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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손은혜 KBS '시사기획 창' 기자

“외로움과 고립, 사회적 처방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2024. 02. 01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최근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이 노랫말처럼 뭔가를 혼자 하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른바 ‘혼자’의 시대,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건 외로움이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1인 가구 절반은 자신의 마지막은 ‘고독사’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한다. 두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우리 사회에서 '외롭지 않은 미래'는 가능할까?

지난 1월 23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 방송 다시보기)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내레이터를 맡은 이병남 씨가 청년, 중년, 노년의 1인 가구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듣고,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법을 논의했다. 또한 ‘외로움과 고립’ 문제를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주목하고 대응해 온 해외 사례도 담았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손은혜 <시사기획 창> 기자를 만나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취재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손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이 프로그램 만들면서 고생을 많이 해서 끝나면 대단히 시원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시원함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많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아쉬움일까요?

“시사다큐 프로그램이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휴먼다큐를 만들고 싶었는데, 감동을 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감동을 주는 휴먼다큐라고 하셨는데 감동에 중점을 둔 이유는?

“기자 생활 하면서 ‘백 마디 논리정연한 비판보다 때로는 한 방울의 눈물이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움직인다.’란 생각을 종종 했거든요. 이번 다큐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해서, 세상에 울림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외로움과 고립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제가 2007년에 입사해서 1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는데요.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난민, 쪽방촌이나 고시원에 사는 분들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소수자를 취재해 왔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층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고독과 외로움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 생활이 어려워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고, 국가도 사회도 심지어 주변에 있는 사람 아무도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듯했어요. 그래서 이분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손 내밀면 잡아줄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회적 정책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알리고자 고독에 대해 취재하게 됐습니다.”

손은혜 KBS〈시사기획 창〉 기자
손은혜 KBS〈시사기획 창〉 기자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만 고독할까요?

“아니죠.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각자의 고독과 외로움이 있죠. 그런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아무래도 고독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기회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나 경제력이 없는 분일수록 고독과 외로움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외로움과 고립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경쟁과 줄 세우기, 시장 중심의 성장. 이런 현상이 참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공동체라는 건 우리가 정말 힘들고 외로울 때 손을 내밀어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인데 경쟁 중심 사회에서 그런 공동체 의식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죠.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의미도 줄어들고 있고요. 두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상황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다른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데 그 안전망 자체도 굉장히 희미해지고 있어요.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고 줄 세우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은 더욱 외로워지는 것 같아요.”

이병남 씨가 내레이션을 맡으셨는데 일반인이라 약간 모험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이분을 내레이터로 세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분이 외로움과 고립 이슈에 대해서 치열하게 성찰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방면으로요. 24년 전에 이혼하고 오랜 시간 혼자 삶을 꾸리시며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서 굉장히 깊이 생각해 온 분이었어요.

두 번째는 이분의 연륜 때문인데, 나이가 올해로 일흔이고 기업에서 오래 일하셨거든요. 40대 기자인 제가 대상자들을 만나는 것보다 일흔의 어르신이 여러 나이대와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더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이분의 성품 때문이었어요.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활짝 열려 있는 분이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굉장히 잘 듣는 분이셨거든요. 물론 목소리도 참 좋았고요. 그래서 이분을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자 내레이터로 내세운 거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이병남 씨에게 처음 제안했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

“종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처음 이분을 뵈었어요.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고 저희와 함께해달라고 진실하게 부탁드렸는데, 처음에는 좀 두려워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찬찬히 들어보시더니 ‘한번 해봅시다.’라고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이런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서 일흔인 본인 삶의 지평이 얼마나 넓어질지 기대도 많이 하셨고요.

결과적으로는 저희 취재진에게도, 이병남 선생님 본인에게도 이번 촬영 과정은 정말 뜻깊었던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한 취재진과 소통을 굉장히 많이 하셨고, 한 분 한 분의 출연진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정말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셨거든요. 저는 이분과 지난 석 달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삶에 대해 많이 배우고 참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출연진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기준이 있었을까요?

“일단 청년, 장년, 중년 이렇게 세대별로 한 명씩 주인공을 세워 출연시키고 싶었어요. 청년 가운데서도 자립준비청년을 택했고, 중년에서는 홀로 살고 있는 분 중에서 주거 형태가 열악하신 분, 그리고 독거 어르신을 노년층 주인공으로 염두에 뒀습니다. 세대별로 한 명씩 그 세대의 어려움을 대표할 만한 분들을 섭외하고자 한 것이죠. 본인의 어려운 사정을 진실하게 드러내되,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슬퍼하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있는 분을 모시고자 했는데, 여러 사람들을 접촉한 끝에 제 마음속에 가장 울림이 있는 분을 택해서 촬영 시작했습니다.”

1인 가구의 경우 절반 가까이가 자신의 마지막이 고독사일 거라 생각한다고 나온던데.

“저도 이 통계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1인 가구의 절반이 ‘나는 혼자 죽을 거야’라고 예상하는 거잖아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을 그대로 표현하는 자료인 것 같아요.”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전문가들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잖아요. 어땠어요?

“앞서 휴먼을 강조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시사다큐거든요. 우리 사회가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짚어야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강력하게 보강해 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따로 인터뷰하는 것보다는 전문가들을 모았을 때 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봤고요.

정책을 연구하는 서울시 연구원,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님, 정신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 현장 실무를 하는 사회복지사 겸 1인 가구 지원 센터장. 이렇게 네 분을 모시고 고립 문제에 대한 해법을 진지하게 논의해 보고 싶었거든요. 네 명의 전문가 모두 이 문제에 정말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서 얘기해주셨어요. 분량상 많이 줄인 것이 좀 아쉽습니다.”

영국은 외로움 담당 부처를 신설했다면서요?

“지난 2018년도에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를 만들었어요. 영국은 외로움, 고독‧고립 문제에 대비할 여러 가지 제도를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더라고요. 사회적 약자에게 시스템적으로 손을 내미는 데 관심이 많단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취재하면서도 놀랍고 흥미로웠어요.”

우리도 외로움을 정책적으로 해결할 부처가 필요할까요?

“저는 필요하다고 봐요. 이미 정치권에서도 여성가족부 안에 외로움 담당 부처를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거든요. ‘외로움부’라는 명칭을 쓰지 않더라도 이 문제를 정책적으로 관할하는 부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아무도 신경 못 쓰는 사이에 삶의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생각해 보세요. 이분들은 여러 환경상 본인이 힘들어도 어디에도 힘들다고 말 못한 분들이었잖아요. 그러다 결국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으셨고요. 그런 분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모임이 있었거나 반찬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문 두드려 보고 잘 지내냐고 안부 물어봐 주는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분들이 그렇게 돌아가셨을까요? 그런 안타까운 사건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 어딘가의 심각한 소외와 고립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엔딩으로 출연자들과 기자님이 함께 사진 찍었던데, 의도 하는 게 있었을 듯해요.

“프로그램 제작 초반부터 엔딩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주제가 한눈에 들어오는 엔딩, 여운이 있는 엔딩을 꼭 만들고 싶었거든요. ‘고립의 시대’를 넘자는 게 주제니까, 출연자 모두를 모아 가족사진처럼 찍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됐어요.

이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으로 다섯 명을 세웠잖아요. 청년의 고립을 말해주는 자립준비청년 박인경 씨, 중년의 어려움을 보여준 고시원 거주자 김태선 씨, 노년의 외로움을 전한 독거노인 홍정자 어르신, 1인 가구 최성희 씨, 그리고 광주에서 청년들과 연대해서 살아가고 있는 신삼영 어르신. 이분들을 한자리에 모아 ‘혼자가 아니야. 우리에겐 손 내밀면 맞잡아 줄 사람이 있어’란 메시지를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하고 싶었어요.

다섯 분의 출연자들을 한날한시에 모시는 일이 어렵긴 했지만, 사진 찍는 내내 다들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분들은 서로 잘 모르시지만 저는 그분들을 모두 다 만나서 알잖아요. 가족사진 찍으러 모이셨는데 다들 너무 귀하게 여겨져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정말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방송 마치셨는데,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많은 언론인이 그러하듯 저도 이제까지 우리 사회 다양한 소수자를 취재해 왔는데, 그분들이 겪는 가장 공통적인 문제가 ‘고립’의 문제인 것 같아요. 외롭다고 생각하며 아파하는 분들 가운데 단 한 분이라도 이번 프로그램 통해서 위로받으셨다면, 그걸로 제 소임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겐 위로로, 또 누군가의 마음속엔 오랫동안 남는 다큐가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자 생활 하는 동안,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나아지게 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취재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분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굉장히 많이 몰입했거든요. 모두 다 영화 한 편으로도 모자랄 만큼 극적인 삶의 스토리를 가지고 계셨어요. 사전 취재기간은 짧은 시간 안에 그분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과정이거든요. 그래야 촬영 들어가고 난 뒤 프로그램에 어떤 부분을 담을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집중적으로 그분들과 대화하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그분들의 삶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빙글빙글 돌아갔어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면서 같이 진심으로 아파하게 되니까 감정 소모가 컸습니다. 저는 기자 생활하는 내내 이런 부분이 정말 어려웠는데요. 기자로서 취재 대상과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문제의식을 진정성 있게 유지하는 것, 두 길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는 게 매번 참 어렵습니다."

취재했지만 방송에 담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고독사 현장을 취재한 부분이 통으로 빠졌어요. 인천에서 중년의 여성이 집안에 어머니 시신을 두고 지내면서 부정으로 연금을 수급했던 일이 있었어요. 취재하러 갔는데 이웃분들이 ‘여기는 이런 일 흔해. 그 사건이 뉴스에 나와서 그렇지 여기는 돌아가셨다 하면 고독사야. 진짜 어마어마한 시대지, 지금’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사건이 우리 프로그램에서 말하려는 아픈 부분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통으로 다 덜어냈어요. 취재 내용이 많아서 분량상으로도 이미 넘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건을 길게 설명하면 프로그램 전체가 너무 어두워질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어떤 가족 고립을 넘다’ 편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한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의 어깨 위에 지워진 외로움과 고립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고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 가운데 몇 분이라도 위로받고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셨다면, 저는 제 소임을 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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