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훌쩍 웃도는 결과다. 야권은 4.27 재보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움켜 줬다. 반면,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지의 곤란함에 놓이게 됐다. ‘천당 아래 분당’에서의 패배는 치명적이다. 사실상의 ‘전략공천’이 이뤄졌던 강원도의 패배는 지도부 총사퇴라는 최악의 결과로 결론지어졌다. ‘패닉’이란 표현으론 다 설명이 안 돼 ‘멜트다운’이란 고강도 비유가 횡행하는 상황이다.
조중동의 표정도 크게 일그러졌다. 종편 사업자 선정 이후 어느 정도 정권과의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조중동은 한나라당 정권과 강한 이해관계로 밀착되어 있다. 공공연히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는 조중동은 그보다 훨씬 강렬하게 이명박 정부의 연장을 원한다. 4.27 재보선 결과는 이명박 정부가 다음 권력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에 심각한 경고음을 보냈다. 조중동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오늘 자(28일), 조중동 사설은 대략적으로 같은 비판을 내놓았지만, 서로 때리고 싶은 구체적 상대에 따라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기도 했다. 조선은 한나라당을 때렸다. 중앙은 4.27 재보선의 시그널을 읽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동아는 안상수 대표를 직접 거론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한나라당내 계파 문제를 조이는 모습이었다.
조선은 ‘한나라당, 이제 民心을 알겠는가’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정치적 의미를 지닌 최대 접전지 분당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정권을 지켜달라는 강 후보 대신 변화를 주장한 손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을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의미로 꼽았다. 한나라당 패배의 이유를 “1년 전 지방선거 대패 후 펴낸 '패배와 반성의 기록'이란 백서”에 기록된 “성장 소외계층의 반발, 20~40대의 외면, 공천잡음 등”으로 그때와 거의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은 한나라당이 “노인들이 투표장에 몰린다는 소식에 안도하고 젊은이들이 대거 투표하러 나왔다는 말에 한숨을 쉬는 과거 모습을 이번에도 되풀이했다”며, “유권자들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이대론 안 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상황 타개를 위한 조선의 요구는 구체적이었다. 조선은 이번 선거를 통해 “한나라당이 내부적으론 여전히 두 개의 당파(黨派)로 갈려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노출했다”며 “이제 한나라당은 친이가 됐든 친박이 됐든 당의 실질적 지배주주(株主)들이 전면에 나서는 식으로 지도부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조선의 역할론”을 강조한 조선의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겐 남은 임기를 차기 대선 주자군과 공동으로 꾸려 나간다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낮은 수준의 탈당 요구로까지 나아갔다. 특히, 조선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밀고 당기며 펼쳐나갈 야권 대선게임에도 구경꾼이 모여들면서 정국은 빠르게 대선정국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점까지 예민하게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중앙은 4.27 재보선의 의미를 “한나라당이 크게 후퇴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며, “정권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흔들리더니 이젠 추락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중앙 역시 “변화의 가장 충격적인 현장”으로 분당을을 꼽았다. 중앙은 “이명박 대통령은 531만 표 차로 당선됐고 당은 2008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했었는데, 그런 정권이 이렇게 축소된 데에는 “외생(外生)과 내생의 요인”이 있었다며 외생적 요인으로 “정권이 경제위기 극복과 대기업 성적 그리고 수치(數値) 경제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실업·바닥경기·전세·물가 같은 민생 경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생적 요인으로는 여권 내 “갈등과 분열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비판하며 그 책임을 이재오 특임장관에게 돌렸다. 중앙은 정권의 2인자인 이 특임장관이 “‘친이계’라는 권력의 우물에 갇혀서 개헌 같은 비(非)현실적 과제에 매달렸다”고 비판하며, 당 지도부 역시 “반목과 개인플레이, 각자도생에 정신 없는 ‘봉숭아 학당’”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은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올 것을 경고하며, 개헌은 빨리 접고 대개혁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아의 4.27 재보선 의미 규정은 다소 독특했다. 참패라는 점을 인정하긴 했지만 마냥 졌다고 하긴 싫었는지 “체면을 살리기는 한 참패”라는 애매한 규정을 내렸다. 동아는 선거 이후의 여권을 평가하기에 앞서, 야권의 상황을 먼저 살피며 “손학규 대표의 정치적 행보에 탄력이 붙게 됐고, 유시민 대표의 기세는 추락했다”고 정리했다.
동아 역시 “여권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에는 일치했다. 하지만 동아는 그 1차적 책임을 안상수 대표에게서 찾았다. 그래서 조기 전당 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에 우선을 두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번 패배의 문제를 “여권의 고질적인 웰빙 보수 체질”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신랄한 문제들은 외면한 채, 같은 편에서나 의미를 알아듣고 기관지에서나 사용할 추상적 책임 추궁이다. 무엇보다 동아는 아직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조선, 중앙과 동아가 결정적으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아는 “재·보선 참패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조기에 나타날 수도 있다”며, “국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도 이 대통령은 광폭의 소통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세 신문은 얼핏 같은 비판을 하는 듯 하지만 그 비판의 구체성에 있어서는 사뭇 다른 차이를 보여줬다. 조선은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MB를 향해 낮은 수준의 탈당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향후, 조선의 정치적 ‘스탠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의 경우 권력의 분란을 만들고 있는 대상을 이재오 특임장관으로 특정하는 모습이었다. 친이계를 권력의 우물에 비교한 중앙의 논조 역시 향후 중앙의 선택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이에 반해 동아는 조기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 정도의 구체성 외에는 아직까지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이제 관심과 기대를 박근혜 전 대표로 옮겨가는 모습이고, 중앙은 이재오 특임장관을 집중 타격하고, 동아는 여전히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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