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이들이 진보언론 ‘후지다’고들 한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다. 내 앞에서 비판 내용을 줄줄이 읊는다. 상당 부분 경청할 내용이 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모든 후진 것들이 증오받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질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왜 그들은 진보언론을 증오하는가?” 나는 스스로 답을 알고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정권 초 그 증오가 처음으로 불타올랐을 때엔 굳이 적지 않았다. 그때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건조한 사실관계만 적었다. 이제 설득될 사람은 설득되었고 아닌 이들은 더 노력해도 당장은 어렵기에 이 내용을 쓴다.

‘국개론자’였단 사실을 감추기 위해

진실은 단순한 곳에 있다. 참여정부 말기 지지율 보면 답 나온다. 임기 4년차였던 2006년 4분기 지지율이 12%였다. 2007년엔 지지율이 차츰 회복되어 4분기에 27%가 된다. 그런데 이건 대선 다가오면서 한국 사회의 양 당파가 최소한의 자기 ‘파이’를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봐야 한다.

참여정부 말기의 황량한 풍경에 대한 가치평가는 자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 현대사의 불행한 역사다. 누군가들은 국민에 비해 너무 앞선 정치리더였다 칭송하기도 한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사업가가 인류에게 너무 이른 아이템을 내 수익을 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그가 미래를 예견한 사람이라 칭송하지 않는다. 미래학자와 사업가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는 진리탐구의 영역이 아니다. 설득하고 합의하고 결정하고 실행하여 결과 내야 하는 자리다. 정치세력이 유권자 신망을 잃었다면 그건 객관적으로 냉정히 평가해야 할 문제다.

나는 2005년 1월에서 2007년 1월 사이에 군에 있었다. 내가 입대하기 전 대다수 노무현 지지자들은 대중주의자였다. 그러니까, 나같은 (당시) 민주노동당원들에게 “2% 정당 주제에 무슨... 어? 대중 보면서 정치해라”고 말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다녀오니 이 사람들 다수가 엘리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정신승리’해봐도 대중이 자신들을 떠났단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 보며 정치하라던 그분들이 한국 사회와 대중을 저주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정서가 2007년 대선 국면을 맞아 표출된 단어가 저 유명한 ‘국개론’이었다. ‘국민개새끼론’의 약자인 이 말은 저열하고 조야한 주제에 담론의 외피까지 덮어썼다.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그들 중 일부조차 진절머리를 내며 "유권자가 지지 세력을 선택하는 건데 친노들은 왜 맨날 거꾸로 하냐. 하다못해 노무현도 농부가 밭 탓하는 거 아니랬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2% 정당’을 조롱하던 대중주의자들이 순식간에 ‘국개’를 비난하는 엘리트주의자가 되었다. 훗날 다시 다수파가 되니 이제는 정의당을 ‘메갈이나 편드는 군소정당’이라 조롱하는 이들이 되었다. 어차피 그들 입장에선 정의당·노동당·녹색당이 구별이 안 가고 그저 ‘개노답 삼형제’일 뿐이라 다같이 ‘메갈’로 퉁친다. 표변하는 그들 모습을 자신은 잊었는지 모르나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기억한다. 물론 요즘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개론’ 비슷한 걸 펴는 걸 보면, 특정 지지세력의 문제라기보단 인간의 문제다.

‘그때 그 사람들’도 냉소했다

참여정부는 재임 기간 재보궐선거에서 단 한 석도 얻은 바 없다. 재보선이 투표율이 높지 않은 특성상 한나라당 계열 정당에 보통 유리했단 점을 감안해도 심하다. 2003년 분당서 2004년 탄핵 사이의 갈등으로 민주당 기본 지지층을 반으로 갈라놨다는 점이 컸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호남 향우회’가 그들을 위해 움직이길 거부했다.

이후 한국의 리버럴 정당은 조직기반이 약화되는 가운데 새로운 지지층을 찾아 10여년을 헤맨다. 여기에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의 책임은 시쳇말로 해서 ‘1도 없다’. 이들은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볼 때는 지나칠 정도로 열린우리당 편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분당은 정권 핵심주체들의 신념적 결단이었다.

(잠깐 곁가지로 첨언하면 어떤 이들은 한겨레가 민주당 대하는 게 조중동이 자유한국당 대하는 것만큼도 안 된다며 한겨레가 조중동만도 못하다고 희롱한다. 그런데 이것도 한겨레에겐 억울하다. 한겨레는 원래 민주당 정파지 하기엔 너무 왼쪽에 서 있는 신문이다. 이걸 ‘꼴통’이니 ‘반지성’이니 비난하는 것도 자유인데, 그러면 한겨레 자유도 인정해줘야 한다.

1990년대 후반까지 상황을 돌이켜보면 사실은 동아일보가 그 역할을 해야 했다. 심지어 국민의정부 초기까지 신동아가 했던 역할이 있다. 가령 정권 초 월간조선이 ‘호남 편중 인사’ 선동할 때 분석기사로 ‘아니다’란 답변을 내놨다.

그런데 사주 판단 미스로 동아일보 지면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대구 경북엔 추석이 없다>느니 괴상한 1면을 쓰면서 진상을 부렸다. 1990년대 후반 동아일보 사주 일가가 삼성 총수 일가와 사돈이 되면서 보수화된 면도 있지만 어차피 삼성이랑은 참여정부도 친했기에 그걸로 다툴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 조중동 대 한경오의 대립구도가 정착됐다.

이 와중에 한겨레는 역량과 영향력에 비해 과도한 상징자본을 가지게 됐다. 나는 그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한겨레가 조직 성향을 갑자기 바꿀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한겨레가 민주당 성향을 안 맞춰 줬다고 비판하는 건 너무 자기들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거다.)

그 새로운 지지층의 상당수는 2009년 비극적인 서거 정국에서부터 구성됐다. 그리고 2011년 나꼼수 열풍 등 중간 중간에 다른 계기들이 있었고 차츰 세를 불려 오늘날에 와선 상당히 안정적인 35% 가량의 기본 지지층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면 서거 정국 그 직전 검찰 수사 국면에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냉소적이었을 거다. 아마 2006년 4분기 지지율인 12% 정도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뢰했거나, 어쩌면 그 이하일 것이다. 나는 이들을 코어지지층이라 본다.

죄사함을 위한, 진보언론이라는 십자가 밟기

그렇다면 오늘날 문재인 지지자들의 진보언론 공격은 무언가. 당시의 코어지지층과 현재의 문재인 지지자들의 간극을 없애기 위해 바친 번제물이 진보언론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적극적인 진보언론 공격은 참여정부 말기와 2009년 수사 정국서 노무현을 신앙하지 않았던 ‘죄’를 사함 받는 절차인 거다. 코어지지층은 줄곧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보위했던 자신에 대해 우월의식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지자들끼리 의상해서 좋을 일 없다.

말하자면 그들은 다수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괜찮아요. 당신은 진보언론에게 속았을 뿐이니까요. 그분을 죽게 한 건 그러니까 우리들 모두(정확히는 코어지지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가 아니라 진보언론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수 문재인 지지자들에게도 그러는 게 이득이다. 진보언론이란 십자가를 밟고 건너오면 자신의 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진보언론이 노무현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는 서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물러설 수 없다. 진실이어야만 한다. 아니면 지지층이 분열하기 때문이다. 줄곧 ‘친노’였다가 ‘친문’이 된 그 코어지지층이 엘리트주의자의 속내를 숨기고 대중주의자인양 처신하기 위해 진보언론이 죽어야만 한다.

사실을 말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참여정부 시기 본인들의 정치적 소신대로 발언했다. 수사국면에선 그들 역시 검찰 브리핑을 듣고 오판했다. 그런데 그건 당시 대부분의 시민이 그랬다. 유권자들 상당수가 참여정부 말기 지지층에서 이탈했다. 검찰 수사발표를 들을 때 '오해'했다. 그런데 왜 '노무현을 죽인 죄'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에게만 미루는가?

물론 언론사가 져야할 책임이 시민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엔 동의한다. 그런데 그렇게 상대평가를 하기 시작하면 더 책임이 큰 이로 직접적으로 수사를 기획하고 실행했을 이명박 정부와 검찰이 있다. 참여정부 때부터 이미 노무현을 한없이 증오한 조중동도 있다. 그들을 지나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까지 책임을 떠넘기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경오가 마치 그 사건의 주범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지금 심경으로 검찰 수사 국면의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칼럼과 기사를 보면 당연히 분노가 치밀 것이다. 냉소했던 자기 자신은 잊었으니까. 그렇다고 정당하지는 않다. 인간은 본인에게 불쾌한 사실을 잊도록 진화되기는 했지만, 이왕 사회를 구성했으니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서 최소한의 것들은 기억해줘야 할 의무도 있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역사왜곡’을 운운하는 마당에, 몇 백 년 전도 아니고 불과 십여 년 전 일에 대해 소수 선동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말하자면 이는 자기 삶을 성찰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정치적 전향신고식에 해당한다. 종교로 치면 자기 삶을 돌아보는 지점에서 전인적 개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만 나가면 천당갈 수 있다고 믿는 종류의 신앙의 산물이다.

“제발 정도껏 합시다”

그러니 말이 필요 없다. 그러지 않았다 아무리 반박해도 안 된다. 넌 미운 놈인데, 이번에 안 그랬어도 저번에 잘못한 책임이 있단 식이다. 오해받았다 아무리 말해도 오해받을 미운 털이 박힌 상황 그 자체가 네 잘못이란 식이다.

그들이 진보언론에 대놓고 돌을 던지기 시작한 사태 초기에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면 이용자 연령대가 어린 커뮤니티일수록 더 심하게 비난했다. 상대적으로 이용자 연령대가 높은 커뮤니티에선 “견해에 동의 안 해도 기억 자체는 나랑 비슷하다”란 반응도 이따금 나왔다. 이런 반응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상황은 이 증오서사가 참여정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신규 지지자들을 자신들에게 굳건히 묶어 놓기 위한 코어지지층의 농간의 산물이란 점에 대한 정황증거다. 한 번도 친노세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코어지지층이 진보언론을 제물로 삼아 이 거대한 문재인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는 거다.

하지만 영원히 그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엔 시간이 약이다. 진보언론도 이참에 반성하고 고쳐야 할 지점이 많지만, 이 증오를 선동한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수준인지는 ‘좋은 시절’이 시작된 민주정부 3기 안에 드러나게 되리라 믿는다. 이미 그 전조가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상식적인 행보를 보일수록, 아무것도 아닌 이들을 ‘정부의 적’으로 호명하여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이들의 무리한 처신이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사자들이 못하니 “조중동 시험 떨어진 이들이 한경간다”란 커뮤니티 발 황당한 선동에 대해 한 마디만 한다. 나는 그 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으니 딱히 이해관계는 없다.

“사실이 아닙니다. 소위 ‘언론고시’란 영역은 지망자는 어마무시하게 많고, 채용규모는 쥐꼬리만해서, ‘경쟁력 있는 응시생’ 숫자가 채용규모보다 훨씬 큽니다. ‘경쟁력 있는 응시생’ 중 운좋은 일부가 각 언론사에 무작위로 붙습니다. 그래서 정치성향 상관없이 가게 되고, 가서 정치성향이 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붙은 이들 연봉 차이가 서너 배까지 되는 시장이 불합리하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그 업계 언저리에 있는, 혹은 그 시험공부를 잠깐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익히 아는 문제에서도 이런 황당한 수준의 선동이 사실인양 퍼지는 걸 보면 그분들 기분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제발 정도껏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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