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의 대부분은 세영 사건의 수습과 국내파 요리사들의 뉴셰프대회 출전에 대해 보냈다. 특별히 비뚤어진 성격이 아니고서는 누구나 현욱처럼 세영을 감싸줄 것이 분명할 정상적인 태도로 실의에 빠진 세영을 변호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애정의 4각 구도는 다리 하나가 빠져서 붕셰 커플의 주변에는 김산 하나만 남게 되었다. 세영 자신을 위해 나서주는 현욱을 보면서 아니 오랜 배신의 늪에서 벗어난 세영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었다.

어쩌면 세영이 현욱에게 가졌던 애정은 현실적이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애인이자 동료였던 현욱을 배신했던 오랜 죄책감이 세영으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미련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요리대회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 요리사를 포기하기에 이른 세영이 현욱의 도움으로 다시 새 각오를 다지면서 현욱에 대한 감정을 접을 수 있었을 거란 짐작해본다.

꽃 피는 봄이 서러울 줄 알면 인생을 좀 아는 것

그런 세영의 변화는 김산의 누나의 경험을 통해서 대신 말한다. 두 번의 이혼을 겪은 그녀의 솔직한 토로를 통해 묵혀왔던 감정을 털고 일어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때 김강(변정수)의 긴 대사는 그녀의 세련된 외모와 묘하게 어울렸고, 간만에 시적인 뉘앙스가 철철 넘쳤다. 지금은 없어진 베스트셀러극장이나 티비문학관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김강의 대사를 옮겨와 본다.

"그 봄 내내 미친년처럼 울면서 지냈어. 처음엔 자존심 상해서 울었는데 나중엔 내가 나빴던 것을 부정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나더라. 봄이라고 꽃도 막 피어대는데, 그게 꼭 그 사람 상처처럼 보이더라고, 세영아 너 나만큼 이기적이고 나빴어. 폼 잡지 말고 차라리 구차하게 울어 기지배야. (...) 꽃까지 피면 더 서럽다." 특히 혼잣말처럼 한 마지막 짧은 문장의 여운이 서둘러 찾아온 봄기운처럼 가슴에 착 감긴다. 꽃 피는 봄이 서러울 줄 아는 작가는 인생을 좀 아는 것 같다.

한편 세영의 부재로 인해 뉴셰프대회 매니저셰프조차 구하지 못하고 전전긍긍인 국내파 요리사들의 신경은 곤두서고, 이를 미리 알게 된 현욱은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부주 라인에게 스테이크의 섬세한 테크닉을 전수하고자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드릴 수는 없었다. 그것 때문에 현욱에게 삐친 유경은 늦은 밤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게 되는데, 붕어의 어항만큼이나 좁은 유경의 영역이라 그런지 현욱은 바로 찾아낸다.

늦은 감 있지만 국내파에 대한 변명, 우리와 닮은 그들

앞서 김강이 세영의 이야기를 대신 했듯이, 유경 역시 국내파 요리사들에 대한 변명을 한다. 다시 한 번 시적 의욕을 보이며 "셰프가 최현욱이 아니었으면 똑같이 서럽고, 똑같이 이 악물고 있을 걸요? 하면서 나랑 닮은 사람들인데" 한다. 가진 사람은 쉽게 콤플렉스라 할 수 있지만 정작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콤플렉스 이상의 무엇이 있는 법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이 결코 많지 않듯이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가진 부러움 때문에 콤플렉스를 겪게 되고 그것을 풀기 위해 소주 한 잔도, 혹은 가장 싼 드라마 한 편에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파스타를 보면서 국내파들이 참 옹졸하고 못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속으로 동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 게 아니라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그들인 탓이 아닐까 싶다.

연애란 참 낯간지러운 일이 분명하다. 그 완강한 버럭 셰프 현욱도 귀여운 애인의 말에 국내파들을 돕기로 한다. 베겟머리송사까진 아니어도 애인의 말에 조정당하는 모습에서 도대체 버럭셰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역시 연애는 타이밍이다. 현욱이 다감한 남자라서 미리 말로 국내파에게 돕겠다고 했다면 포장마차 신도 없었을 것이고, 자기 말은 들어주는 착한 남자에게 반할 유경의 동기도 없었을 테니.

그렇게 갈등이 사라진 다음날 아침, 간만에 함께 출근하던 둘은 전날 밤 김산과 와인잔을 나눴던 현욱이 해장욕구로 인해 자연스럽게 유경반점의 짬뽕을 먹기로 한다. 항상 툭탁거리는 붕셰커플이 18회는 어찌 좀 조용히 지나나 싶더니 사단이 일어난다. 아버지에게 애인을 보여준다는 기대감과 두렵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기에 잠자코 따라가고자 하는 남녀 간의 동상이몽이 빚은 사건이다.

남자를 위한 변명, 남자들이여 얼굴 돌리고 웃자

몇 번의 연애 경험을 가진 나이쯤 되면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남자에게 사랑하는 여자의 남자 식구 특히 아버지는 대단히 두렵다. 불손한 마음도 아닌데 어쩌다 아버지란 단어만 튀어나와도 어쩐지 주눅들게 된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죄지은 심정이 되는 것이 애인 아버지 앞의 남자다. 그런 속을 알리 없는 유경은 철없이 "우리 아버지한테도 다시, 다시 한 번 해보시죠. 셰프? ㅎㅎ"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여성들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현욱 아니라 현욱의 할아버지라도 절대로 애인 아버지한테 큰소리는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적어도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렇다. 그것은 비상시 아버지 카드를 활용하라는 팁도 된다.

다리 위에다 애인을 두고 가는 현욱을 보고 혀를 끌끌 찼지만, 솔직히 돌아보면 연애하다 그런 경우 적어도 한 번쯤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는 여자한테 나만 못되게 굴었었나 싶은 남자들은 파스타를 보면서 세상에는 못된 남자 투성인 듯 슬쩍 위안 삼게 된다.

현욱을 변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은 있을 법한 일을 보여준 것이고, 그런 과격한 사건 뒤에 벌어질 어떤 짜릿한 화해를 예고하는 것이다. 굳이 지난주의 버스정류장 키스가 아니어도, 이 커플들 아니 세상의 모든 연애하는 종자들은 싸운 후에 꼭 애정행각을 벌인다. 여자들은 더러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남자는 그것이 용서를 구하는 방법쯤으로 안다.

사랑하니 남녀가 싸우는 것이고, 싸우고 난 후에 안아줄 수 있어 사랑이 아니겠는가. 아직은 추운 날씨에 애인을 한강 다리 위에 놓고 가버리는 옹졸한 남자지만 어쩐지 남자들 입장에서는 입 가리고 웃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다들 전력 없다고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짜릿한 파스타를 이제 2회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미리 아쉬워진다. 파스타는 마치 연애할 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같이 드라마를 대하게 만든다. 파스타는 시청자와 연애하기에 이르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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