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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언론 보도와 부조화를 이룬 법원의 결정

강희락 구속영장 기각과 언론의 책임

2011. 01. 14 by 김완 기자

▲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귀가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른바 '함바집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꼽혔던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최석문 판사)은 강 전 청장의 혐의 사실에 대해 "구속할 정도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확보된 증거자료와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강 전 청장이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을 할 우려도 없다"는 영장 기각의 이유를 밝혔다.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검찰은 당혹스럽단 반응이다. 강 전 청장의 혐의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며, 대대적인 수사팀을 꾸렸지만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영장이 기각된 이후 검찰은 수사팀 전원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납득할 수 없다. 재청구 한다'외엔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강 전 청장을 '범죄자'로 인식해 온 시민들 입장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방송 뉴스를 비롯한 미디어들은 며칠에 걸쳐 강 전 청장의 혐의 사실에 대해 자세히 보도해왔다. 강 전 청장에게 '출국 금지'가 내려진 지난 5일 이후 방송 뉴스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 전 청장의 혐의를 증폭하는 보도를 해왔다. 양파 껍질이 까지듯 자고 나면 새로운 혐의 사실이 추가되는 방식이었다.

강 전 청장이 함바 사장 유 씨에게 해외에 나가 있으라며 4000만원을 주었단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고, 부하 직원에게 수시로 유 씨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단 보도가 있기도 했다. 의혹이 경찰 조직 전체로 확산되자 조현오 경찰청장은 "유 씨와 접촉한 경찰은 자진 신고하라"는 명을 내렸고, 현재까지 총 43명의 경찰이 유 씨와 만난 적이 있다고 자신 신고까지 한 상황이다. 김병철 울산지방청장의 경우에는 아예 자진해서 대기발령 조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누가 보더라도 유 씨의 로비가 경찰 조직 전체를 향해 있던 것처럼 보였고, 언론 역시 이러한 프레임에서 관련 문제를 확대해 왔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법원이 구속 영장을 심사하는 것은 여전히 관행적인 규범을 많이 따르는 편이다. 범죄 사실이 명백할 경우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더라도 구속 영장이 받아들여지곤 한다. 언론 보도와 경찰의 대응을 볼 때, 강 전 청장의 범죄 사실은 명백해 보였고 당연히 구속 영장이 받아들여졌어야 했다.

강 전 청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많은 뒷말을 낳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은 '헛갈린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각의 실제 이유와는 상관없이 아직은 법원이 강 전 청장의 혐의 사실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관행의 문제라는 얘기처럼, 법원 역시 구속 영장 기각이 어떤 효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한 것일 테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최근 열흘 간 이어진 강 전 청장을 둘러싼 논란과 언론 보도는 부조화를 이루게 됐다.

물론, 구속 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강 전 청장의 혐의가 모두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을 증거를 보강하여 곧 영장을 다시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다. 짚어봐야 할 점은 분명해졌다. 한명숙 재판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검찰이 갖고 있는 증거는 '진술'이 유일하다시피하다. 강 전 청장이 관련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언론에 흘린 피의 사실은 대부분 함바 사장 유씨의 진술 내용뿐이다.

언론 역시 돌아봐야 할 지점이 많이 보인다. 사회적 권력을 지닌 고위층의 비리 문제인지라 강 전 청장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하지만 구속 영장 기각으로 검찰 수사의 신뢰성이 상당 부분 떨어지고 말았다. 애초 함바 게이트는 공사 현장 식당 운영권을 둘러싼 비리 사건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소 동떨어진 문제인 '경찰 내부 인사' 비리가 부각됐다.

로비라고 하는 것이 힘 있는 자에게 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현장 식당 운영권을 따내기 위한 로비가 직접적 결정권이 없는 경찰 고위직에게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다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 부분을 거의 짚지 않은 채, 검찰의 수사 방향에 맞춤한 보도로 일관해왔다. 관련하여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한 경찰 고위 간부는 이번 수사가 "수사권 독립 문제를 둘러싼 경찰 손보기 차원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수사 배경 자체에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스폰서 검사'나 '그랜저 검사'와 같은 검찰 치부를 덮기" 위한 기획 수사가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것은 MB정부 들어 거의 하나의 관례로 굳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을 잃는 역사적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분명해 보이는 사실도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 자세다. 고위직의 비리이기에 우선 보도하고 본다는 '조직 논리'가 앞서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검찰의 문제이기에 앞서 언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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