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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나세웅 MBC 기자

'잊혀진 참사' 수사기록에 대한 못다 한 이야기

2023. 11. 09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어느덧 가을, 1년 전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MBC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수사기록 1만 2천 페이지를 확보해 연속 보도를 내놓았다. 수사보고서와 생존자와 목격자 등 169명의 진술이 담긴 수사기록을 토대로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를 분석하고,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참사 발생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짚어보았다.

지난 10월 30일 MBC 법조팀의 나세웅 기자와 전화 연결해 이태원 참사 수사기록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들어봤다. 다음은 나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나세웅 MBC 기자
나세웅 MBC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수사기록을 입수해 팀원들과 함께 보도하셨는데, 소회가 있을까요?

“예고 기사 때부터 온라인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사실 ‘잊혀진 참사’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1년 동안 참사 원인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얼마나 해소됐고 누가 책임졌는지, 궁금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일단 동료 기자들과 일차적으로 준비한 보도를 잘 마무리한 것 같아 안도했습니다.”

수사기록 분석 보도는 어떻게 하게 됐나요?

“모두들 10.29 이태원 참사를 충격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출동 소방관의 바디캠 영상도 다시 봤는데, 구조 현장을 많이 다녀봤을 고참 소방관들이 ‘전쟁터다’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 정도로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국가 애도기간이 지나고 어느 시점 이후에는 희생자나 생존자 목소리를 전하거나 참사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을 묻는 보도량이 확 줄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세월호 현장 취재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월호 때처럼 사회적 갈등이 오래 반복돼서는 안 되고 언론이 참사의 원인이나 책임 문제를 차분하게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제가 법조팀에서 다루는 영역이 검찰 수사, 법원 재판 분야라 수사기록 혹은 법정에 제출되는 새로운 증거를 확인해 보자는 얘기를 팀원들과 했고, 어렵게 관련 수사기록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특별 취재팀이 아니다 보니 일상적인 뉴스 제작 업무를 하면서 별도의 시간을 내 기록을 분석했거든요. 두 달여 전에 자료를 구해 참사 1주기에 맞춰 보도하게 됐습니다.”

앞서 ‘잊혀진 참사’ 얘기를 하셨는데, 1년밖에 안 됐는데 왜 그런 말들이 나올까요?

“물론 유가족이나 생존자분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좋은 보도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한겨레 같은 경우에는 희생자들 이야기를 연속 보도했고,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도 유가족들과 직접 전화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보도를 이어갔죠. 다만 참사 규모에 비해 언론 보도의 양이 적다고 느꼈습니다. 초기에 ‘놀러 가다 죽었다’ 식으로 희생자나 생존자들을 폄훼하고 낙인찍는 온라인상의 움직임이 있었던 탓에 당사자들의 언론 노출이 쉽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국가 애도기간을 설정했는데, 특정 기간 안에 애도를 마치는 방식이 여론 관리 차원에서는 성공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다음에 참사 자체가 정쟁화되면서 국정조사가 파행 사태를 거치고, 합의로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렇게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것도 상대적으로 사회적 논의가 부족했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독] 10월 29일 밤 용산서 무전망‥
[단독] 10월 29일 밤 용산서 무전망‥"16분 동안 10번 비명이 울렸다" (MBC 뉴스데스크 10월 23일 보도화면 갈무리)

1만 2천 페이지면 분량이 엄청난 것 아닌가요? 검토 시간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요즘 형사 기록 자체가 수만 쪽, 많게는 10만 쪽 가까이 되는 것들도 있어서 절대적으로 많은 양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딱 필요한 부분만 보는 형사 변호인과 달리, 저희 언론은 어디에 새로운 내용 혹은 의미 있는 팩트가 있을지 모르니까 전부 꼼꼼히 봐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봤나요?

“처음에는 이미 제기됐던 의혹들 중심으로 살폈습니다. ‘11건의 압사 우려 신고가 있었는데 대응이 되지 않았다’란 얘기는 국정조사 전부터 공개가 됐습니다. 수사기관은 사람을 불러서 조사할 수도 있고 압수수색을 비롯해 여러 가지 강제 수단이 있으니까 ‘팩트’ 찾는 데는 언론기관보다 훨씬 효율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또 방대한 자료를 확보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사기관이 의혹에 대해 어떻게 확인했을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다음은 경찰뿐 아니라 지자체도 사전예방 의무가 있는데 어떻게 준비했길래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경찰은 사전에 기동대를 배치 요청했는지, 이전과 달리 정보관을 왜 이번에는 배치 안 했는지, 그다음에 인파가 모인다는 정보가 많이 보고됐다는데 이 보고는 왜 무시됐는지. 이런 의문점들이 있었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이런 의문이 어떻게 해소됐는지를 살폈습니다.”

참사 전 11건의 경찰 신고가 있었다는 내용이 첫 번째 보도였는데, 이걸 먼저 보도한 이유는?

“참사 원인과 관련해서는 모두 중요한 얘기입니다만 결국 핵심은 ‘구할 수 있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동대를 배치했거나 아니면 경사로에 안전 조치를 취했거나 하는 사전예방 조치가 됐으면 가장 좋았을 겁니다. 설령 예방 조치를 못 했더라도 당일 신고에 제대로 대응했으면 좀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마저 아니면, 마지막 단계죠. 사고 발생 사실을 빨리만 알았어도, 한 발 빨리 대응만 했어도 다르지 않았을까란 의문입니다.

사고 발생이 밤 10시 15분쯤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11시 넘어서 구조됐는데도 살아있던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현장에서 CPR을 했으면 젊은 분들이니까 더 많이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기록을 보면서 이 지점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112 대응의 문제 가운데 새로 발견한 내용을 먼저 보도했습니다.”

[단독]
[단독] "압사당해요" 신고 빗발칠 때‥"집회에 간첩침투" 첩보만 신속전파 (MBC 뉴스데스크 10월 23일 보도화면 갈무리)

긴박한 상황을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왜 대응을 안 한 거죠?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고 직전에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고 압사와 관련해 5건 출동하지 않고 처리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상태였죠. 그런데 기록을 분석해 보니 이 출동했다는 5건 빼고, 나머지 6건 중에 두 건도 현장상담 처리 방식이어서 출동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경찰 진술 중에, 이미 밤 9시쯤에 여자 핸드백이나 구두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게 보일 정도로 아수라장이라서 직원들하고 현장에 나가서 인파 통솔을 30분 정도하고 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통제가 없다 보니 사고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밤 9시에는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신고가 들어와서, 신고를 접수한 서울청 상황실 요원이 가장 긴급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는 ‘코드 제로’를 부여합니다. 각 일선 경찰서 상황실과 이태원 파출소에 전달되는데, 일선에 무전으로 전달해야 하는 용산서 112 상황실은 별도 무전 지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전으로 ‘어디 어디 위험하니까 가보세요’ 이런 식의 지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뉴얼도 지키지 않은 겁니다.

당사자들은 ‘원래 이런 대형 행사를 치르면 사람들이 깔려 죽을 것 같다거나 압사 직전이라는 호소를 많이 한다, 늘상 있는 일인 줄 알았다’고 해명합니다. 하지만, 이태원은 좀 달랐거든요. ‘압사당하고 있다’라는 현재진행형 표현도 있었고, 어떤 분은 ‘나는 구조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도 출동 처리를 하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신고에 묶어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점이 정말 아쉽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진술만 놓고 보자면, 늘상 들어오는 신고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또 성폭력 신고 같은 다른 긴급신고가 있어서 처리하느라고 놓쳤다거나, 나중에 보니 현장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무전이 와서 ‘잘 되고 있구나’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현장 요원을 믿었다는 건데, 현장 요원은 ‘우리는 바빴다. 그런 상황은 상황실에서 잘 전달해줘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태원 파출소 자체가 업무 부담이 높은 곳이 맞기도 하고요.”

"사람 많아 못 들어가네"‥인파보고 발길 돌린 구청 직원들 (MBC 뉴스데스크 10월 24일 보도화면 갈무리)

보도 보면, 참사 당일 대통령실 앞 집회에 경찰의 신경이 집중되었나 봐요?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상당한 주의가 쏠려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찰 조직의 주의가 어디에 쏠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용산서가 대통령실 앞에 집회 관리에 꽤나 많은 주의를 기울인 건 맞아요. 예를 들면, 용산서 상황실 지역 요원이 보통 2인 1조로 근무합니다. 그날 한 명이 신고받아서 지령하는 역할을 했다면, 다른 한 명은 집회 관리용으로 쓰이는 행사망이라는 무전망을 청취하고 있었습니다. ‘행사망’은 용산서 자체 내에서 112 신고 관련해서 쓰는 ‘자서망’하고 다른 겁니다. 집회 관리할 때만 경비 쪽에서 쓰는 건데 이 무전망을 용산서 상황실의 진행 요원이 청취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압사 신고를 ‘예상 못 했다, 전례도 없었다’는 이유로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보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갑자기 집회에 간첩이 들어와서 사람들을 해칠 것이다’란 신고는 즉각 경찰서장, 경비과장, 정보과장 등 간부들에게 전파합니다. 신고 처리 파일을 통째로 뿌리거든요. 간첩 신고 역시 전례가 없기는 마찬가지고,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잖아요. 여기에만 즉각 대응한 이유가 뭐냐는 의문이 남는 거죠.”

당시 용산구청 환경과 3명의 공무원이 소음단속 순찰하러 나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돌아갔다고 해요. 수사기록 보면 이들이 상황 보고조차 안 했다고 나오던데 왜일까요?

“용산구청은 핼러윈데이 대비 회의를 하고 그날 인력 배치 계획을 기록했습니다. 각 과별 비상근무자 명단을 작성하고, 각 근무자가 어떤 근무를 하는지도 적어놓습니다. 환경과는 소음단속, 주차단속과는 불법 주차단속, 감찰과는 사고 담당 이런 식으로 분배합니다.

그런데 수사보고서를 보면 담당자 대부분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와 관련된 비상근무로 지정됐는지 몰랐다고 얘기합니다. 구청 직원들이 인파를 보고 돌아간 건, 자신들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라고 아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재난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교육이나 준비가 부족했던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단독] 박희영
[단독] 박희영 "나는 신이 아니다"‥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책임자들' (MBC 뉴스데스크 10월 26일 보도화면 갈무리)

수사기록을 보면 박희영 용산구청장이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듯해요.

“도의적인 책임은 인정하지만 할 일은 다 했다는 게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실제 진술이고 재판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보입니다. 형사적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재난구조 책임기관의 장인 구청장이 참사 예방에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선출직이고 오래 근무한 공무원인 부구청장이 잘할 줄 알았다는 식으로 떠넘기는 태도로 일관한 점은 실망스럽습니다. 당일 당직 근무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서도, 구청장으로서 사전에 지시‧점검해야 했던 부분임에도 직원들 탓만 했습니다. 김광호 서울청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사기록 검토하면서 가장 분노했던 지점은 뭔가요?

“분노라기보다 안타까운 건 구청의 사전 조치와 경찰의 사전 경력 배치가 다 실패했다 하더라도, 사고 발생 당시 조금이라도 빨리 대응됐다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지점입니다. 너무 허망하게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한 번에 목숨을 잃었으니까요.”

수사기록 1만 2천 페이지를 분석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형사재판과 수사만으로는 답을 내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입니다. 우리에겐, 이미 벌어진 참사를 분석한 다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용산구청 측에서는 재난관리 차원에서 지역의 경사로나 좁은 골목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작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핼러윈이면 용산 이태원 골목들이 사람들로 가득 찼었거든요. 그때도 사고가 발생했을 뻔했어요. 왜 여기서 벌어졌느냐가 아니라, 다른 데서 안 벌어졌던 것이 요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경찰의 안일한 문화, 112 신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용산구청의 재난관리 교육 부재 등의 문제는 형사재판에서 누구를 처벌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참사를 막으려면, 이전에 요행히 넘어갔던 일들도 확실히 정비하려면, 좁은 의미에서 누구를 처벌하는 이 형사재판과 별개로 전반적인 조사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 앞에 놓인 것 같다" 답답한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 (MBC 뉴스데스크 10월 27일 보도화면 갈무리)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저희는 기록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서 생존자분들, 특히 외국인 생존자들을 어렵게 수소문했습니다. 기록에도, ‘헬프 미 헬프 미’라고 참사 직후 신고했던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생존자들과 희생자들의 경우 언어상의 문제 혹은 다른 문제로 두세 명 정도의 진술만 담겨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부분에 주목해서 기록의 여백, 그 기록이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찾고자 했습니다.

특히 참사로 아들을 잃으신 파스칼 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그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한국 정부의 정확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벨기에로 돌아간 생존자는,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너무 이해하고 싶어서 이태원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찾아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궁금하다는 말씀들을 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질문에 답하는 작업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MBC <10.29 이태원 참사 수사기록 분석 보도> 모아보기


[단독] 박희영 "나는 신이 아니다"‥수사기록 속 '무책임한 책임자들'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37495_36199.html

 
[단독] 10월 29일 밤 용산서 무전망‥"16분 동안 10번 비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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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아 못 들어가네"‥인파보고 발길 돌린 구청 직원들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36732_36199.html

 
[단독] "압사당해요" 신고 빗발칠 때‥"집회에 간첩침투" 첩보만 신속전파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36313_36199.html

 
"벽 앞에 놓인 것 같다" 답답한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37885_361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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