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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오승목 기자

“언론은 국가범죄 완성한 공범이자 명백한 가해자”

2022. 06. 02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70~80년대 유독 간첩 사건이 많았다. 하지만 간첩으로 지목된 사람 대부분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사람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이들은 민주화 이후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을 간첩으로 보도한 언론은 판결 후 정정하거나 사과를 했을까?

지난 5월 17일과 24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은 ‘언론과 진실’ 2부작(☞바로가기)을 방송했다. 80년대 간첩으로 몰렸던 전북 군산 개야도 어부 정삼근 씨 이야기로 시작한 방송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간첩 사건 137건을 추려 사건 발생부터 재심 확정까지 관련 기사를 수집해 분석하고 문제점을 짚었다. 또한 조작사건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5월 28일 ‘언론과 진실’ 취재기자 중 한 명인 오승목 기자와 전화 연결해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오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언론과 진실’ 2부작

<시사기획 창> ‘언론과 진실’ 2부작을 최문호, 송명희 기자와 함께 취재하셨는데,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일단 후련한 기분이 가장 많이 들고요. 선배들 기획안 설명을 듣고 제가 참여했는데 취재 제작 과정이 6개월 정도로 길었어요. 서로 고생도 많이 했는데 방송 무사히 잘 나갔고, 또 좋은 반응이 잇따르고 있어서 뿌듯한 기분도 듭니다.”

군사독재 시절 조작간첩 사건에서 언론보도 행태를 취재하셨는데, 기획 계기가 있나요?

“과거 간첩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고문 수사한 수사관들이 있잖아요. 이들이 국가 훈장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2016년 2월에 <시사기획 창> ‘훈장’ 편이 방송됐어요. 당시 ‘훈장’ 편을 취재한 최문호 기자가 그때 국가의 잘못은 거론됐는데, 그 과정에서 포착된 언론의 잘못은 지금까지 한 번도 지적된 적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계속 갖고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기획안 설명을 듣고 바로 공감이 돼 도와드리겠다고 해서 취재하게 됐어요.”

이전엔 조작간첩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셨나요?

“피해자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는 몰랐어요. 가끔 법원 같은 데 취재를 가면 그런 사건이 종종 보이니 아직도 다 해결이 안 됐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조사하면서 무죄로 재심이 확정된 사례만 해도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죠.”

취재하며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이전엔 조작간첩 사건 피해 사례가 민주화운동 하셨던 분들이나 정부를 상대로 어떤 투쟁을 했던 분들 혹은 노동자 투쟁을 하셨던 분들 가운데 ‘정치적’인 이유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피해자들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잖아요. 취재하며 이런 분들이 피해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언론과 진실’ 2부작

그냥 아무나 범죄자로 낙인찍은 건데, 왜 그랬을까요?

“방송에서 한홍구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그 시절 정권이 간첩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꼬치에서 곶감 뽑아 먹듯이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누가 됐든 간에 고문해서 간첩으로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크게 반발하지 못할, 힘 없는 사람이 오히려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높죠.”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 정삼근 씨 이야기로 시작하신 이유는?

“방송에서 설명했지만 군산 개야도는 ‘간첩 섬’이라 불릴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어요. 그 가운데 정삼근 씨의 사례에서 언론의 폭력과 그에 따른 가족들의 피해가 인터뷰에 잘 담기기도 해서 이 이야기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정삼근 씨는 어떤 분인가요?

“지극히 평범한 어부였어요. 배라는 것 자체가 운항하다 보면 경계선이 모호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과정에 잠깐 북한으로 건너가서 납치되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정삼근 선생님도 그런 피해자 중에 한 분이었죠.”

언론이 간첩 사건 대상자의 실명과 사진을 보도했는데 문제가 있지 않나요?

“사실 이 부분은 당시 풍토도 감안해야 합니다. 그때 신문이나 방송 등에서는 관련자의 주소나 심지어 주민등록번호까지 공개하는 경우가 흔했거든요. 그러나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김병진 씨는 보안사로부터 익명을 약속받았음에도, 실제 방송과 신문에서 얼굴과 집 주소까지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단순히 풍토로만 인식하고 넘어갈 부분은 아닌 거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언론과 진실’ 2부작

그때가 법원 판결이 나온 후였나요, 그 이전이었나요?

“조작간첩 사건 기사는 이 간첩을 ‘검거’했다고 보안당국이 발표할 때부터 기사화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법원 재판도 있기 전에 이미 간첩으로 공공연히 낙인찍혀버린 거죠.”

무죄 추정의 원칙이 그땐 없었던 건가요?

“아예 없었다고 봐야죠. 사실 사법 절차에서 말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걸 언론 보도에 고스란히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제한된 정보로 발표되는 간첩 사건의 경우 검증이나 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금도 적극적으로 적용되기 어려운 게 현실임을 인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유가 당시 앞장서 적극적으로 보도한 언론의 면죄부가 되느냐가 중요한 지점입니다. 당시 어쩔 수 없이 그런 보도를 해야 할 분위기였다고 인정한다면, 무죄가 선고됐을 때 똑같이 적극적으로 명예회복 보도를 해줬어야죠.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취재진의 문제의식이에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피해가 많은 것 같던데요.

“가족들의 피해가 컸죠. 당사자는 간첩으로 몰려서 수사받게 되면 사회로부터 단절되기 때문에 보도를 보기 어려워져요. 언론보도를 보는 건 사실은 가족들이거든요. 가족들은 남편이나 아빠가 간첩으로 붙잡혔다는 신문기사나 방송 뉴스를 보고 충격받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는 피해를 입었죠.”

전두환 정권에서 조작 간첩사건이 많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고 북한과 대결에서 힘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건 이승만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는데, 전두환 때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유독 더 심해졌다는 추측을 할 수 있죠. 당시에 광주 학살이 일어났었잖아요. 거기에 따라 대학교 등 학원가에서도 거세게 저항운동이 일었는데 그걸 누르기 위해서 ‘학원 배후에는 간첩이 있다.’란 인식을 심어줘야 자신이 자행했던 일에 대한 정당화가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하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언론과 진실’ 2부작

“간첩 조작은 언론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국가범죄다”라고 평가했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당시 정치권력이 간첩사건을 조작한 이유는 단순히 실적 올리고 훈장 받는 것도 있었겠지만, 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북한과 대결을 위한 동력을 삼으려는 정치적인 의미도 크거든요. 그러려면 본인들이 간첩을 잡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되는데, 그 알리는 역할을 언론이 했죠. 그렇기 때문에 조작 간첩을 만들어내는 국가로선 언론이라는 공범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언론도 조작인 걸 알았을까요, 아니면 정부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을까요?

“후자라고 봐야죠. 기자가 왜 팩트를 알아내지 못했냐라고 하는 건 그때 현실을 생각했을 때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접근하기보다는 비판 없이 수용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나 싶어요. 언론도 발표할 때는 간첩이겠거니 생각을 한 거죠. 문제는 이후 간첩이 아닌 걸로 밝혀졌을 때 언론의 태도가 어떠했냐죠. 진실이 규명된 이후부터는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지 않았다는 게 저희 문제의식입니다.”

재심을 통한 무죄 판결 이후 사과한 언론은 단 한 군데도 없던데요.

“언론이 자기 잘못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거죠. 한 30~40년 전 잘못에 대해서 인정하고 사과하고, 뭔가 다른 모습으로 만회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합니다. 그건 그때 일이라고 분리하는 경향이 강해서 사과를 안 한다고 봐야겠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언론과 진실’ 2부작

강종헌 씨 경우 고법까지 무죄 판결이 났음에도 언론이 여전히 간첩이라고 하잖아요.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요?

“지극히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기사가 생산됐어요. ‘이분이 무죄다’란 얘기는 조선일보에도 한 줄씩 들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주로 제목부터 자극적으로, 무죄를 감안하지 않고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이 사람은 간첩’이라 해서 기사를 쓰는 거예요.”

의도가 있겠죠?

“당연히 의도가 있죠. 이 사람이 간첩이 맞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계속 간첩이라고 외치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이나 지금의 언론이나 여전히 바뀐 점이 없다는 게 이 방송의 문제의식이에요.”

한삼택 씨 조작은 어이없는 거 아닌가요? 조총련에게 초청장 보냈으니 간첩이란 거잖아요.

“그 시절 간첩 수사의 주 표적이 조총련 출신이었거든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단체 중에 북한 쪽과 가깝다는 이유로 조총련이 간첩 수사 표적이 돼왔어요. 제주도 분들이 식민지 시기 때부터, 특히 4.3사건을 겪고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셨어요. 그러다 보니 제주도 분들 중 일본에 친척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재일교포와 제주도는 왕래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돈이 없던 때였으니 그 시절에 제주도에 학교를 짓는다고 하면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재일교포 분들이 계시니까 기부를 한단 말이에요. 그 과정에서 조총련에서 활동하신 분이 섞여 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된 거예요.”

기부금이 왔으니 당연히 감사 인사를 했겠죠.

“그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한삼택 선생님은 김영중학교 교직원으로 계셨어요. 교장 관사 새로 짓겠다고 해서 기부금을 받기로 했는데, 재일교포한테도 편지를 보낸 거고 기부 의사를 밝혔어요. 그러면 편지가 오고 갔을 거 아니에요. 또 관사를 다 지었으니 낙성식이라고 해서 축하 행사를 하죠. 그러면 이 축하 행사에 기부자들을 초청하잖아요. 그 초청장을 발송했는데, 경찰이 이 사이에 조총련 간부가 있었고 편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 거예요.”

[탐사K/언론과 진실] 언론은 간첩 조작의 가해자였다

‘언론과 진실’ 편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으시다면?

“저도 기자이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일하다 보면 모든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교차검증하면서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보도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는 않는지, 정말로 보여줘야 하는 팩트는 무엇인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취재하며 어려웠던 부분은?

“데이터 분석이 어려웠어요. 전문 분석가가 분석해주셨는데 아무래도 옛날 신문을 수집하는 일이다 보니 저도 조금 가담을 했거든요. 근데 신문을 수집하는 작업이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아쉬운 점이 있을까요?

“재심 무죄판결 나온 조작간첩 사건만 해도 137건이니까 당연히 피해자분들이 더 많단 말이에요. 각 피해자 분들 사연도 정말 기구한데 그런 부분을 좀 더 담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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