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분쟁의 경우 장기화되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불확실해진다.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나면서 누가 원인 제공을 한 것인지 애매해지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테러 공격과 반테러작전 등이고 한반도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한미 두 나라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방어적 훈련이라고 하는 반면 북은 북침 예행연습이라고 각을 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을지훈련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민관군의 방어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며 이를 빌미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도발적인 행동을 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인 UFG가 살벌한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한반도)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며 이 훈련이 실전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미 두 나라와 북한이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데 어느 쪽이 정답인가?

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는 우선 관련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비교하면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미국의 연간 국방예산은 북한의 약 600배, 남한의 경우 북한보다 30배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무기의 경우 미국은 실전 사용이 가능한 것만 7천 여 개, 북한은 30-40개 정도로 전해진다. 남한은 핵무기가 없지만 재래식 무기는 북에 비해 월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현격한 군사력의 격차 속에서 행해지는 UFG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 대국과 세계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북한을 상대로 벌이는 연합훈련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현대전쟁의 전략이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 혼란스러워졌다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한미연합훈련의 위상을 살피면 북한이 왜 격한 반응을 보일지 쉽게 알 수 있다.

UFG는 1976년 시작된 한미연합훈련인 ‘을지 포커스 랜스’ 훈련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컴퓨터 지휘와 통제 훈련이다. UFG는, 매년 3, 4월에 실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합동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과 쌍벽을 이루는 대북 군사훈련이다. 북한은 매년 이 두 개의 훈련이 실시되는 것에 대해 강력 반발해 왔다. 올해도 그런 예의 하나로 보인다.

다시 남북, 북미 관계로 돌아가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의 대북정책인 ‘최대한 압박과 대화’에 대해 대화 쪽에 방점을 찍으면서 남북교류협력을 제안했지만 그로부터 100일이 지나도 남북관계는 외견상 큰 변화가 없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촛불혁명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래서 과거 이명박근혜 정권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차가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지피지기의 자세로 살피보면 그 윤곽이 뚜렷해진다. 즉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남한 체제의 연속선상에서 가장 최근에 뽑힌 대통령으로 대외적으로 비춰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혁명정부가 아닌 합법적 정부 형태를 취하면서 종래의 대북 정책과 한미의 대북 정책 등을 고스란히 승계한 상황에서 취임한 것이다. 북에서 볼 때 문 대통령의 대북 제안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대북 정책으로 조성된 구조 속에서의 제안에 불과한 것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기구의 담당자만 바뀐 것이랄까.

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이 미사일에 탑재할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 정부 당국이 공식 인정한 것은 중대한 상황 변화의 하나다. 북미관계가 변화할 가능성이 큰 시점이 된 것이다. 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미국과의 국교수립을 희망하는 대화의지를 밝혀왔고 미국은 이리저리 피해왔다.

미국은 특히 최근에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먼저 포기해야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북한이 먼저 무릎을 꿇으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북한이 최근 괌에 대해 미사일 4발을 발사할 계획을 발표하자 미국의 모든 언론이 톱기사로 보도했고 미국 조야도 발칵 뒤집히는 형국이 되었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것이 지구촌의 주시 하에 확인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문 대통령이 대북 제의를 할 때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실질적으로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비춰졌을 때에 추진했던 대북 정책은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파악했어야 한다. 그러나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변화된 시대 상황을 고려한 대북 제안은 없었다. 문 대통령의 태도에서 평화적 해결을 빼면, 특히 북의 핵과 미사일 해법에 대한 태도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UFG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의원이나 군사고위층에게 ‘한반도에서 한국의 동의 없이 전쟁은 절대 안된다’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 이는 이명박근혜 대통령이 거의 하지 않았던 메시지를 강조한 것으로 박수갈채를 받을 만 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 핵과 미사일 포기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 트럼프 행정부와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편에 확실히 선다는 것을 밝힌 것인데 중국을 깊이 살피고 북미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전망한 뒤 나온 견해인지 의심스럽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를 장기화, 강화할 의지를 관영언론을 통해 강조하면서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중단시킬 능력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중국은 북한 핵, 미사일과 한미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제안하면서 북미 간에 북한 체제 변화가 없는 한계 내에서의 한반도 전면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 북미수교라는 방안에만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국가간 관계는 대중매체를 수단으로 한 선전과 홍보, 심리전 등이 행해진다. 정보화 시대가 심화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속된 말로 대중매체의 머릿기사로 오르지 않는 대외정책은 약발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촌의 정세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던 시대와는 크게 달라졌다.

문 대통령 정부는 이런 점을 깊이 살펴 국내외 언론이 깜짝 놀라 주목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그런 참신한 대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과거 자료를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 정부는 앞으로 북미간 대화가 성사될 분위기가 조성되고 중국의 사드 보복이 지속되는 상황 등을 감안한, 그래서 북한이나 미국 등이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한반도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확실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