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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관현 연합뉴스 K-컬처기획단 부단장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도 왜덕산에서 찾았으면”

2022. 10. 05 by 안현우 기자

[미디어스=안현우 기자] 9월 24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명량해전의 무대였던 전남 진도 왜덕산을 찾아 “일본이 과거 조선을 침략해 고난의 역사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기원했다. 

이날 왜덕산에서 425년 전 정유재란 당시 한국과 일본에서 조성됐던 두 개 무덤들을 조명하는 한일 국제학술회의와 공동위령제가 진행됐다. 당시 왜군은 전리품으로 조선인 코를 베어가 교토 코무덤(京都耳塚)을 만들었지만, 진도 주민들은 왜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왜덕산에 공동묘지를 조성했다.

이번 행사를 문관현 연합뉴스 K-컬처기획단 부단장이 2년 넘게 기획하고 준비했다. 다음은 문관현 부단장과의 일문일답이다. 

2021년 3월 왜덕산 현장을 답사한 왜덕산동지회 문관현(연합뉴스), 오카사카 겐타로(일본 교도통신서울지국장), 박주언(진도문화원장) 좌로부터
2021년 3월 왜덕산 현장을 답사한 왜덕산동지회 문관현(연합뉴스), 오카사카 겐타로(일본 교도통신서울지국장), 박주언(진도문화원장) 좌로부터

이번 행사를 기획한 계기는?

2년 전 고향인 진도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왜덕산의 실체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일부 지역 언론사들이 보도한 사례가 있었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이를 승화시키기 위해 국제학술회의 개최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했는가 

일본 교도통신 서울지국장과 함께 진도 왜덕산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진도의 명량해전 유적지를 둘러본 뒤에 의기투합해 ‘왜덕산동지회’를 결성했다. 국내외 언론인과 정치인, 시민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됐다. 왜덕산 최초 발굴자인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을 찾아가 국제학술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흔쾌히 승낙한 진도문화원을 중심으로 이번 행사를 차곡차곡 준비해 왔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9월 24일 오전 왜군들의 무덤이 있는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 위령제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왜덕산에는 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연합뉴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9월 24일 오전 왜군들의 무덤이 있는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 위령제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왜덕산에는 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연합뉴스) 

왜덕산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 13척이 진도 울돌목에서 일본 군함 133척을 격파해 일본 수군 2만4천여 명 가운데 2천500여 명이 수장됐다. 대부분 에히메(愛媛)현 이마바리(今治)시를 근거지로 해적활동을 벌였던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이끄는 선봉대 소속이었다. 이들의 시신들이 조수에 밀려 진도군 고군면 오산만 일대로 흘러왔다. 고군면 내동리와 마산리, 오산리, 지수리, 지막리, 하율리, 황조리 등 7개 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들의 시신을 수습해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줬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 넋들을 위해 일본 방향으로 공동묘지를 조성했다. 

진도 왜덕산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인류가 전쟁과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적십자(ICRC) 조직과 제네바협약을 만들었다. 1949년 8월 골격이 완성된 제네바협약 가운데 제17조는 “충돌 당사국은 사망자를 정중히 매장하고 묘소를 존중할 것이며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적절히 유지하고 표시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놀라운 사실은 제네바협약이 만들어지기 352년 전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적십자정신이 실제로 구현됐다는 점이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휴머니즘 정신의 생생한 현장이다. 

일본 국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명량해전 현장까지 찾아온 하토야마 전 총리의 소신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향후 보다 더 많은 일본 정치인과 지식인, 시민운동가들이 왜덕산을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적군마저 끌어안았던 왜덕산을 한일관계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도 왜덕산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4일 오전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 위령제에서 헌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왜덕산에는 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연합뉴스)
24일 오전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 위령제에서 헌다례가 진행되고 있다. 왜덕산에는 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연합뉴스)

400년 만에 밝혀진 왜덕산에 대한 일본 반응은?

이 같은 사실이 2006년 일본에 알려지자 구루시마 현창회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검토가 이뤄졌다. 그리고 진도 현장까지 달려와 매년 왜덕산에 참배하고 있다. 진도와 이마바리시는 청소년 교환방문을 실시하고 교토시 코무덤 평화제를 공동개최하는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벌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지만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활발한 교류활동을 재개했으면 한다.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는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왜덕산 현지 발굴조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왜덕산 이외에 진도 해변가에는 일본 수군 시신들이 광범위하게 매장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본 코무덤 역시 현재 5군데 정도 발견됐지만,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학술적 조명이 이뤄지면 국제적으로 왜덕산 정신을 공유하도록 다양한 홍보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제네바협약의 살아있는 역사현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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