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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의 서울시 노동정책 평가 토론회

박원순 노동정책, 얼마나 진보적인가?

2013. 07. 25 by 한윤형 기자

야권 지지층 사이에선 민주당적을 가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정에 만족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러한 조류는 지난 세월 동안 민주당 정책에 불만이 많았던 진보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감지된다. 서울시가 지역의 이런저런 사업과 활동을 지원해주는 일이 늘어나다보니,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그들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후보도 나와야 하긴 하지만, 박원순이 재선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야권 지지자들의 우호적 평가가 박원순 시장의 재선 여부에 청신호만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야권 지지자들이 만족하는 것만큼 서울 시민들의 만족도가 크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24일엔 2008년 오세훈 전 시장이 입안했다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보류된 서울시 경전철 사업이 다시 추진될 거라는 발표가 나왔다. 어쩌면 이는 박원순 시장 측이 뚜렷한 개발공약 없이는 재선에 어려움이 있을 거란 불안감을 느낀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24일 오후 2시에 민주노총 서울본부 회의실에서 열린 희망연대 노동조합과 노동당(구 진보신당) 서울시당에서 주최한 <새로운 서울시, 노동의 현주소를 묻는다 – 서울시 노동정책 평가 토론회>는 그런 점에서 ‘개혁성향 서울시장’의 딜레마와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할 만하다. 박원순 시장은 진보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개발공약에의 유혹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데, 진보진영이 볼 때엔 그 노동정책이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지자체 모범 사례’ 이면의 한계
▲ 행사 참석자들의 모습. ⓒ미디어스
발제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맡았고 윤진영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이 <서울시 민간위탁사업장, 노동조건은 달라졌나?>를 썼으며 황종섭 노동당 서울시당 조직부장이 <서울시의 혁신 일자리,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했다.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민간위탁사업장 문제, 혁신 일자리로 대변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을 고루 평가하는 자리였다 할 만하다. 이에 덧붙여 협동조합 추진의 명과 암까지 분석했다면 ‘박원순 서울 시정 노동의 명과 암’을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이미 프레시안 등의 매체가 꽤 다룬 사항이다.
첫 번째 발제는 ‘모범 사례 속의 한계’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김종진 실장은 ‘일자리의 질’의 문제는 크게 보아 1) 고용안정 문제, 2) 처우개선 문제, 3) 작업현장 인권 문제로 나뉘어볼 수 있는데 서울시는 1)과 2)는 다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핵심은 ‘상시 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과 ‘1호봉 기준 월 정액 155만원’으로 기존 중앙정부의 법제도나 지침보다 상향된 제도적 개선책이다.
서울시는 직접고용 기간제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파견용역 비정규직을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는데, 몇 차례에 걸친 전환자의 숫자는 1,367명에 이른다. 2012년 서울시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으로 투여된 예산이 총 77억9천만원이니 100억 미만의 자원으로 약 1천3백여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된 것이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순차적으로 6천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25개 자치구의 비정규직 문제와 약 380여개 회사에 1만 7천명이나 종사하는 민간위탁 문제는 매우 포괄적인 법제도와 복잡한 고용구조 때문에 쉽게 손댈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서울시는 이에 2013년 민간위탁 연구조사를 통한 3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종진 실장은 서울 시정의 한계가 시장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말하자면 노동정책은 1) 법안 제정(서울시의 경우 ‘조례 제정’), 2) 집행, 3) 지도 및 감시의 세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을 텐데, 3)의 영역은 서울시만의 몫은 아닐 거라고 설명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 진영의 역량이 투여될 때 좀 더 좋은 정책과 정책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누군가에겐, 더 나빠진 상황
그러나 두 번째 발제에선 한계 지점들이 중점적으로 드러났다. 윤진영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이 맡은 두 번째 발제는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의 주요 현안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한지 10개월이 되어가는 이 민간위탁 사업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다. 서울시 행복도우미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모든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의 대표번호가 “120”으로 바뀐 상황에서 1차적으로 시민들을 직접 만나고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고용형태는 ‘위탁’이다. 노조결성 이후 몇몇 위법사항이 시정되기는 했지만 연차·병가·보건휴가 등 법적휴가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는 현실은 여전하다. 휴식시간도 자유롭지 않고 노동통제 감시도 많고 노동조건을 저하하려는 기도도 있었다. 특정 팀의 경우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않는 저임금에 체불임금이 미지급된 사례도 있다. 현재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은 지루한 교섭과 변하지 않는 서울시에 환멸을 느끼며 교섭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도적 문제들이 꼬여서 상황이 더 나빠진 사람들도 있다. 청소와 경비 업무의 경우 민간위탁 업체에서 사람을 쓸 때엔 정년이 70세였고 사실 일만 할 수 있으면 70세가 넘더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다 보니 정년의 문제가 대두했다. 서울시 공무직의 정년은 만 59세인데, 이를 적용하면 현재 서울시 청소 업무 종사자의 1/3 이상이 정년 초과자가 된다.
이에 서울시는 정년을 65세로 향상하였으나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내년이면 65세 정년이 되는 이들이 상당수라 불만을 표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는 “기본급이 약간 오르긴 했지만 5년 일찍 퇴직해야 한다면 뭐가 이득이겠는가. 서울시와 서울시립대가 서로 책임을 떠밀며 우리를 밖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의 윤영록 노동자 역시 “책임이 있을 때 일을 확실하게 해야지 그러지 못하면 양쪽에서 욕을 먹는다”면서 박원순 시장에 대해 “할 수 있을 때 (친노동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8일 오후 서울시 신청사 기획상황실에서 열린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수습 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전시행정’의 문제?
서울시 혁신일자리, 이른바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은 세 번째 발제는 전시행정의 우려를 담았다. 서울시는 시민공공서비스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제공하는 목적으로 ‘뉴딜 일자리’를 제시했다. 또한 사업 참여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 프로세스를 마련하여 협동조합·사회적기업·마을기업과 연계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로 발전시킨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발제를 맡은 황종섭 노동당 서울시당 조직부장은 서울형 뉴딜 일자리가 최저임금 언저리의 저임금 노동이며 지속가능한 일자리도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한다. 17개 사업의 사업 기간이 3개월에서 9개월 정도로 퇴직급여 지급 기준(1년)에도 미달한다. 저임금·기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놓고 참여자를 모집하다 보니 신청 미달 사태까지 발생했는데, 이런 일자리들은 청년들의 참여를 유도한 일자리였다.
참여자들의 불만 역시 업무기간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발제에서 인용된 지난 6월 26일에 열린 <서울시 청년 공공일자리 정책혁신을 위한 연속 포럼 – 1차 쌩얼토크>의 내용을 살펴보면 “9개월이 끝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일하는 현실”, “취업시 경력인정이 안 된다”, “취업과 연계성이 불확실하다” 등 일자리 연속성 문제들이 수위에 올랐다.
황종섭 부장은 청년들이 저임금 문제보다 이런 문제들을 수위에 올린 것은, 참여자들이 이 일자리를 ‘저임금을 버틸 만한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설명한다. 황 부장은 “서울형 뉴딜 일자리는 면면을 살펴보면 공공근로에 가깝고 사실 공공근로를 주로 담당하는 것은 노년 빈곤층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황 부장은 “그런데 서울시가 공공근로 이상의 혁신을 보여주고 싶다 보니 청년층을 끌어들여 취업이나 창업시 경력 내지 경험이 될 수 있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짜내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산림내 피해목 정비사업의 세부적인 업무 중에 목공예품 제작이 들어가 있는 등의 이상한 조합이 강박적으로 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온, 서울시와 ‘사회적 교섭’을 진행한 바 있는 청년유니온의 양호경 정책실장은 “너무 욕심이 많은 사업이었던 것 같다”며 동의를 표했다. 그는 “산림내 피해목 정비사업의 세부 업무에 목공예품 제작이 포함되어 있는 식의 아이디어는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서울형 뉴딜 일자리는 숫자를 채우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공공적 일자리에 관한 모델을 만들어내는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실장은 “서울형 뉴딜 일자리의 경우 사회공공성에 대한 시도는 어느 정도 보이는데 좋은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고 평하면서 “시간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는 시급이 높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사회혁신파크에서 열린 '서울크리에이티브 랩'(Seoul Creative Lab) 개관식에 참석해 크리에이터들의 성과물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제도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고민
행사의 사회를 맡은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토론을 듣고 “실업수당은 3개월을 일해야 나오고 퇴직금은 12개월을 일해야 나온다. 그런데 공공부문 일자리에서도 실업수당과 퇴직금을 피하려고 노동기간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공공부문 일자리라면 오히려 제도적으로 실업수당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는 게 옳다고 보고 그러면서 실업수당이나 퇴직금을 활용하여 취업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90년대 말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된 데에는 공공부문 일자리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공공부문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범사용자가 되어야 했건만 경영합리화 정책을 미명으로 비정규직을 증대시켰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김 처장의 지적대로 공공부문 일자리조차도 제도를 활용해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기 보다 제도를 우회하여 혜택을 회피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개혁세력은 물론 진보진영의 누구든지 간에 책임을 지는 위치에 가면 주어진 역할과 제도 속에서 정책을 디자인하고,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어내야 하는지, 바꾸어내야 한다면 그 동력은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판 역시 그의 역할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울시장에게 가능한 정책방향을 제시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그 과정에서 진보적 노동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야 한다. 그런 것까지 어떻게 해주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이 고민은 박원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진보진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토론회는 진보진영의 노동정책에 대한 고민이 세간의 시선보다는 훨씬 성숙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좀 더 진보적인 노동정책을 펼쳐야 할 박 시장이 개발공약을 우선순위에 둘 정도로 ‘진보적 노동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 연대’가 튼실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부동산에 대한 사적이익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란 점에서 ‘공공적인 것’으로 둔갑하고,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공적 담론이 당장 정규직화되는 몇몇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것’으로 둔갑하는 가치전도의 현실에서, 진보적 노동정책의 순차적인 실행과 효과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토론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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