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둘러싼 풍경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고마워요 문재인”이란 말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을 두고 정치권이 벌이는 논쟁을 보면 그렇다.

이례적인 이 사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지지 세력의 선동에 포털 검색어 순위가 순식간에 점령되는 모습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면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검색어 순위 기획조작설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했고, 국민의당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특정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 여론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대선후보 시절 ‘양념의 추억’이 있다. 오늘 벌어진 일은 또 한 번 그때의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라고 했다.

일종의 ‘음모론’을 제기한 것인데,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자유한국당의 ‘선동론’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고마워요 문재인”이란 단어가 오르는 사건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 여론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고마워요 문재인”이란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지 여부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는 논리적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비난의 빌미만 줄 뿐이다.

국민의당의 ‘양념론’ 역시 이해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대선 때의 ‘양념’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쟁 후보들에게 적대적 심정을 드러낸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들이 누구를 비난한 게 아니라 그저 “고마워요 문재인”이라고 한 것이다. 단지 인터넷 공간에서 ‘위력’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이런 식의 비판을 하는 건 불성실한 자세다.

물론 “고마워요 문재인”이란 표현 역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본인의 능력으로 대통령이 되었는데, 지지자들은 무엇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인가? 아마 이 표현의 원형은 인기가수에게 팬들이 보이는 반응 등에서 드러나는 정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팬들이 “고마워요 서태지”라고 한다면, 서태지라는 가수가 좋은 음악을 만들고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 즉 가수 본인을 포함한 ‘좋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팬들의 목소리가 이와 다르지 않다. 즉, 굳이 명명하자면 ‘팬덤정치’다. 이 맥락에서 정치인은 상품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둘러싼 풍경에는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기념우표다. 16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의 온라인 판매 물량 16만 장은 오전 중 완판 됐다. 일부 지지자들은 기념우표 구매를 위해 광화문우체국 등 앞에 최대 6, 7백명씩 줄을 서기도 했다. 정치적 의사를 상품의 구매로 표시하는 건 이미 일상화돼 있다. ‘이니 굿즈’라는 말로 표현되는 문재인 대통령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세태가 이를 방증한다.

‘팬덤 정치’의 오늘은 언론을 대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개 소셜미디어나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에서 확인되는데, 이를 잘 관찰하다보면 기사에 대한 불만 표시나 이의 제기가 특정 맥락을 전제하는 공통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는 주로 각자가 선호하는 상품에 유리한 내용인가 불리한 내용인가로 판가름 된다. 이들 생각에 ‘나쁜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대개 뒷돈을 받았다거나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스마트 기기 등을 생산하는 애플사가 신제품을 발표하는 경우 등을 떠올려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매번 애플사의 제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전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평판’이 자신이 구매한 상품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이 특히 더 잘 드러나는 공간은 연예 스포츠 관련 매체이다. 대중이 상상하는 이들 매체의 문법은 진실이 아니라 ‘클릭 수’나 광고 또는 협찬에 저널리즘의 모든 것을 거는 기만적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상상은 진실에 상당히 근접한다. 기만적인 저널리즘이 난무하니 그나마 제대로 된 기사에는 스스로 ‘오피셜’이라는 표시를 따로 해야 한다.

이 문법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연예 스포츠 관련 뉴스를 보면 “공식 입장(오피셜)인가요?”라고 먼저 묻는다. ‘팬덤’은 ‘오피셜’을 무기로 해 ‘상대 팬덤’의 ‘선동’과 ‘왜곡’에 대항한다. 이를 통해 이들의 의도하는 것은 자신이 구매하는 상품의 가치 제고이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구매한 상품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는 ‘능동적 소비자’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법과 맥락이 정치에 고스란히 옮겨왔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정치문화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사는 바로 이 현상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고마워요 문재인” 운동이나 취임 기념우표 구매 열풍 등은 ‘문재인’이라는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며, 지난 대선에서 문제가 됐던 ‘양념’ 논란은 상대 팬덤이 구매한 상품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런데 과연 이 문법과 맥락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만 내면화 돼있는 것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규모와 양상이 다를 뿐이지, 이런 식의 개념은 대중의 거의 모든 정치인에 대한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지지나 반대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이 ‘신상품’에 가까운 성격을 가질수록 더 심하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상’이 이런 문법과 맥락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인터넷 공간의 논쟁사를 보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 보장에 대한 논쟁은 마치 페미니즘 자체를 ‘불량식품’으로 대하는 태도로 다뤄졌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지지’는 ‘구매’로 ‘반대’는 ‘불매’로 대체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남는 질문은 대중은 왜 소비자의 문법으로 정치를 대하게 되었느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세상과 유의미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단이 오직 소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질서에 균열을 내고 우리를 생산자와 통치자의 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수단을 가진 것은 결국 대안적 정치와 이를 추동하는 ‘담론’이다.

기성 정치가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에 오직 스스로 ‘양품(良品)’이 되기를 바라며 ‘쉬운 비판’을 반복하는 것은 현상을 유지하게 만들어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같은 잘못을 언론도 반복하고 있다. 기성 정치와 언론이 먼저 상품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시도해야 ‘팬덤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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