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청춘불패는 가장 독특한 예능일지도 모른다. 자립형 성장 버라이어티라는 스스로 정한 정체성 속에서 20회를 소처럼 묵묵히 끌어왔다. 이제는 광고가 서른 개 가까이 붙을 정도로 광고주의 관심도 쏠리고 있지만 청춘불패가 시작할 때를 돌아보면 결코 이런 날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언론과 거의 모든 누리꾼들이 청춘불패의 실패를 예상했고 심지어 장담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춘불패는 기존 예능에 비해 분명한 한계와 제약을 안고 있다. 초보MC들과 걸그룹 멤버 일곱 명으로 구성된 청춘불패 진용에 유재석도 강호동도 없다. 아직도 유재석에 대해 거론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청춘불패에는 강력한 예능리더가 없다. 그들을 대신해 남희석이 투입됐으나 중도에 하차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구심적 역할을 하는 존재감 넘치는 MC의 부재로 인해 청춘불패는 자주 천방지축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걸그룹 멤버들 주축이라는 점에서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웃음의 강도에 있다. 청춘불패를 통해 성인돌 이미지를 굳힌 나르샤와 김신영이 노력하고 있지만 19금 경계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 아이돌이라는 태생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청춘불패는 그조차도 깨가고 있다. 귀농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다른 예능이 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워낭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쟁기질을 체험하는 등이다.

20회를 맞은 청춘불패는 멤버들을 둘로 나눠서 소와 닭에 대해서 심도 깊게 배우고,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소위 예능적 재미는 덜했다는 평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농경생활에 대한 뒤끝 개운한 흥미는 그득했다. 지난주 리뷰를 통해 다큐 바깥의 또 다른 다큐라는 표현을 썼는데, 웃음을 향한 맹목적 전력투구가 아니라 청춘불패는 재미를 이순위로 놓는 느긋함을 보이고 있다.

20회 구성을 보아도 이계인을 찾은 닭팀의 경우 의도적으로 재미를 노린 부분도 다소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놀기보다는 체험학습 간 여느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진지한 태도가 대부분이었다. 예능 초보들로 꾸며가는 청춘불패는 일을 하면 정말 일만 하기 때문이다. 예능으로서는 아마추어적이고, 일로 보자면 가장 바람직한 자세이다.

20회 청춘불패에서 굳이 예능적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딸기밭에서 신영과 유리의 콤비 개그와 유리 단독의 나르샤 역할 수행하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그우먼인 신영의 순발력이 발휘된 립싱크 개그는 신선했으며, 성인돌 나르샤를 흉내낸 유리의 딸기 활용 개그는 충격적이었다. 하기사 이미 요가를 통해 사자자세, 배넷나루 등을 통해 소녀시대 이미지 따위는 유치리에 가져가지 않은 유리였다.

흥미로운 청춘불패의 대국민약속 다섯 가지

우보천리(牛步千里)라고 묵묵한 걸음으로 걸어온 청춘불패는 이제 다른 예능과의 비교를 스스로 거부하고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금요일 심야라는 예능의 사각지대에서 두 자리 수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지켜가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빨리 온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돌촌이 아닌 곳에서, 그것도 굳이 둘로 나눠서 왜 느닷없이 현장학습을 떠났나 했더니 뭔가 단단히 벼른 각오가 있었다. 청춘불패는 프로그램 말미에 다섯 가지 대국민 약속을 내놓았다.

1. 푸름이를 일소로 제대로 키우겠다.
2. 농사에 대해 공부하는 전문농업인을 추구한다.
3. G7표 친환경 농산물 수확 및 판매
4. 농산물 경연대회 출전
5. 아이돌촌 체험 학습장으로 개방

대국민 약속 어디에도 웃기겠다, 재미를 주겠다는 말이 없다. 명색이 예능인데 장기 다큐멘터리 슬로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춘불패의 이런 과감한 선언은 자신감에서 발로한다. 예능이란 한계를 뛰어넘어 따뜻한 농촌풍경을, 걸그룹이란 한계를 극복하여 열심히 땀 흘리는 귀농일기를 써온 청춘불패에 대한 시청자 신뢰에 기인한다.

우선 청춘불패의 대국민약속 다섯 가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지금까지 청춘불패를 빼놓지 않고 시청한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동기를 가질 것이다. 하나는 걸그룹이 예쁜 탓이고, 두 번째는 화학조미료 들어가지 않은 토종된장국 같은 순하고 개운한 청춘불패의 맛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킨다고 예쁜 걸그룹이 갑자기 야수가 될 일도 없고, 결국 청춘불패는 지금까지의 이런저런 시도와 경험을 통해서 본격 농촌 버라이어티의 확신이 생긴 것이다.

에필로그에 우보천리라는 말을 쓴 것은 귀낭소리 할아버지를 찾은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느릿느릿 걷는 소걸음은 성실함의 의미를 전해 주었지만 동장군의 기세가 꺾인 남쪽 하늘을 배경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청춘불패 노촌장과 G7 세 명의 풍경이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청춘불패가 담고자 하는 농촌의 풍경 속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귀농 현실의 어려움도 간간히 담아주면 좋을 듯싶다. 귀농은 결코 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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