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이 불과 일주일 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오래도록 침묵하던(혹은 침묵을 강요받던) 여권의 잠룡들은 왜 하필 지금 기지개를 펴려고 하는 것일까? 당장의 선거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당내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고, 당이 어려운데 자신만 생각한다는 원성을 사야하는 때인데 말이다.
하지만 바로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이 장관과 오 시장의 잇따른 대권 도전 시사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절체절명의 때라는 공통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장 민감한 주제에 대한, 의도된 언급을 그들은 왜 지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일차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움직임이다. 아시다시피 박근혜 전 대표는 꿈쩍도 않고 있다. 다소 이른 타이밍에 '싱크탱크'를 띄우는 듯 했지만, 이후엔 긴 침묵이다. 그 '싱크탱크' 역시 발족식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얼마 전에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를 두고 이젠 정말 MB와 결별하는가 했지만 결과적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쳤다.
4.27 재보선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후보 등록 전 평창을 방문하며 모종의 역할을 할 것처럼 바람을 잡았지만 박 전 대표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결정적 순간 박 전 대표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던 강재섭 후보는 '제발 좀 도와 달라'는 사인을 여러 번 보냈지만, 박 전 대표는 "분당에 가지 않고, 개입하지도 않는다"는 매몰찬 회답을 보냈다.
박 전 대표의 계산은 명확하다. 이번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아 '선거의 여왕'이라는 화려한 경력에 흠집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박 전 대표의 독특한 정치활동은 이번에도 여지없다. 그 결과 한나라당의 4.27 예상 성적은 형편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무개입'을 선언한 이상 실제 성적표가 나온 이후에 그녀의 존재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분당마저 야권에 내준 한나라당의 유일한 구세주로 박 전 대표의 위세는 바로 하늘을 찌를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이 장관과 오 시장이 이 와중에 대권 의지를 밝힌 것은 그들 역시 이미 4.27 이후의 국면을 내다보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대로 가만히 있다간 정말 끝까지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갇히게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렇다. 이 장관과 오 시장이 이런 불안감을 표현한 것은 그 자체로 당의 공식적 입장, 지도부의 총력전 유세 활동과는 상관없이 여권의 권력 시계가 이미 4.27 패배 이후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장관과 오 시장은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혀 최소한 4.27 재보선 이후 여권의 권력 지도가 급격하게 박 전 대표 쪽으로 쏠리는 상황에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분수령은 4.27 재보선 직후에 있을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 될 것이다.
4.27 재보선 직후인 5월 2일 한나라당은 원내대표 경선을 치른다. 이 일정을 두고 서병수, 정두언, 남경필 의원 등 당내 비주류들은 4.27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정이라며 뒤로 미루자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 비주류들의 주장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이 특임장관이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자리는 친이계 의원 30명과 북한산 인근에서 계파 모임을 가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이재오계 의원들은 세를 가늠하고,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안경률 의원의 상황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두언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는 얼굴이 부어가며 선거 지원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계파의원들을 불러다 줄 세우기나 하고 있다"며 이 장관의 행보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20일 다시 계파모임을 소집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은 4파전의 양상이다. 이 장관의 지원을 받는 안경률 의원이 앞서가고 이어 이상득계와 TK의 지원을 받는 이병석 의원 그리고 중립 성향의 황우여, 이주영 의원이 접전을 벌이고 있단 분석이다. 이 장관이 선거 유세 기간 중에 계파 모임까지 가지며 노골적으로 안경률 의원을 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승부는 친박계가 어떤 선택을 통해 누굴 지지할 것이냐의 문제로 그래서 안 의원을 떨어뜨릴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 19일 이상득 의원과 박 전 대표가 강남의 한 호텔에서 회동을 가졌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정가에서는 신빙성 있는 정보로 판단하고 있다. 이상득계와 친박계가 연합하면 원내대표 경선의 판을 바꿀 수 있고, 이상득계와 친박계가 TK를 공통분모로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거리가 가까워 연합의 성사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결국, 18일 이 장관의 계파 모임 직후 이상득 의원과 박 전 대표가 만난 것이 사실이라면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절대 선거 개입을 하지 않겠다던 박 전 대표 역시 원내대표 경선에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단 얘기가 된다.
이유는 충분하다. 안경률 원내대표 체제가 되면 한나라당은 다시 한 번 '개헌'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헌의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개헌' 논의를 통해 공천의 살생부를 작성할 정도의 힘은 이재오계에 충분히 남아있다. 이 상황을 이상득 의원과 박 전대표가 용인할 리 만무하다.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당 지도부는 얼굴이 부어가며 선거 운동을 하고 있지만 당내 계파의 수장들은 이미 선거에 관심이 없다. 이 장관은 대리전을 통해 당을 장악하고, 자신이 직접 대권에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계파의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오 시장은 이재오와 박근혜의 대결로 판이 조기 마감될 것을 우려해, 급히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복지 포퓰리즘'을 겨냥한 오 시장의 화법은 박 전 대표를 향한 것이다. 이처럼 당내 유력 주자들이 모두 미래 권력을 향한 충만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한나라당은 참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4.27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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