다’고 1면에 실은 전례가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27기 기자들은 이튿날 지면에 ‘특검 압수수색에 대한 통일교 입장을 앞세워 작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통일교 입장만을 대변한 제목의 기사가 초판 지면에 실렸다면서 “기자 항의에 바뀐 건 제목뿐이었다”고 전했다. <“과도하고 무리한 압수수색…형언할 수 없는 상처 입어”> 기사 제목이 <“특검의 종교 자유 침해 유감”>으로 수정됐다고 한다. 

27기 기자들은 “편집인은 공정한 보도를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도 되지 못했다”며 “국·부장단은 편집권 수호의 책무를 방기하며 세계일보에 ‘성역은 있고, 자율성은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재단의 간섭을 ‘어쩔 수 없다’며 외면해 온 36년의 침묵이 오늘의 파국을 불렀다. 국민 편에 서서 성역 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기자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토로했다.

27기 기자들은 “‘강자의 논리에 동화되지 말라’, ‘기사 한 줄의 무게를 기억하라’는 선배들의 말이 지금도 또렷하다”면서 “편집인과 국·부장 선배들에게 묻는다. 부끄럽지 않은가. 우린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7기 기자들은 ‘통일교 옹호 기사·칼럼’ 등 통일교 측의 편집권 침해 경위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재단으로부터 편집권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신임 사장과 편집인은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이해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재단이 입맛대로 인사를 좌우하는 행위는 단호히 거부한다”며 “구성원조차 납득할 수 없는 기사를 시민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재단의 부당한 간섭을 배격하고, 편집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3일 세계일보 막내 기수 28기 기자 6명은 성명에서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윗선’으로부터 재단의 입장을 담은 내용을 전달받고, 다음 날 아침 지면을 확인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자랑스러웠던 세계일보가 공정성을 잃은 채 재단의 처지를 대변하는 기관지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무력감을 느낀다”고 비판헀다.

28기 기자들은 통일교 측을 향해 “세계일보의 편집권을 침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라”며 “국장단, 부장단에게 말한다. 부당한 요구에 맞서 평기자의 취재권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정희택 세계일보 사장은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정 전 사장의 친누나 정원주 씨는 통일교 최상위 행정조직인 천무원 부원장으로, 한학자 총재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세계일보 대주주는 통일교 재단법인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통일교 산하 효정글로벌통일재단과 함께 총 6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장은 통일교가 지명하는 구조다. 

김건희 특검팀은 통일교 측이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건희 씨에게 금품을 전달하고 YTN 인수를 포함한 통일교 현안을 청탁한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하고 있다. 특검은 통일교 총재 한학자 씨를  알선수재 등 혐의로 입건하고, 윤영호 전 통일교 본부장을 횡령,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6일 김건희 씨는 특검팀의 소환 조사에 출석해 “국민 여러분께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전직 영부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공개 소환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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