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방송사들에게는 회사 이니셜을 다르게 부르는 경향이 굳어졌다. 다만 때에 따라서 애칭이 앞서거나 독한 별칭으로 불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MBC를 들 수 있다. <무한도전> 초기에 붙여진 마봉춘은 과거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았던 “만나면 좋은 친구”였을 때의 애칭이었다. 그러나 암흑기 동안의 MBC는 엠빙신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아직도 MBC는 마봉춘이 아니다. 모든 매체가 열을 올렸던 촛불정국에서 MBC와 KBS는 시민들에 의해 배척됐다. MBC는 심지어 촛불현장에서 떨어진 외곽 건물 계단에 숨어서 보도를 할 지경이었다. 반면 MBC에서 쫓겨난 해직기자, PD들은 촛불현장에 서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21세기에 해직기자라는 구세기의 유물을 방치한 박근혜 정권은 정말 부끄러움을 몰랐다. 그래서 무너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2017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망가진 MBC의 심장부를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100분토론' 문재인, MBC 한복판에서 언론적폐 외치다! 참고) 그리고 몇 달이 흐른 2017년 8월은 그렇게 망가졌던 MBC를 일으켜 세우려는 다양한 노력과 투쟁이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방송의 경우에는 언론자유지수가 민주정부 때보다 크게 떨어졌다”면서 간접적으로 MBC에 대한 공영성 회복의 동기를 부여했다.

그뿐 아니다. 김영주 노동부장관은 “PD, 기자들을 자기 분야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업무배치를 해 상식 밖의 관리를 한 일이 확인됐다"며 "이런 부분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돼 수사 중”이라면서 MBC 특별근로감독 관련 결과를 브리핑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당연히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해나갈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MBC 구성원 자신들의 의지라고 할 것이다. JTBC 손석희 현상 때문인지 사실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 반응이 전처럼 뜨겁지 않았다. 그런 아쉬움이 언론노조에서도 적잖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방송이 이렇게 될 동안 무엇을 했냐는 질책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MBC와 KBS의 노력이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방송출연·업무 거부에 돌입한 MBC 아나운서 27명은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상암 MBC경영센터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출연 방해·제지 등 아나운서 업무 관련 부당 침해 사례 등을 발표했다.

그런 면에서 22일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총파업 동참선언과 아나운서들의 눈물의 증언 등은 상당한 효과를 봤다. 마침내 민심도 출렁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어느 때보다 아나운서 27명의 기자회견에 쏠린 관심은 높았다. MBC를 넌지시 응원하는 의도가 엿보인 JTBC의 연속 보도 역시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힘을 보탰을 것이다.

이제 MBC 구성원들의 재기하려는 결의도, 그것을 뒷받침할 민주정부의 존재도, 공정방송을 고대하던 시민들의 지지도 모두 무르익고 있다. 꽤 오랫동안 MBC 스스로 포기했던 로고송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에 대한 그리움도 또한 끝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워낙 폐허나 다름없게 된 MBC를 재건하기란 절대 쉬운 일도, 금세 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복잡한 방송법도 골치 아픈 방문진도 일단은 그냥 두더라도, 일단 MBC를 이토록 망가뜨린 장본인들이 물러나고, 블랙리스트에 의해 쫓겨 갔던 기자, PD, 아나운서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행복해진다.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이미 떠나버린 소위 간판 얼굴들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행복해질 상상은 그렇게 정상화된 MBC 뉴스데스크, PD수첩, 100분토론 등을 다시 보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와 영상기자회 등이 서울 상암동 MBC신사옥 1층 로비에서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고 ‘제작거부’를 선언하는 집회를 진행한 모습. (사진=언론노조MBC본부)

누군가는 MBC 정상화를 “27명의 손석희를 얻는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손석희를 얻지 못하더라도 공정방송을 하겠다는 의지와 신념 때문에 기자, PD, 아나운서가 본래의 업무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배치된 현대판 유배에 분노를 삭여야 했던 그 세월을 보상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온 겨울을 광장에서 작은 촛불 하나에 쌓았던 염원이 그런 것들이었다. 진실로 인해 핍박받는 모든 이들이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일. 부정한 권력을 자기 것처럼 휘두른 자들이 고스란히 처벌받는 일. 그런 것들이었다. 비록 광장에서는 쫓아냈지만 이제는 예전의 MBC로, 마봉춘으로 돌아갈 때도 됐다.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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