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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쌍용차 보도에 스트레이트가 넘치는 이유

2009. 08. 17 by 안영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에 언론이 일제히 갖다 붙인 수식은 ‘극적 타결’이었다. 상황이 급박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동안 보도를 보면 언론은 ‘방조’라는 역설적 방식으로 사태에 개입해 왔다. (사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고 나서야 겨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 언론이 사태 해결에 감격해하는 건 아이러니다.

쌍용차 사태 보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압도적인 스트레이트 기사 비율이었다. 공공미디어연구소가 8월 11일 발표한 ‘주간 정책 브리핑’을 보면, 지상파 3사의 쌍용차 사태 관련 보도에서 노사 주장을 단순 전달하거나 노-사, 공권력 간의 물리적 충돌을 묘사한 스트레이트 기사 비중이 64%에 이르렀다.

▲ 공공미디어연구소 주간정책브리핑 19호, 쌍용차 사태 방송3사 보도유형 분석. ⓒ공공미디어연구소
갈등 보도가 스트레이트 기사로 쏠리는 현상은 고질적이다. 지난해 말 한국언론재단이 펴낸 <갈등 이슈 보도의 새로운 접근>이라는 연구서는 같은 해 5~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 집회에 관한 보도에서 스트레이트 기사가 차지한 비중이 6개 종합 일간지 90.9%, 지상파 3사 96.4%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보도 행태는 언론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별 구실을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논란이 빚어지는지를 언론이 말하지 않으면 합리적인 공론 형성을 기대할 수 없다. 물리적 힘이 곧 정의가 되는 것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가 힘의 정의를 승인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왜 갈등 보도에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넘쳐날까? 무엇보다 상업주의 저널리즘이 ‘갈등’ 자체에 대단한 기사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고조되고 힘과 힘이 충돌하는 물리적 긴장만큼 선정적인 소재도 없다. 굳이 골치 아프고 따분한 해설과 분석에 공을 들이지 않아도 팔린다는 얘기다. 언론은 결코 조용하고 차분한 세상을 원치 않는다.

다른 이유도 있다. 쌍용차 사태 보도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공생을 위한 대안적 요구는 일축됐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지만 지상파 3사 보도의 취재원 가운데 정부 관계자 비율은 2%대에 그쳤다. 언론이 노동유연성에 반하는 어떤 요구도 의제화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이럴 때 매우 유용하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사실’의 단순 병렬이 아니다. 선택적으로 늘어놓은 ‘사실’들은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 이미지는 다시 인과율을 띤 서사로 읽힌다. 노-사, 공권력이 충돌한 사실만 늘어놓으면 노동자는 이기적이고 과격한 폭도가 된다. 거기에 ‘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너무 사랑하는 언론의 갈등 보도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이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51호(2009-08-17)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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