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 단비팀이 이번주 찾아간 곳은 필리핀의 쓰레기 마을이었다. 지금은 그럴싸한 공원으로 탈바꿈했지만 한국의 거대 수도 서울에도 난지도가 있었다. 난지도 냄새가 여름이면 얼마나 극심했는지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마포까지 넘어오고는 했다. 한여름 후텁지근한 날씨에 냄새까지 괴롭히니 불평을 하다가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 생각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삼킨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동남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갖는 느낌이 있다. 그곳은 풍경만 달랐지 삶의 질의 우리들의 과거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일요일일요일밤에(아래 일밤) 단비팀이 찾은 곳은 필리핀의 난지도 피야타스였다. 그곳에 쓰레기를 뒤져서 나온 음식물을 그저 슬쩍 덥혀서 먹고 사는 아이들이 있었다. 단지 태어난 죄밖에 없는 아이들. 굶주림과 질병이 그들에게서 빼앗아간 것은 꿈이다.

비위 약한 정형돈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토악질을 느낀 것을 보면서 가뜩이나 더운 나라에 얼마나 극한의 상황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가족 3명이 쓰레기 더미를 종일 뒤져서 벌 수 있는 돈이라고는 고작 2,500원. 꿈이라거나 행복이란 말을 차마 꺼낼 수조차 없을 것 같은 그곳이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티없이 맑은 미소였다.

그동안 줄곧 해오는 포맷대로 단비팀은 허섭 삼형제와 자막 삼남매로 나뉘어 두 소녀를 찾았다. 가난한데도 참 가족은 많았다. 경제력과 가족 수는 반비례하는 것이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못 먹고 씻지 못해 깡마르고 땟국 흐르는 소녀들이었지만 또 여전히 잘 웃는다. 태어나서 10여 년을 그곳 쓰레기 마을 피야타스를 벗어난 적 없는 아이들 눈에 외국인이 신기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인간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 속의 아이들이라 믿겨지지 않는 해맑은 미소였다.

아이들이 울지 않는 것은 일단 안심이었다. 쓰레기 더미 속 그 아이들이 울상만 짓고 있었다면 아무리 허섭 삼형제가 요즘 웃음을 주고, 그에 못지않게 자막 삼남매가 노력한다 해도 차마 웃지도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의 삶을 둘러싼 환경이 절망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절망에 그저 한번인 방송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단비팀은 항상 길잡이로 현장 봉사자들을 대동한다. 아마도 작가들이 그들과 협의를 해서 대상자를 선정하고, 단비팀이 해야 할 것을 결정할 것으로 짐작된다. 단비팀이 신기할 정도로 밝은 피야타스 아이들을 위해 한 것은 휴양처 필리핀의 명성에 걸맞는 리조트를 체험시켜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생전 처음 겪어볼 월풀 욕조라든가 근사한 목욕 가운을 입혀주는 한마디로 신데렐라 체험이었다.

마치 그 아이들을 내가 씻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쁘게 몰입하다가도 문득문득 과연 이것이 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 것인가 하는 의문에 멈칫거리게 된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미리 짐작할 수는 없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하룻밤의 경험이 그 아이들의 수백 일을 괴롭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러나 다르게 본다면, 그 경험을 통해서 더 나은 삶에 눈을 뜨고 도전하는 계기를 줄 수도 있다.

양자의 결론은 물론 그 아이들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가능성은 아마도 전자가 높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혹시 그렇게 되더라도 쓰레기만 보고 살아가는 그 아이들에게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해준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날 이후 다시는 그 리조트를 갈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해도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적으로 보고 싶다. 쓰레기 더미 속 보석 같았던 그 아이들의 미소가 그 하루의 기억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력할 동기를 갖게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한편 정형돈 투입 이후로 단비가 전보다 훨씬 가벼워지고 그 탓인지 외면했던 시청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번 주 단비가 첫 방 이후 오랜만에 수도권 10%, 전국 9.8%의 시청율(TNS기준)을 기록해 일밤은 늦었지만 부활의 단비를 맞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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