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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액션’에 공정 심판인 척하는 언론의 과거

‘귀태’ 정국의 소란과 조선일보의 기억상실증

2013. 07. 15 by 한윤형 기자

11일 민주당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귀태’ 정국이 대략 수습되는 분위기다. 홍익표 의원이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하고 김한길 대표가 유감을 표명하면서 새누리당은 국회로 돌아왔다.

▲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민주당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 일정 정상화 합의 내용을 밝히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최경환 원대대표와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시내 모처에서 회동을 갖고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귀태(鬼胎) 발언' 논란으로 전면 중단된 국회 일정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뉴스1)

이 사건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 측이 그토록 강경하게 나온 이유를 몇 가지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가설은 기술적 측면의 분석이다. 말하자면 축구 정도에 비유한다면 상대방의 태클에 과장되게 넘어지는 ‘헐리웃 액션’이었단 것이고,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으며 시간을 끄는 ‘침대축구’라는 시선이다. 45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못박힌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논란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란 걸 생각하면 더더욱 이런 가설에 힘이 실린다.

최근 민주당 측의 공세는 지난 대선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여권에게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정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고인에 대한 폄하논란을 일으켜 민주당의 공세를 일정 부분 무력화시키려는 판단을 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반면 ‘진심’의 측면에서 청와대 측이 분노했을 거란 식의 추측도 가능하다.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나 그 핵심측근들의 정서가, ‘최고존엄’을 모욕당한 북한 지도부의 그것과 비슷할 거라는 추측이다. 가령 금일(15일) 아침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새누리당 훙문종 사무총장은 ‘귀태’ 발언을 과거 새누리당의 ‘환생경제’ 연극에서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와 연결시키는 시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지도자고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분이라고 추앙하는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폄하했다는 것 자체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보통 막말 수준의 막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노무현은 좀 욕해도 되지만 박정희는 욕먹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얘기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진영논리의 극치이지만 이러한 정서를 가진 이들이 한국 사회에 상당수 있기 때문에 통용되는 ‘땡깡’일 것이다.

‘헐리웃 액션’과 ‘침대축구’를 비판하는 문맥에선 당연히 ‘영리한 플레이’를 하지 못한 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새누리당의 문제는 윤리적인 것이고 민주당의 문제는 기술적인 것이기에 두 개의 비판은 등가는 아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애초에 그런 상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민주당에 대해 요구해야 할 것도 많다.

홍익표 의원의 브리핑을 봤을 때,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논하기 위해 굳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가 필요했는지, 그 책 내용 중에서도 수사적 비난에 해당하는 ‘귀태’라는 발언을 굳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란 해석을 덧붙여 제시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다. 쓸데없는 깊은 태클로 상대방의 ‘시간 끌기’ 전술에 당했다면 강경대응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안이함도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귀태’ 정국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심판’처럼 등장하는 보수언론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향한 ‘막말’이 모두 재조명되는 상황에서 방송 뿐만이 아니라 보수언론도 여야의 ‘막말’을 함께 규탄하는 입장에 섰다. 금일(15일)자 조선일보에서 특집기사로 출발한 <정치, 문화가 문제다> 시리즈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 15일 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이 기사는 ‘적대’, ‘막말’, ‘저주’라는 키워드로 한국 정치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작년 대선 때 민주당에 대한 주요 공격 중 하나는 종북(從北)세력이라는 것이었고, 새누리당에 대한 공격 중 하나는 친일·독재세력의 후예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0년간 대한민국은 종북세력 손에 넘어갔고,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기는 독재의 시대가 된다. 양측의 이런 극단적인 주장에 동의하는 국민은 소수지만, 정치권은 이런 적대감을 무기로 자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옳은 말이지만 이런 현상에 관한 한 조선일보는 분석을 해야할 이들이라기보다는 분석을 당해야 할 이들이다. 민주진영 인사들에게 종북의 함의를 덧씌우고 ‘적대’와 ‘막말’과 ‘저주’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이들이 보수언론이었고 그 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던 것이 조선일보였다. 이 기사를 쓴 정우상 논설위원의 경우 조선일보 내부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축인 것이 사실이겠으나, 그의 ‘선배’들은 가령 김대중 주필의 <간첩이 삿대질하는 공안>(1999년) 등 제목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선동을 일삼으며 ‘자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대통령을 향한 ‘막말’의 역사를 살필 때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이나 연극만을 살펴야 하는 것도 아니다. 2007년 6월 7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IHT>은 “한국은 이제 어떠한 제약도 없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한국 신문의 사설들은 일상적으로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칭한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결코 수사법이 아니었음은 당시의 신문들이 증명한다. “사냥개 인간”, “강아지 권력자”, “아무리 미친 밤(狂夜광야)이 더디 가더라도 언젠가는 제 정신의 새벽이 오게 돼 있다”와 같은 표현들을 들으면 ‘귀태’와 같은 한자말은 외려 점잖아 보일 지경이다. 사실 연합뉴스의 기사에서도 적절하게 지적되었듯(기사 링크) 우익 성향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만들고 강상중 등이 사용한 ‘귀태’라는 말을 꼭 극단적 비하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국 ‘귀태’ 정국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의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에 단정적인 주석을 단 민주당과 그 주석에 뒤늦게 발끈한 새누리당이 만들어낸 소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소란에 끼어들어 ‘옐로카드’를 꺼내들며 권위를 얻으려고 한 보수언론들은, 실제로는 이 엉뚱한 소란 이상의 ‘적대’와 ‘막말’과 ‘저주’의 행위자들이었다는 역설이 있다. 그러면서 천연덕스럽게도 정치권에 상식적인 판단을 주문하는 조선일보의 ‘기억상실증’은, 한국 사회의 정치담론이 왜곡되어 있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15일 자 조선일보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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