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에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없는 것인지에 대해선 판단이 엇갈린다. 판단이 엇갈린다는 것조차 우스꽝스럽지만, 현재로썬 그렇다. 엄청난 사건이다. 나라의 수준이 한 순간에 뻘밭에서 뒹굴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자면 '치욕'이고,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모욕'이다. 짧게는 지난 대선부터 길게는 그 훨씬 이전부터 정치권이 대체 무얼 두고 싸워 온 것인지 허망하다. 대화록을 입수해 봤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 김무성 의원, 정문헌 의원이 본 것은 그렇다면 어떤 ‘허깨비’였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허깨비’를 따라 출렁여갔던 '여론이란 이름의 신기루'가 허무했단 것 역시 따로 말할 나위가 없다.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이 NLL 포기 논란으로 치환되고, 그 치환의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정부와 여당에 휘둘려온 민주당의 처지도 딱하긴 매한가지다.
다 부질없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는 말이다. 만약, 한국 사회가 여기서 ‘사실’을 건져내지 못한다면, 국가적 위신 전체가 조롱을 당하고, 민주주의의 토대가 붕괴되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주화입마’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국정원 대화록의 ‘원본’을 찾아내고 그 진위를 가리는 것은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치욕과 조롱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법이 되어 버렸다.
어찌하여 이 엄청난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사실’이 없다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를 반드시 조사해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말들이 서로를 할퀴고, 제 입장이 유리하게 보이도록 상황을 조작할 테지만 굴하지 말고 단 하나로 존재할 사실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대화록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있다면 왜 찾지 못했던 것인지. 행여 없다면 왜 없는 것인지. 누구의 지시로 없어진 것인지. 낱낱이 그리고 정확히 파헤쳐져야 한다.
그 사실에, 사실의 과정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내 각각의 상처와 불신들을 끌어 앉은 채, 아직 4년도 넘게 남은 박근혜 정부 자체를 나락으로 쳐 박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역사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 세력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치받을 것이다. 이 ‘격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뚜렷한 말을 보태지 않으려 할 것이고, 각각의 진영이 각자의 진영에서 충분히 인정받을 논리로 무장한 채 서로를 적대적으로 겨냥하는 정국이 지루하게 펼쳐질 것이다.
모두에게 비극적인, 최악의 경우이다. 이 상황을 반드시 막아야 하고, 이를 막아야 할 책임은 모두에게 그러나 특히 정부와 여당에게 있다. 국정원 대화록의 진위를 밝히는 것은 지금 정부와 여당이 맞이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책무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51:49로 양분된 정치적 지형에서 ‘반쪽짜리 대통령’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이 문제로 절반을 완전히 적대자로 만들어버린다면 정국을 끌고 갈 추진력은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광우병 촛불 이후의 이명박이 내내 절반의 대통령이었던 것처럼 박근혜 역시 그 절반의 위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좌초할 것이다. 치욕과 모욕이 교차하는 매우 중차대하고 심란한 위기 국면이라는 각성을 갖고 정부와 여당은 사력을 다해 문제의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사실’은 아무리 치욕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이미 정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여론이 사실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갈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했던바 있다. 이 충고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박 대통령에게 매우 유효한 시사점을 던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위기라도 결국 ‘사실’을 밝히고 사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 그 자체만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극복 방법은 없다.
애당초, 6년도 더 지나 지금 밝혀진다고 한들 현실 정세에 별다르게 미칠 영향이 없는 문제가 정국의 쟁점이 되고 정쟁의 핵심이 된 것 자체가 부조리했다. NLL 발언의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이슈의 등장과 정점은 ‘여론’을 유리하게 끌고 오고 싶었던 얄팍한 정치적 술수가 빚어낸 상황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 남북관계의 파탄이 6년 전 정상회담의 합의에 근거하지 않는 한, 그 정상회담의 대화록은 역사적 의미 외에 현실적 구성력이 전혀 없는 옛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죽은 대화를 살려내 정부와 새누리당은 참 요긴하게 써먹었다.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이라고 하는 살아있는 문제를 확실히 덮어버렸다. 너무 확실하게 덮다 보니 오히려 ‘대화록 원본이 없다’는 더 극악한 딜레마에 봉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없는데 어떡하느냐’는 알량한 이유는 통하지 않는다. 이 문제로 집권의 정당성이 위협되던 상황을 덮었던 만큼 여기서 가뿐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다. 정부와 여당이 ‘이쯤에서 그만하자’는 제스처를 취하면 취할수록 여론은 ‘용도 폐기했다’는 움직임을 읽어낼 것임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왜 없는가. ‘협잡’이 디지털화 된 것인지 아니면 나라의 수준이 ‘협잡’으로 전락한 것인지. 기가 막힌 호응을 보이는 이 ‘우연’은 누군가의 ‘의도’가 ‘적중’한 것인지. 통렬하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