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 회 카메오들을 통해 보여 지고 있는 <산부인과>에서 9회에서는 아이가 아닌 산모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었습니다. 난소암과 위암에 걸린 여성 환자와 남편들의 너무 다른 모습들은 그래서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9회-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것들

1. 시한부 환자와 허튼 행복

제작진은 암이라는 병을 둘러싼 두 가족을 통해 사랑과 남겨진 것들에 대한 고찰을 했습니다. 혜영의 오랜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그녀(황인영 카메오)는 난소암 중 가장 징후가 나쁜 투명세포암에 걸려있었습니다. 자신은 알고 있지 못하지만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을 아는 주변인들은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 그녀는 입원한 상황에서도 연주회에만 집중합니다. 평생을 피아노와 살았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꿈일지도 모를 정도로 연주에 대한 사랑이 각별합니다. 그런 그녀와는 달리 항암 치료 중에 암이 발생하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나 돈만 밝히는 시어머니는 돈을 가지고 난장을 벌입니다.

조건 좋은 남자를 선택한 결혼은 순탄하지도 않았고 병원에 입원해도 자주 찾지도 않던 남편 때문에 이혼을 준비하는 그녀는 자신의 죽음도 감지하지 못한 채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 상상하기만 합니다. 병원 로비에 있던 피아노를 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녀는 타고난 연주가였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게 된 피아노 레슨, 대학, 직업, 결혼에 이어 이젠 죽음까지도 모든 것들을 철저한 감시와 조종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그녀는 행복했을까요?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직업에서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렸고 풍족한 삶을 살았다고 그녀가 진정 행복한 삶이었을까요?

다른 때와는 달리 직장에 휴직을 하고 부인 옆에서 간호한다는 남편의 성의에 감동해 이혼을 1년 동안 미루겠다는 그녀는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엄청난 보험금이 탐이 난 남편의 욕심이 만든 상황이었을 뿐입니다. 여기에 철저하게 딸을 자신의 마리오네트로만 생각했던 엄마가 딸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며, 남편에게 보험금 사실을 알려 만들어낸 조작된 행복이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았고 마지막 순간 자신은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참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거짓 속에서만 살아왔던 그녀는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할 수는 있지만 과연 행복이라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2. 암과 어렵게 성공한 임신에 대한 선택

피아니스트에 죽음을 앞둔 혜영의 친구와 함께 병실을 사용하는 태아를 임신하고 있는 위암 환자(이일화 카메오)는 앞선 사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7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아 완치 판정까지 받았던 환자가 재발되고 나아가 난소까지 전이된 상황입니다.

아이를 가지기 힘들었던 부부가 어렵게 아이를 갖자마자 암 재발이라는 판정을 받은 그 부부들은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엄마가 살기 위해서는 아이를 없애야 하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선택하기 힘든 딜레마에 놓은 그녀는 힘겹기만 합니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완치가 보장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가질 수 없는 아이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혜영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임신 중절을 하고 수술을 하기 원합니다. 사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로서는 아이보다 산모가 중요할 뿐입니다.

재발된 암으로 인해 완치가 힘든 상황에서 그녀는 결단을 내립니다. 자신의 생명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선택한 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자신들의 아이를 남기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왕선생과 남편과 달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혜영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의 감정이 아닌 아이가 태어나고 남겨진 아이와 죽어가는 자신을 생각해보라는 혜영과는 달리 수술이 성공해도 5년을 살 가능성이 25%도 안 되는 자신보다는 남편과 자신의 분신 같은 아이를 남기기로 합니다. 아이를 위해 그 어떤 치료도 받기를 거부하는 그녀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삶보다는 남겨진 남편과 그리고 함께 할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3. 죽어가는 여인이 죽어가는 여인을 위한 라스트 콘서트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두 여인을 한 병실에 두고 서로 다른 관점 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자인 피아니스트의 삶이 과보호 받으며 외형적인 부유함이었지만, 후자인 부부는 외형적인 부가 아닌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이 풍족한 부부였습니다.

시청자들의 선택이라면 거의 대부분 후자를 선택하고 감동하며 눈물지었을 듯합니다. 더욱 부인의 보험료가 탐이나 이혼 하지 않고 버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공분마저 일었을 듯합니다. 누군가는 남겨진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하는데, 어떤 이는 죽어가는 이가 남기는 돈에 눈이 멀어 가식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은 극단적인 평가를 유도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70년대 영화인 <라스트 콘서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이 나이든 애인의 마지막 콘서트를 보면서 죽어가는 장면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듯합니다. 피아니스트인 그녀가 병원 로비에서 그 영화의 마지막 엔딩 곡을 연주하는 설정은 의도적이었던 듯합니다. 영화에서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연주밖에는 없음을 아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연주를 들으며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을 그녀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죽어가는 두 여인이 같은 병실에 누워 서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인에게 감사의 연주를 다짐하고 마지막 연주를 하는 장면은 <라스트 콘서트>속 연인에 대한 사랑이 <산부인과>에서는 같은 처지의 여자로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주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다른 관계이지만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효과적인 연결은 의미를 극대화 해주었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부부를 옆에서 지켜본 그녀로서는 가식적이 남편의 모습마저도 사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사랑에 목마른 여인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그녀에게 남겨진 '허튼 희망과 사랑'도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번 에피소드는 의학 드라마를 넘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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