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갓 40살 남자의 반성문에 담긴, 좋은 '어른됨'의 길 < 인터뷰 < 뉴스 < 큐레이션기사 - 미디어스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주요메뉴

본문영역

인터뷰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남형석 MBC 기자

갓 40살 남자의 반성문에 담긴, 좋은 '어른됨'의 길

2022. 07. 01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로드맨’ ‘앵커로그’ 등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새로운 포맷을 기획한 남형석 MBC 기자가 지난 5월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란 산문집을 출간했다. ‘누구나 한 뼘 부족하게 자란다’란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남 기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나답게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담백하게 썼다.

책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지난 21일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의 저자 남형석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남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출간하셨잖아요. 첫 책 출간 소회가 궁금합니다.

“30대를 산 직장인이자 어른으로서 낸 거라 전문 분야가 아닐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긴장됐던 것 같고요. 그냥 ‘40살 갓 된 남자 어른의 반성문’ 같은 건데 이런 걸 내도 되는지, 읽어주는 사람은 있을까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했어요.”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이란 제목의 의미는 뭔가요?

“이게 어른의 반성문처럼 제가 매주 온라인 플랫폼 같은 데 올린 글이거든요. 그 글을 올리기 시작한 계기가 있어요. 20대 때 새로운 문물과 문화, 사상을 배우면서 어른이 되면 기존 어른들처럼 살지 않고 더 멋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20대를 보냈는데 막상 30대 끝 무렵이 되니까 ‘난 사회생활 하느라고 너무 힘들었어.’나 ‘조직 생활하려면 어쩔 수 없어.’란 합리화만 하면서 무기력하게 사는 것 같더라고요. 뭔가 남다르고 거창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제목을 짓게 됐어요.”

‘고작 이 정도의 어른 - 누구나 한 뼘 부족하게 자란다’ 표지 이미지 =알에이치코리아(RHK)
‘고작 이 정도의 어른 - 누구나 한 뼘 부족하게 자란다’ 표지 이미지 =알에이치코리아(RHK)

인맥 이야기로 시작하셨는데 저도 읽으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인맥 관리가 부질없을까요?

“인맥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한데 일단 너무 큰 기대를 걸면 내 삶이 좀 무너지는 것 같아요. 물론 인맥을 쌓는 것 자체가 즐겁고 또 체질에 맞는 사람이 있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억지로 하면 탈이 나는 것 같아요. 저도 인맥을 늘려가는 게 어느 순간부터 신났거든요. 그래서 이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 나를 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을 하는 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왜요?

“그 사람은 나를 멋진 인맥으로 생각 안 할 수도 있는데 나 혼자 그 사람을 인맥으로 자랑하는 것도 웃기고요. 자꾸 사람을 넓히거나 쌓는 ‘대상’으로, 또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내 욕심에 대한 발판으로 여기려는 마음이 스스로를 해치는 것 같더라고요. 인맥 쌓았다고 엄청 도움이 되는 경우도 극히 일부분의 얘기인 것 같은데, 그걸 믿고 그쪽에 시간을 쏟아붓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고요. 

무엇보다 사람을 사람 자체로 여기지 않게 되는 제 모습이 굉장히 초라하고 나빠 보여서 40대는 그렇게 안 살아보자는 거예요. 인맥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 내가 아낄 사람부터 연락해보자고 어느 순간부터 결심하게 됐어요.”

직업 상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나요? 내가 싫어도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관계 유지해야 할 사람이 있잖아요?

“기자님 말씀대로 사실 기자는 특수한 직업이라서 인맥이 중요하기도 한데요. 그렇게 인맥 넓혀서 좋은 기사 쓸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방법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인맥을 활용해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지요. 하지만 솔직히 전 좋은 기사를 쓰려고 인맥 넓혔는지, 아니면 으스대고 나중에 뭔가 잘 돼 보이지 않을까 이런 알량한 욕심이나 기대 때문에 인맥을 넓혔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정확히 답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그럼 요즘엔 인맥 관리 안 하세요?

“휴직한 뒤 누구에게 ‘취재원이니까 내가 관리하려면 이 사람한테 연락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연락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복직하시면 취재해야 하는데 불안하지 않으세요? 갑자기 연락해서 인터뷰 요청하면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씀이에요. 사실 걱정되긴 하는데 저는 두 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계속 형식적으로 연락하는 것도 자기의 필요 때문에 연락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라면 저랑 인터뷰 안 해주셔도 된다는 마음으로 기자 생활을 하려고 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안하지 않냐고 여쭤보셨는데, 기자 생활이 경주라든지 육상 레이스라고 생각하면 불안할 텐데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제까지 내가 정성 들여 연락 취했으니까 당신도 나한테 그렇게 해줘’가 아니라, 정말 그때그때 사정과 상황과 진심에 맞게 한다면 그 사람도 그걸 받아들여 줄 거라고 믿고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한 거죠.”

말 끊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요즘도 말 잘 끊나요?

“지금도 아예 안 끊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구랑 대화하고 오면 ‘내가 오늘 말을 끊었나?’, 매일 그 생각은 해요. 아니면 예를 들어 3명이 모이면 한 3분의 1 정도만 말을 하고 나머지 3분의 2 정도는 들어야 공평하잖아요. 근데 n분의 1이 넘게 말을 한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항상 해보고, 어느 순간에 내가 말을 끊었는지 반성하면서 살다 보니 예전보다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긴 해요.”

왜 말을 끊을까요?

“일단 서울에 살 때는 모든 게 급했잖아요. 바빠죽겠는데 누가 말 길게 하면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꾸 놓이게 되었던 것 같고요. 두 번째, 주로 말을 많이 끊는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좀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는 네 말을 다 이해했어’라고 확신하거나 아니면 ‘내 말이 더 중요해, 내 말을 들어봐’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주로 말을 끊는 사람인 것 같아요.”

기자는 직업 상 많이 듣지 않아요?

“약간 모순처럼 느껴지는 게 기자님도 인터뷰할 때 남의 말을 충분히 들으셔야 하고, 세계의 모든 기자는 그래야 하잖아요. 원래 남의 말을 듣고 글이나 다른 매체로 전달하는 게 기자의 본분인데, 제 동료 기자들이나 선후배들 보면 자기 말을 하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처럼 항상 상대방 말을 끊고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소주 얘기도 재밌더라고요. 소주 정말 끊으셨나요?

“저는 폭탄주 좋아하거든요. 폭탄주는 먹어도 딱 소주만 안 마셔요. 그 얘기 보고 선배들도 웃으며 ‘사실 나도 싫어했어’라고 말해 주는 분도 많이 계시고, 다들 비꼬아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선배 중에 한 분도 춘천에 놀러 와서 ‘너 막걸리 좋아하지’ 이러면서 본인은 소주 먹고 저한테는 막걸리 주시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해방됐어요.”

저는 소주 마시면 물약 먹는 기분이 들어서 안 좋아해요. 저에게 소주 마시자고 하는 사람 거의 없지만 저는 처음부터 소주 안 먹는다고 얘기하거든요. 그게 어려운가요?

“소주가 상징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래서 좀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누가 소주 한 잔 하자는 건 같이 취해 달라는 거고, 회식에서도 다 같이 이거 먹고 죽자는 분위기인데 남성 사회에서 그런 걸 거절하면 쪼잔한 사람이나 이기적인 사람처럼 비치잖아요. 그게 두려워서 계속 억지로 먹었던 것 같아요.”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출간한 남형석 MBC 기자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출간한 남형석 MBC 기자

외로움에 관한 내용도 있죠.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적다면 그건 복 아닐까요?

“물론 평소 외로움을 많이 느껴본 사람에게는 이 글이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쓸 때도 했고 지금도 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삶에서 외로움도 살짝은 있어야 되잖아요. 너무 많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만요. 하지만 가족생활 사회생활로 늘 바쁘게 돌아가는데, 가끔 외롭고 싶은 시간에도 계속 뭔가를 해야 해서 진짜 외로움 기질이 있는 사람조차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 또한 일종의 불행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썼던 것 같아요.”

아들 연호 등하굣길 이야기가 감동적이던데 늘 가던 길에서 어느 순간 보이는 게 있잖아요. 그게 인생하고 똑같은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서울에서 못 보고 있는 걸 춘천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조금 늦게 걷고 호흡을 좀 길게 가지면 아이에게서도 원래 있었던 것들이 보인다는 걸 저도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너무 빨리빨리 움직이니까 못 보는 걸까요,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못 볼까요?.

“둘 다인 것 같아요. 빨리빨리 움직이다 보니까 관심을 못 갖게 되는 환경에 놓이는 것 같아요.”

좋아하던 카페에 가족과 갔는데 노키즈존이라 거부당했을 때 황당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카페였거든요. 나중에 보니 인터넷에는 공지해놨는데 그 건물에는 그렇게 안 붙여놔서 제가 몰랐어요. 그때는 좀 속상했죠. 저는 기본적으로 노키즈존이 혐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제가 거부당한 게 기분 나빴다기보다, 뭔가 조금 다르거나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거부해버리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쉽게 단절 선언해버리는 것 같아 걱정은 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떠들면 부모가 제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것도 물론 문제죠. 그런데 저도 지금 공유 서재를 하고 있는데, 여기 어린이들이 엄마랑 같이 많이 오거든요. 기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부모가 분명히 있지만 10명 중 한두 명이에요. 10명 중 8명의 부모는 자기 아이들을 어떻게든 조심하게 하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하거든요. 근데 세상 어디에 가나, 어느 집단이나 조금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있잖아요. 10명 중에 한두 부모가 놔뒀다고 나머지 전부 다 차단해버리는 방식으로 단절을 선언해버리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서로 소통해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가 아니라, 내 당장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니네 집단은 전부 아웃이야’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싶어 안타깝다는 거죠.”

학창시절에 누구와 어울리냐도 중요한데 기자님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요.

“다행히 그때 학교 분위기가 그랬고요. 학교가 아파트촌과 시장의 한복판에 있어서 절반의 아이들은 아파트 아이들이었고 또 절반 아이들은 시장 쪽 아이들이었거든요. 저는 그때 학교의 기억이 너무 좋은데, 그게 제 사고나 가치관 이런 것들을 형성할 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아이한테도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학교 때부터 심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뭘까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게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저는 성공에 대한 집착도 많고, 그런 성공 방정식을 푸는 형식으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아요. 혹시 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삶에서 성공보다 중요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 삶의 모양대로 꼭 맞게 살아가는 건데 그걸 알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되잖아요. 저는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매일 자신에 대해 알아갔어요.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다 보면 남들이 다 뛰는 목표를 향해서 엉겁결에 같이 뛰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모양에 맞는 방식을 찾아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우리가 어느 순간엔 성공보다는 성장을, 또 성장보다는 성숙을 좇는 인생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책을 쓰게 됐어요.”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