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형 인물의 대표 황철웅. 그는 출생과 태하라는 과거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과거의 동물이다. 유명한 미국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는 범죄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을 일반에게 알리며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 프로파일링이 드마라에 적용되어서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범죄의 반복에도 흥미를 잃지 않게 했다. 즉 무작정 때려잡는 슈퍼맨 놀이에 지친 시청자의 높아진 지적 수준에 맞춤한 포맷이었던 것이다. 프로파일링을 단순화시키자면, 인간의 어떤 행동은 반드시 과거 경험의 인과 속에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송태하는 답답한 면만 보여 왔다. 그가 충심으로 따르던 소현세자의 죽음과 조선 최고의 무장에서 관노로의 하락한 트라우마 탓인지 원손을 향한 일관된 행보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느끼기에는 뭔가 부족감을 주었다. 그것은 언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태하를 불명예스럽게 했다. 그러나 19회에 들어 겨우 오랜 미로를 벗어날 통로를 찾은 듯싶다. 과거에 얽매였던 태하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모티브는 역시 언년이었다.

송태하, 그는 몽상가

태하의 케릭터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체제 속 변화를 꿈꾸는 인물이다.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을 사면시키면서 자신도 본래의 신분을 되찾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 이후가 없다. 원손의 사면이 곧 세자 책봉으로 이어진다는 개연성이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원손에게 왕통을 안겨주기 위해 반역할 의사도 딱히 없다. 태하는 기존의 제도와 관습에 배한 비판의식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태하의 모순은 그 질서가 자신에게 준 노비라는 신분은 끝끝내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서 드러난다. 과거 신분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의지로 보기에도 태하가 가진 모순은 그의 카리스마를 갉아먹는다. 체제는 인정하면서 그 체제가 떨어뜨린 자신의 신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태하의 모순은 계속해서 "언년이란 여자를 모른다"로 일관하는 현실 부정의 자세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것은 대길과 합세해 언년을 관아에서 구출해낸 이후에도 드러난다. 추격을 피하기 위해 빈집으로 은신한 세 사람의 현실인식이 참 다르다. 태하는 무작정 한양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우선 동지였고, 포청에 끌려왔던 조선비의 안위가 걱정된다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다짜고짜 봉림대군을 만나겠다는 것이다. 거사를 도모했던 동지의 입장에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한양이란 곳이 바로 엊그제 형장에서 도망친 곳이라 그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사지라는 것을 도대체 모르는 투다.

여기에 대길이 "아동판수 육갑 떠는 소리 하지 마라"고 일침을 가한 것은 정말 딱 들어맞는 말이다. 판수가 점보는 소경을 뜻하는 것인데, 아동이 앞에 붙은 것은 아직 판수 자격이 없다는 뜻이니 육갑 왼다는 것은 자격 없는 말을 하거나 맞지 않는 말을 멋모르고 한다는 뜻이니 형장에서 도망친 노비 신분에서 호랑이 입으로 머리를 넣겠다는 태하에 대한 정확한 꾸짖음이다.

수색 나왔던 포졸들도 사라지고 날이 저물자 그쯤에서 현실감각 넘치는 대길은 월악산으로 갈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태하는 갈 곳이 다르다면 어깃장을 놓는다. 어쨌거나 갈 곳이 정해지자 언년은 태하에게 떠나겠다고 한다. 자신이 노비였던 사실로 인해 아내 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태하는 애초에 쫓길 때도 그렇듯이 문제에 대해서도 다음으로 미루는 태도를 보이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늘 그랬다.

자신의 이름은 언년이었다고 말하며 눈물 흘리는 아내에게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 한다"는 태하의 일관된 태도는 앞서 말한 대로 그의 머릿속은 온통 과거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한 만큼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한편 언년 또한 태하를 떠나겠다고 하는 것은 과거 노비였기 때문이다. 언년 역시 과거로 인해 현재를 포기하라고 스스로 강요받고 있다.

노비였던 과거를 숨겼다는 사실에 고통 받는 언년에게 태하는 "더 듣고 싶지 않다. 언년은 모른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다. 그때 언년이 태하의 복장을 뒤집어놓을 말을 한다. 과거에 정인이 있었는데, 그는 한 여자를 위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 자리를 비켜준 대길은 땅바닦에 김혜원이란 글자를 쓴다) 그리고 이어서 태하가 만드는 세상은 사람의 정마저 신분으로 잘라내는 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태하는 언년을 당장에 붙잡지 못한다.

몽상가 태하의 파란(破卵) 그리고 고백

그렇게 발길을 돌리는 언년을 대길 또한 붙잡지 못하고 망연히 바라만 보는데, 태하가 뛰어나와 언년에게 기다려 주겠냐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몽상가 태하가 빠져 있었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말을 언년에게 한다.

▲ 사랑은 의리! 의리를 앞세워 떠나려는 혜원을 잡는 태하.

"백성의 고충을 깨닫자 했지만, 반상의 경계가 없고, 노비가 없는 세상은 그려보지 않았습니다. 노비가 되어서도 그런 생각을 못했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내가 옳은 생각을 세울 때까지 도와주며 기다리겠습니까?" 그리고 언년의 손을 잡고 다시 말한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서로 의리를 지키겠다고. 이리 떠나는 것은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한다. 그때 대길은 다시 자리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간다.

태하의 이 대사는 대단히 중요하고 솔직한 고백이다. 몽상가 태하는 지금까지 충성과 사랑 모두 자신의 과거에 묶인 이상 속에 가둬두었다. 때문에 반역해야 할 때에도 뜻을 세우지 못했고, 자기 여인을 과거 상처로부터 안아주는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반으로 태어나 충신으로 살며 철저히 체제에 길들여진 사내가 순식간에 그 모든 삶의 관성을 물리치고 대길의 사상으로 바꿔치기 할 수는 없다. 그거야말로 막장으로 가는 길이다.

추노가 중반 이후 죽이고 죽고 도망치는 숨 가쁜 진행은 보이다가 사실 이 대목에서 속도감을 뚝 떨어뜨렸다. 그러나 반드시 풀어야 할 실타래를 푼 것이고, 중반 이후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떠나겠다고 하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떠나지도 헤어지지도 못하고 월악산으로 함께 향하게 되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동행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고백을 통해서 태하가 대길과 동행하고 더 나아가 월악산 패거리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또 중요하다.

▲ 만날 모든 사람들의 종착지 월악산에 드디어 도착한 대길 일행.

한편 이들의 대화 속에 말없는 대길의 리액션이 흥미롭다. ‘죽어도 못 보내’의 주인공 대길은 떠나는 언년을 바라만 봤으며, 두 번 이들의 대화에서 몸을 피하는 모습에서 아주 깊은 심리를 표현해냈다. 10년을 찾아 헤맸으나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언년에 대해서 배신감도, 절망도 없지 않았으나 다시 쫓겨야 하는 언년을 향해 또 다시 최선을 다 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 단념의 근거는 땅바닥에 언년의 이름을 쓰고 "김혜원"이라고 나직이 읊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대길 역시 과거의 언년에서 현재의 혜원을 보는 것이다. 그 단념은 포기나 방기가 아니라 거리감 있는 보호와 헌신으로 나타난다. 제 발로는 가지 않을 태하의 똥고집을 이미 파악한 대길은 기찰 포졸과 격투를 하는 도중 원손을 안고 월악산으로 도망간다. 아주 자연스럽게 모두가 함께 가게 된다.

그런 대길 일행을 포기 못하고 쫓는 검은 그림자 황철웅은 명민한 판단으로 월악산까지 쫓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혼자가 아니라 무술에 뛰어난 부하 다섯을 거느렸다. 추노 속 무력 일인자로 급상승한 그의 변화에서 복선의 향기를 맡게 된다. 어쩌면 시청자의 소박한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거기다가 그 뒤를 따르는 또 한 무리가 있어 태하와 언년의 갈등을 통해 잠시 숨돌린 추노는 또 다시 월악산의 대격투를 예고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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