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국의 신문과 뉴스는 지루해질 수 있을까? 연일 핫한 뉴스들로 채워지는 각종 매체와 전파들. 그나마 더위를 잠시 잊게 해주는 효과도 없지 않지만 언론 스스로가 기사거리가 되는 일은 분노와 수치심을 함께 주었다. 불쾌지수는 한없이 치솟고 만다. 8일 MBC가 작성한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번 블랙리스트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똑같은 언론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충격을 준다. 그보다 더 충격은 시사인이 고발한 언론의 추한 민낯이었다. 삼성 장충기 사장에게 보낸 여러 언론 간부들의 청탁 문자가 공개된 것이다.

이미 기자가 아닌 기레기로 불리는 시대라지만 이런 정도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런 몰골로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고, 정치를 나무라는 제4의 권력이 될 자격은 없다. 어디 그것뿐인가. 7일에는 기자들의 단톡방에서 여성 기자들에 대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음담패설들을 주고받은 사실도 폭로됐다. 이런 정도라면 기레기라는 호칭도 과분하다.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백지신문이 등장한다. 짧게 나와서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 백지는 오히려 살아있는 언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정반대인 반성의 절필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기자 개인들도 잠시 따가운 눈총을 받겠지만 아무 일도 없다. 정치인, 군인 등은 논란에 여지없이 수십 년 쌓아온 커리어를 잃게 되는데 언론은 도무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대선 당시 큰 물의를 빚었던 SBS 보도참사, 인사 청문 때 논란이 됐던 노룩취재의 JTBC. 어디 그뿐이겠는가. 수도 없이 등장하는 오보들. 개중에는 의도가 읽히는 오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대선국면에서의 기울어진 보도균형은 그 모두를 통틀어서 오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최대의 처벌은 논란 정도고 그들은 안전하다. 왜 언론은 잘못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금강불괴의 신분이 되었단 말인가.

더 기가 막힐 일은 이런 엄청난 언론 스캔들이 톱뉴스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 사장에게 보냈던 문자 내용처럼 포털을 잘 관리하고 있는 누군가의 노고(?) 덕에 국민들은 불편한 사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 것인가 보다. 또한 당연하게도 언론의 치부를 굳이 드러내지 않겠다는 피눈물 나는 동업자 정신의 발휘에 또 감동할 지경이다.

JTBC <뉴스룸>만이 주요 뉴스로 이 사실을 알렸다. 지상파 뉴스를 다 합쳐도 JTBC 신뢰도가 못 된다는 현실을 반영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바싹 다가올 뉴스도 중요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관리인지 의심을 가질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공영방송의 무너진 공공성과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을 중요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너진 것은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언론의 자유만이 아니라 언론인의 양심과 자존심도 함께였다. 어쩌면 불가피한 연쇄작용일지도 모른다.

7일 오후 이재용 재판에 앞서 폭력사태를 벌인 박사모를 제지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 (연합뉴스)

그런데 날이 이상했던지 우연은 또 하나 있었다. 이재용 재판을 기다리던 박사모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며 사진기자 등의 뺨을 때리고, 밀치는 일이 벌어졌다. 보통은 현장의 기자들이 이런 봉변을 당하면 우려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반응이 신기했다. 박사모를 욕하는 사람은 있어도 피해자인 기자를 염려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방송뉴스나 신문 어디에서도 톱뉴스가 되지 않았던 언론의 삼성을 향한 노골적이고 비굴한 충성고백 대신에 이날 포털 메인에는 기자 폭행 사진이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언론의 치부와 곪은 상처가 다 드러난 날에도 관리는 쉬지 않는가 보다. 그리고 뿌리칠 수 없는 의문 하나, 그들은 과연 삼성에만 충성했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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