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낡은 택시가 우리를 가본 적 없는 그곳, 그때로 데려갔다. 그리고 글로 보았던 그 주먹밥을, 그 순박한 정을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했다. 두 시간 조금 더. 우리는 송강호의 등을 타고 80년 5월의 광주를 간다. 그렇게 휘- 돌아와서 끝내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안타까움에 전이되어 내내 보고 있던 그 김사복 씨가 보고 싶어진다.

37년 전의 광주, 그곳의 일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광주시민이라는 이름이 하도 커서 그저 버겁게만 느껴졌던 것이 지난 시간 동안 겪었던 중압감이었다. 그리고 알지도 못한 채 스웨터 속에, 때로는 여자친구의 옷 속에 감춰서 이리저리 옮겨야 했던 그 광주의 영상들이 비로소 어떻게 광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함께 본 누군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걸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정말로 어디선가 택시 무리가 ‘짠’ 하고 등장한 것처럼 데이트 중인 한 쌍의 대화가 우리들의 심드렁한 사이로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5·18때 택시기사, 버스기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걸 했는데. 그뿐인 줄 알아? 광주가 피해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된 것은 그때 앞장섰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전부 주인공이었고, 영웅이었다고!”

그들의 이야기를 녹음하지 못한 탓에 슬그머니 미화된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난 20대 중반이 채 못됐을 젊은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내가 아는 광주를 다룬 소설가 누군가 싶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 여성의 놀랍고 반가운 설교(?) 덕분에 동행의 자극적 욕망은 머쓱해졌고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쫓겨났다. 다행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어떻게 보면 그것은 드러내지 않은 나의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 37년이 흘렀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를 말했고, 그래서 뭔가 대단히 많은 것들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우리들은 쉽게 “또 광주야?”라고 무신경하게 말을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다른 일들을 광주에 비교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고통은 원근에 충실하다. 멀어지면 둔감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동행이 뭔가 ‘새로운 것’이 없다고 입맛을 다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니 내가 먼저 말할 기회를 놓쳤다 뿐이지 내게도 같은 마음이 없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 부분은 관객인 나와 또 다른 제작자들 몫의 비밀로 남겨두기로 한다.

허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택시운전사>는 꼭 볼 만한 영화란 점이고, 많지는 않지만 광주를 다룬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광주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광주보다 광주사람을 보여주었다. 독일기자와 서울기사의 시선에서 본 광주사람이지만 우리 모두도 그 외부인의 시선일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그런데 우리가 외부인이 아닌 것은 이 영화의 주제 언저리 이야기였다. 차단된 그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바깥세상은 몰랐다. 그러나 뭔가를 아주 많이 보도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때 언론은 진실이 자기 신문사를 망하게 하고, 자신도 망가뜨릴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37년이 흘렀다. 지금 우리는 그토록 암울하지는 않지만 진실을 말하는 언론을 보고 있는 걸까하는 의식의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무슨 소린가.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밝혀냈고, 촛불혁명의 믿음직한 동반자 아니었는가. 그런가? 맞게 본 건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택시운전사>를 보고 가장 질기게 남아 있는 인상은 순천쯤에선가 국수집에서 애먼 소리나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에 속이 뒤집어진 송강호의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송강호는 인터뷰를 통해 배우가 자신이 하는 연기의 의미 정도는 알고 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택시운전사> 속 배우들은 빠짐없이 그래 보였다. 그것도 영화 한 편의 충분한 보상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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