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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가 ‘추노’에게….

2010. 01. 23 by 권순택 기자

▲ ⓒKBS

2003년 하지원, 이서진, 김민준 주연의 MBC드라마 <다모>의 열기는 대단했다. 당시 무수한 폐인들을 양산했던 <다모>. 개인적으로 ‘나’는 다모폐인 중 한 사람이었을 거라 자부한다. 드라마가 끝나면 바로 시청자게시판에 들어가 반응을 살피고, <다모>의 매회를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반복학습. 그렇게 <다모>는 내 인생의 드라마가 되어 갔고 그 이상의 드라마는 내 생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두 눈을 강하게 끄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KBS드라마 <추노>.

그런 두 드라마의 공통점이 있다면(제목 수가 같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는 드라마의 큰 줄기에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열광했었기 때문에 내가 두 드라마 속에서 주목한 인물은 이서진(<다모>의 황보윤 역), 하지원(<다모의 채옥·재희 역), 장혁(<추노>의 대길 역)이 아닌 <다모>의 김민준(장성백 역)과 <추노>의 오지호(송태하 역)다.

<다모>에서 김민준(장성백 역)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산채에서 함께 살아가며 힘을 규합해 그야말로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다. <추노>의 오지호(송태하 역) 역시 청나라에서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새로운 모습을 꿈꿨던 소현세자의 뜻을 이어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다모> 장성백의 ‘혁명’, 꿈꾸는 세상

▲ ⓒMBC
<다모> 성백은 원래 양반이었다. 성백의 아버지는 관직을 통해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정계진출’)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는 역모 죄로 몰려 자결하고 성백은 겨우 살아남아 자신의 아버지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던(그러나 뜻을 같이 했었던) 부친의 친구를 찾아가 산채에서 생활하며 혁명을 준비해간다. 삶이 버거워 산으로 도망온 민중들을 규합하고 그들에게 하여금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 서로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도록 함께 한다.

“무슨 인연으로 산채에 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지난 일은 모두 잊어라. 산채에서 정을 나누며 오래도록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아직까지 <다모>의 명대사로 꼽히는 저 대사는 관노로 살아가던 채옥이 잠시 성백이 있는 산채에 머물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채옥을 보고 성백이 던진 외마디다. 그들이 함께 어울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채옥은 자신에게 ‘노비’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것이 성백이 ‘혁명’을 통해 꿈꾸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성백은 어떤 방식으로의 혁명을 꿈꿨을까?

“아버님 스승님 이루겠습니다. 백성이 주인 되는 솜이불처럼 하얀 세상을 오늘 이루겠습니다”라는 성백. 드디어 대궐을 치러가는 결전의 날이 왔다. 그러나 그를 막아선 것은 ‘배신감’이었다.

그동안 같은 꿈을 꾼다고 믿었던 병조판서가 사실은 자신이 ‘왕’을 대신하려했다는 사실을. 또한 그들을 도와 대궐을 치러 들어오는 세력은 왜군이었고 병조판서는 그 대가로 제주도를 주려고 했다는 사실도…. 이에 성백은 포효한다. “제주 백성은 이 땅의 백성이 아니더냐”. 그 역시 혁명이 실패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외친다. “퇴각이다”.

그리고 성백은 죽음을 선택하며 산채 식구들을 떠나보낸다. 죽음을 함께하고자 하는 산채 식구들, 그러나 그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며 짐승 같은 삶이라도 살아 견뎌 우리의 자식들에게 꼭 전해야 한다고 했다. ‘때’를 기다리라면서…. 그렇다면 이 자리에 다시 모이게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다모>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주 작은 희망을 남기며….

“나면서부터 반역을 꿈꾼 자는 없다.
지난해에 역병에 걸린 어머니를 찾았지. 치료는커녕, 마을에서 쫓겨나 굶어죽었다. 온몸이 돌에 맞은 멍투성이였어. 살아온 길도 멍투성이였는데 마지막 가는 길까지 그랬어. 그것이 조선 백성의 삶이다.
일곱 살까지 어린 누이도 내 눈 파에서 짐승처럼 끌렸다. 그 아이가 살아있다면 스무 살이 넘었을 텐데 어느 사내의 아내가 됐을 테고, 아이라도 낳았다면 그 놈 역시 천한 노비가 되었을 테지.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이냐.
병자가 치료 받고 굶는 자에게 밥을 주는 게 그른 것이냐. 사람이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고 학대하고 일하지 않는 자가 배불리 사는 것, 그게 옳은 것이냐.
나도 좋은 세상이 오면 칼 대신 가래를 들어 밭을 일구고 아내와 아이를 키우는 꿈을 꾸곤 했다.
그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반역이고 역모다.”<‘다모’ 장성백의 대사 중>

<추노>의 송태하의 ‘변혁’…그러나 안타까운 점

▲ ⓒKBS
<추노>의 시대상 역시 <다모> 와 하등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극을 통해 비극적인 노비의 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논란이 됐던 13세 여종이 60세가 넘는 주인의 침소에 들이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 <추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송태하 역시 양반출신이다. 그리고 그는 양반이라는 자의식을 높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방식은 아쉽게도 소현세자의 아들 ‘석견’을 통해서다.

“천것의 삶을 보내면서도 부국강병한 조선을 세우자는 꿈을 함께 꾼 소현세자는 없지만 그의 아들이라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죽을 위기에 처한 소현의 아들을 무엇을 버리고도 꼭 구해내야 한다.”<‘추노’ 홈페이지 송태하 인물소개 중>

그렇다. 새로운 왕을 통해서가 그의 답인 것이다. 변혁을 주도적으로 가져가는 인물이기보다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왕’을 찾는 것이다.

그런 <추노>에 대한 아쉬움은 또 있다.

<추노>에서 변혁을 중심으로 이끄는 송태하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절실함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절실함보다는 오히려 소현세자에 대한 ‘군신유의’의 모습이라는 분석이 옳다. 때문에 어쩌면 <추노>를 보면서 곁눈질 하게 만드는 이가 업복이(공형진 역)일지도 모르겠다. 노비 당사자이면서 “양반 놈들 싹 죽이면 정말 우리 세상이 된대요?”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인물, 업복이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노>는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그리는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다모>에서는 ‘산채’가 등장했었다. 관노였던 채옥이 함께 하고 싶었던 산채가 앞서 이야기했듯 그들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제 6회를 끝낸 <추노>. 남은 횟수에서 어떤 스토리를 보여줄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고민들도 함께한다면 진정한 명작이 될 거란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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