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80년대 나온 <스타워즈> 3부작을 통해 다스베이더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를 뻔히 알면서도 <스타워즈>의 프리퀄 시리즈를 통해 다스베이더가 어떻게 악에 물들어가는가를 스크린을 통해 확인해 왔다. 추리소설의 결말을 훤히 알면서도 그 과정을 탐독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찰턴 헤스턴이 영화 마지막에 유인원이 지구를 통치하는 세상이라는 걸 알고 경악을 금하지 못하는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2011년도부터 제작되어 온 혹성탈출 시리즈의 프리퀄을 감상하는 데 있어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이번 프리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영화다. 21세기에 만들어진 혹성탈출 프리퀄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상실하는 계기와,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유인원이 대신 꿰어 차는 과정을 그리는 ‘만물의 영장 교체기’다.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 스스로가 만든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영리한 유인원 시저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왕좌를 물려주는 원인 제공의 기미를 보인 작품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었던 만큼, 혹성탈출 프리퀄의 마지막인 이번 영화는 인간과 지능을 가진 유인원의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구체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혹성탈출 시리즈를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인공지능 등의 도움으로 기계와 인간의 결합처럼 한 단계 종의 진화를 도모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유인원이라는 전혀 다른 종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양보하는 ‘퇴화’가 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를 보여준다.

인간은 일찍이 지구상의 패권을 차지해오다가 돌연 사라진 공룡의 발자취를 뒤따르기라도 하는 듯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시저의 탄생, 그리고 시미안 플루 두 가지로 말미암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다. 말하는 유인원과 말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인간을 대비시켜가며 말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만물의 영장 지위를 상실하는 인간보다 새로운 진화론의 강자 유인원에게 감정이입하길 바란다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은 혹성탈출 시리즈의 레시피에 ‘윤리론적 관점’, ‘휴머니티’라는 양념을 첨가해야 했다.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유인원의 우두머리인 시저는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전작에 등장한, 인간을 공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코바와 이번 신작의 대령은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은 있을 수 없다고 보는-어느 한쪽이 멸종해야 타당하다고 믿는 호전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는 시저보다 낮은 도덕적 가치관을 견지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시저에 비해, 자신과 다른 종을 말살하려 드는 호전성을 가진 대령과 코바가 윤리적으로 저열한 존재로 다가올 때 진화론적으로 사라져야 할 인간에 대한 감정이입의 강도는 점점 옅어진다. 생각해 보라. 만일 혹성탈출 프리퀄 시리즈를 제작하는 접근방식에 있어서 인간이 기존 영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휴머니티를 그대로 간직한 것과 달리 유인원은 교활하고 영악한 윤리관을 가진 존재로 묘사한다고 치자.

인간이 휴머니티가 부재한 유인원에게 밀리는 영화 속 세계관에 관객이 얼마만큼 몰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보다 유인원이 휴머니티에 가까운 윤리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관객은 인간이 유인원에게 만물의 영장 자리를 물려주는 혹성탈출의 프리퀄에 덜 반감을 갖고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프리퀄 시리즈 시작 때와 비교하여 누구에게 점차 감정이입하는가를 살펴보라. 도덕적인 가치관이나 인간성이 결여되어가는 코바나 인간에게 감정이입이 되는가, 아니면 인간과의 공존을 주장하며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휴머니티를 잃기를 거부하는 시저에게 감정이입이 되느냐 하는 문제 말이다.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스틸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유인원이 진화론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에 비례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시저와 그의 유인원 동료에게 점차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도덕적으로 우월한 종이 진화론적으로도 승기를 잡을 수 있음을 혹성탈출 프리퀄 삼부작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찰턴 헤스턴의 원작을 통해 누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지를 잘 알고 있다. 관객들은 윤리성이 결여되어가는 인간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유인원 가운데서 누구를 심적으로 응원하는가가 진화론적 승자와 맞아떨어지는 동조현상을 혹성탈출 프리퀄 삼부작을 통해 6년째 확인 중이다.

그리고 이번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통해 윤리성, 도덕성과 진화론의 동조현상, 시저나 유인원을 인간보다 응원하게 되는 동조현상을 나도 모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휴머니티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혹성탈출_종의 전쟁 #영화 #리뷰 #시저 #코바 #찰턴 헤스턴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