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가 드디어 한을 풀었습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뮤직뱅크>에서 1위에 오른 것이지요. 한승연이 노래 부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더군요. 그동안의 서러움에 감격이 북받쳤나봅니다.

소녀시대보다도 먼저 데뷔한 걸그룹 선두주자였지만 카라의 역정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죠. 많은 사람들이 카라를 굴곡 많고 불쌍했던 생계형 아이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정말 힘든 시기를 한승연이 ‘독기’로 버텼지요. 그래서 한승연에겐 햄스터처럼 귀여우면서도 독하다는 ‘독햄’이란 별명도 붙었습니다.

순탄하게 국민 걸그룹의 길을 간 소녀시대와는 정반대의 경로를 경험한 것이죠. 역경을 이겨냈다는 진부한 표현이 카라에겐 너무나 잘 어울리네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국민적인 성원을 받을 때 먼저 데뷔한 카라는 ‘듣보잡’으로 남아 굴욕을 감당했습니다. 이후 걸그룹 전성시대가 시작되면서 재정비한 카라도 인기 걸그룹의 대열에 합류하지만, 2류의 지위를 벗어나진 못했죠.

나름 야심작이었던 ‘허니’를 내놨을 때는 소녀시대가 ‘지’로 한국을 발칵 뒤집어버리는 바람에 묻히기도 했습니다. 주위에 소녀시대, 원더걸스 좋다는 사람은 많아도 카라 좋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이번에 1위할 때 눈물을 줄줄 흘린 한승연은 지난주 방송 중에 ‘꽈당’하고 넘어져 화제가 됐었습니다. 독기어린 생계형 아이돌답게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안무를 소화해 역시 한승연이라는 찬사를 받았죠. 그랬던 한승연이 이번 주에는 1위로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가히 드라마네요.

‘한듣보 개고생’이란 표현이 말해주듯 한승연은 특히 굴욕과 고생으로 점철된 시절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한승연의 눈물에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루팡’이 <뮤직뱅크> 1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명했었지요. 카라는 소녀시대와 티아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보였습니다. 막강한 팬덤의 지원을 받는 소녀시대와 자극적인 노래로 밀어붙이는 티아라 사이에서 카라의 팬덤은 약해보였고, ‘루팡’의 자극성도 약해보였던 것이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소녀시대의 팬덤은 정말 엄청납니다. 내 주위에 있는 한 사람도 소녀시대 CD를 열 장씩 사서 돌리더군요.)


하지만 놀랍게도 ‘루팡’이 <뮤직뱅크> 1위를 했군요. 소녀시대의 ‘오!'와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가 마땅찮았던 내 입장에선 희소식입니다. 카라나 한승연의 인생역전은 드라마틱하고, ’루팡‘의 승리는 반갑고 그러네요.

‘카라 덕후’라서가 아닙니다. 편안한 댄스리듬이나 섹시 컨셉에 기대지 않고 개성을 살린 노래라서 그런 겁니다. 소녀시대나 티아라도 지금처럼 ‘오빠’나 ‘섹시’를 노골적으로 파는 것을 그만 두고, 개성과 완성도가 있는 컨텐츠를 들고 나온다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아이돌은 이제 한국 가요계의 조건입니다. 죽으나 사나 한국에서 쇼프로그램을 본다면 아이돌의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이돌에게도 개성적인 음악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돌만 나오는데, 그 아이돌들의 노래가 모두 천편일률적이면 음악이 아니라 공해가 됩니다. 그래서 개성이 느껴지는 카라의 ‘루팡’이 특히 반갑습니다. <뮤직뱅크> 1위에도 박수를 보내게 되구요.

1주일 사이에 ‘꽈당 - 벌떡 - 감격의 눈물’로 이어진 스토리가 마치, 카라의 역사를 압축한 것 같습니다. 부디 앞으로 다시는 ‘꽈당’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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