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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필 감독과 영상활동가의 삶이란[인터뷰] 다큐제작집단 '다큐인' 송윤혁·이관택 감독
이준상 기자 | 승인 2017.08.04 12:11

[미디어스=이준상 기자] 지난 7월 28일,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집단 <다큐인> 소속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이 간암으로 별세했다. 박 감독이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세가 악화됐을 무렵, <다큐인> 소속 두 명의 영상활동가들이 그의 병상을 지켰다. 송윤혁·이관택 감독이다. 송윤혁 감독은 2007년 빈민운동단체 <홈리스행동>에서 박 감독을 처음 만나 2010년 <다큐인>과 함께하게 됐다.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쪽방촌 철거민들의 기록을 담은 다큐 <사람이 산다>를 연출했다. 박 감독은 프로듀서 역할을 맡아 송 감독을 지원했다. 주로 빈민운동을 해왔던 이관택 감독은 올초 박 감독의 권유로 <다큐인>에 참여하게 됐다. 3일 오후 <다큐인> 소속 두 명의 젊은 감독를 만나, 박종필 감독과 영상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다큐인> 사무실에서 만난 영상활동가 (왼쪽부터) 송윤혁·이관택 감독.

“박종필 감독은 대쪽 같이 올곧은 사람”

- 박종필 감독을 알고 함께 지낸 지 꽤 오래됐다고 들었다. 박 감독과 어떤 관계였나. 두 분의 눈에 비친 박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

송윤혁 특별히 박 감독님을 어떻게 정의해본 적은 없지만 독립다큐 하는 분들에게 ‘박 감독님은 너의 스승이다’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한 분은 박 감독님의 장례를 치를 때 내게 와서 ‘너는 박 감독의 아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07년 홈리스 야학에서 만나 2010년 <다큐인>에 들어왔다. 당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고,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던 시점이었다. 홈리스들에게 영상을 가르치는 ‘미디어 교실’에서 박 감독의 보조 교사를 맡았는데, 박 감독님이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물어봐 ‘홈리스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했더니 <다큐인>에 들어오라고 했다.

다큐 <사람이 산다>를 3년간 촬영·편집해 2016년에 출품했다. 박 감독님은 내 영화의 프로듀서였다. 프로듀서는 영화의 방향을 논의하기도 하지만 재정적인 부분들도 관리·감독한다. 어느 날 박 감독님이 ‘이제 영화 제작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당시 제작지원도 다 떨어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난감한 시점이었다. 근데 계좌를 보니, 500만원이 찍혀있었다. 박 감독님이었다.

이관택 박 감독님은 웬만한 활동가들보다 빈민 운동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다큐인>에 들어와서 본 박 감독님은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신 고집이 엄청 셌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려 했다. 본인에게 항상 철저한 모습을 보며 때론 비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유연하기보단 대쪽 같이 곧았다.

송윤혁 박 감독님은 다큐감독이라기 보단 영상활동가였다. 홈리스·장애인·세월호 작업을 할 때도 빈민·장애·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영상으로 풀어내려 노력했던 분이다. 그러면서도 부채의식을 많이 느꼈던 분이다. 첫 작품 <IMF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에서 만난 분들이 실직 노숙자들이었다. 작품은 각종 영화제에서 긍정적인 평을 받았지만 이후 다큐 속 주인공들이 객사하거나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기는 모습들을 보면서, 빈민 운동에 부채감을 갖고 살았다. 박 감독님이 내게도 ‘홈리스 이야기를 다뤄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었다. 빈민운동계의 동지로서 한 말이었다.

▲용산역 인근 숲, 홈리스 20여명이 10여년째 텐트를 치고 살아간다. <다큐인> 송윤혁·이관택 감독은 지난 6월13일 주민들의 동의 아래 텐트를 치고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 <독>(가제)을 촬영하고 있다.

“다큐가 완성되건 엎어지건, 부채감을 느꼈다”

- 최근 박 감독의 별세 이외에도 용삼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 <공동정범> 등을 제작한 김일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 위암 판정을 받으며, 독립다큐 제작자들의 처우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 영상활동가들이 처한 상황은 어떤가

송윤혁 <다큐인>의 경우,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영상 홍보물을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익을 내서 조직을 운영해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각자가 사무실 월세를 벌어서 각출했고 활동비조차 없었다. 최근에는 일정 정도의 활동비를 받았지만, 일부 조직을 제외하면 영상활동가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다큐 제작에 온전히 가져다 바쳐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서울영상위원회나 각종 영화제 제작지원 외에 국가의 제도적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제작지원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야 하고 경쟁도 치열해 상당히 많은 젊은 활동가들이 열악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이 판을 떠난다.

이관택 최근 송 감독과 나는 용산역 텐트촌에서 살아가는 거리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독>(가제)이란 작품을 공동으로 연출하고 있다. 다행히도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란 단체에서 제작지원을 받기도 했고, 최근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지원 기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제작지원을 신청하기 때문에 당선이 되더라도 받았다고 말하기 미안한 상황이다.

송윤혁 박 감독님은 <사람이 산다>가 영화제에 출품됐을 당시 홈리스 운동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하지만 빈민운동의 관점에서 작업이 이뤄지다보니 수익금 대부분을 관련 단체나 당사자들와 공유한다. 영상활동가들도 수익을 보고 만든 작품이 아니란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작업을 통해서 돈을 벌기란 어렵다. 또 그 작품을 통해서 돈을 벌더라도 촬영 대상들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12월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박종필 감독이 촬영 중인 모습. 당시 박종필 감독은 '박근혜 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활동했다.

이관택 영상활동가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내 작품에 촬영대상을 이용했다’는 마음 말이다. 촬영과 편집을 하다보면 당사자들의 분노를 공감하면서 그들보다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동안 영상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처우에 대한 부분을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송윤혁 여러 운동에 결합한 영상활동가들이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거나 건강이 악화된 사례들이 많았지만 그동안 처우개선에 대한 움직임은 따로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활동가들의 ‘건강과 생존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긴 한다. 사실 빈민·장애 운동을 기록하는 영상활동가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상업적이지도 않고 수익을 바라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문화예술인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공연을 할인해주거나 특정 행사에 할인 혜택을 주는 ‘예술인 패스’ 따위를 제공한다. 나라가 빈곤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면 예술인들도 그 복지혜택을 받아 살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 <다큐인>의 기둥 같았던 박종필 감독이 떠났다. 앞으로 <다큐인>은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송윤혁 2018년이 <다큐인>의 20주년째 되는 해다.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할 때 걱정이 앞선다. 사무실 임대료와 활동비·제작비 등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다. 박 감독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주변 활동가들이 하나 같이 ‘<다큐인>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결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인 걸 알고 있다. 다만, 영상활동은 계속 해나가고 싶다.

이관택 <다큐인>이 영상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제작지원이다.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서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 박 감독님은 생전에 제작지원을 받아 사회 운동에 도움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 영상운동하는 사람들의 처우개선을 넘어 제작지원의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종필 감독은...

추계예술대에서 판화를 전공했지만 빈민·장애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박 감독은 졸업 후, 1998년 <다큐인>에 들어가 <IMF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란 작품으로 독립다큐계에 입봉했다. 이후 1999년 <끝없는 싸움 – 에바다>, 2002년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 2007년 <거리에서> 등 빈곤·장애운동 현장의 기록들을 영상으로 담아낸 다수의 작품들을 남겼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 참여해 2기 위원장으로 팀을 이끌어 세월호 3주기 프로젝트 다큐 <망각과 기억2: 돌아봄> 중 한 작품인 <잠수사>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최근까지 4·16 가족협의회 선체기록단으로 활동하며 목포신항을 지켜왔다.

이준상 기자  junsang02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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