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직접민주주의’란 개념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개최한 ‘국민인수위 대국민 보고회’에서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을 두고 자유한국당 등은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말할 때는 특정한 제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이 대표적이다. 체제 운영의 일반 원리로 직접민주주의를 말할 때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사례가 주로 언급된다. 당시의 ‘폴리스’는 민회를 통해 통치됐는데, 이곳에는 모든 자유민 성인 남성이 출석해 정치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는 현대에도 스위스 일부 주 등에서 한정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란 어느 쪽인가. 문재인 대통령은“이제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이런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로 촛불집회처럼 정치가 잘못할 때 직접 촛불을 들거나 댓글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고 정당의 당원으로 참여하며 정부의 정책에 직접 제안하는 것 등을 꼽았다.

이와 같은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는 전면적인 제도의 개선이나 체제 운영 원리의 변화보다는 현재 대의정치 틀 안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이해된다. 촛불집회나 댓글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명 방식일 뿐이지 어떤 종류의 제도적 대안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정당에 직접 가입해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의민주주의 원리 하에서 ‘대중정당론’에 가깝지 굳이 직접민주주의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론은 명명이라는 차원에서는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정치의 과정에서 등장한 표현 하나를 문제 삼아 전체 맥락을 비트는 것은 우리 정치와 언론의 오랜 악습이다. 이 악습을 되풀이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직접민주주의’가 본래의 개념에 맞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이의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 정부 출범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인 '대한민국, 대한국민' 2부 행사인 '국민이 묻고 대통령이 답하다'에서 국민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는 ‘소통’ 행보가 어떤 생각과 개념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상당한 화제 속에서 진행됐던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이나 청와대 홈페이지 개편 같은 일들이 그렇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사전 ‘각본’이 없는 상태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이 답하는 모범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여기서 방점은 대통령이 자신의 ‘진실한 생각’을 언론에 직접 밝힌다는 데 찍힌다.

이 때문에 해프닝도 있었다. 부동산 경기의 과열 국면이 이어질 경우 보유세를 인상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대통령이 ‘부유세’의 도입 여부를 묻는 것으로 이해하고 답변을 한 일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답변 내용을 이후 수정했지만, 적어도 이런 해프닝은 각본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청와대 홈페이지 개편의 경우에는 문재인 정권이 어떤 방식으로 국민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지를 좀 더 분명히 보여준다. 청와대는 홈페이지가 ‘국민소통 플랫폼’의 중심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며 ‘청와대 뉴스룸’, ‘국민소통 광장’ 등을 신설한 형태로 개편을 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로 등장한 게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부르는 별명 등에 대해 직접 생각을 밝혀 크게 화제가 된 ‘소소한 인터뷰’였다. 이 사례는 이번 정부가 홍보성 콘텐츠를 생산해 국민에게 직접 공급하는 방식을 앞으로도 선호하리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일 것이다.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는 당시 대다수 가정에 공급됐던 라디오를 활용한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라디오 연설을 통해 진솔하게 풀어놓는 형식의 ‘노변정담(fireside chats)’은 당시 미국 국민들이 정부 정책의 취지와 의도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정치 전략의 ‘고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이 방식의 장점을 취하려 했지만 시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일방적이고 관행적인 연설로 비춰지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해야 했던 이유는 그가 추진하려던 뉴딜 정책을 놓고 기성 정치권 및 언론이 거부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일련의 사회보장제도 및 보조금 지급, 부채탕감 정책 등은 ‘표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성 체제의 맹렬한 반발에 부딪쳤다. 대다수 언론 역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쓰지 못했다면 ‘뉴딜’을 통한 대공황 극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탈원전 공론화나 최저임금인상 등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 궁극적으로 대화를 추구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 정치 및 언론의 거부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들의 세계관 속에서 탈원전은 ‘괴담’, 소득주도성장은 ‘정책 실험’, 대북대화론은 ‘종북’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호출한 것은 이런 난국 속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것은 그렇다고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일련의 개혁 정책이 과연 루즈벨트 시절 미국의 변화를 추동해낸 것에 비할 바인지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대화론에 힘이 실리는 게 불가능한 국면이 되자 군비확장을 통한 압박이라는 ‘표준적’ 대응을 선택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복지는 성장 전략의 하나”, “안전, 생명, 복지, 의료, 보육 등 복지 확대가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계 방안을 강구해 주길 바란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기성 정치가 전제하는 ‘생산적 복지’의 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보수 정치와 언론의 반발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선택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며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려는 것이라면 좀 더 과감할 필요도 있다. 문재인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진보정당 역시 과감한 개혁적 의제를 제시하며 보수정치와 직접 대결하는 정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뤄야 할 것은 양극화 해소와 분배 강화이다. 막대를 왼쪽으로 휘게 하기 위해서는 거의 꺾어지기 직전까지 구부려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