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될 건 없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새롭지만 '반값 등록금'은 원래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이후, 언제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이 아니었다'고 부정하는 촌극이 있기도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반값 등록금 공약은 분명히 있었다.
한나라당의 진의를 믿을 수 없다고 덮어놓고 비난할 건 없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도 당장을 수습하기 위한 쇼라도 상관없다. 정치가 그렇지 않은 적은 별로 없다. 두고 보면 될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압박'이고 중요한 것은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무라도 썰어야 한단 점이다. 당정 간의 혼선이나 한나라당내 혼란 역시 문제될 건 없다. 갈등은 자연스런 것이고 갈등의 결과가 생산적일 수만 있다면 갈등은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반값 등록금'을 '표퓰리즘'이라고 비난했던 한나라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정치적으로 당연한 수순의 공세이다. 하지만 길게 가선 안 된다. 이 국면을 어떻게 타고 넘을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표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적절했다.
민주당은 '반값 등록금'을 9월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하지만 설령 9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잃을 건 없다.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정치적 의제가 되는 것 자체가 민주당에게 이롭다. 미리 선점하고 있던 의제로 정국을 끌어가는 것은 모든 정당이 희망하는 절호의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 의제에 제 발로 걸어들어 온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벌어진 정치적 국면이다. 미증유의 상황인만큼 이제 한나라당은 선택의 기로에 들어섰다. 황 원내대표의 '영향력'과 별개로 '반값 등록금'은 한나라당을 다 태우는 쏘시게가 될 것이다. 이 이슈가 가지고 있는 휘발성의 정도가 그렇다.
당장에, 친박계로 분류되는 당 내 경제통 나성린 의원은 황 원내대표를 "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힐난하며, "추가 감세를 철회한들 0원도 안 생기는데, 현재 세제시스템이 그대로 어떻게 세수 증가가 생길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친박계 입장에선 향후 정권을 인수하는데 이 문제가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단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명분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뜻 받기도 뭣해 애매한 투정을 부리는 셈이다.
결국, 친박계는 '반값 등록금'에 전제가 있는 반대를 할 수밖에 없다. 친박계는 '반값 등록금'의 불가 사유를 이명박 정부의 세정 실패에서 찾을 것이고, 논란이 격화 될수록 감세 정책의 허구성과 허투로 나랏돈을 들인 4대강 등 토건 사업의 문제점이 폭로될 것이다. 가뜩이나 치적이 없단 불안감에 쌓여있는 MB 입장에선 친박계의 이런 비판이 자신을 베려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향한 시한폭탄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6.2 지방선거를 관통한 '무상급식'이 전초전이었다면, '반값 등록금'은 대회전이 될 것이다. '부자아빠'를 염원하며 MB를 선택했던 한국 사회의 욕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이제 한국사회의 염려는 '가난한 자식'에게로 옮아가고 있다. '부자아빠'였던 MB가 연 '가난한 자식'의 시대에 반값 등록금으로 정치적 전선이 짜여 지고 있단 사실은 상징적이고 또 징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