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의 신곡 ‘루팡’이 TV에서 공개됐다. 소녀시대의 ‘오!‘와 거의 비슷한 시기이기도 하고,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와도 같은 시기다. 이런 걸그룹의 각축에 시선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공개된 ’루팡‘의 무대를 보니 카라의 압승으로 생각된다.

소녀시대의 ‘오!’는 상업적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나, ‘싼티’가 느껴졌다. 부담스럽기도 했다. 소녀시대쯤 되면 트렌드를 선도한다거나, 후발주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작품적 완성도를 보여준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개성이라도 보여줄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오!’는 그 모든 기대를 배반했다. 손발이 오그라들게 ‘오빠오빠오빠’를 찾으며 삼촌팬들의 지갑을 손쉽게 털겠다는 의도만 느껴졌다. 걸그룹 중 가장 선배급인 연배로 봐도 ‘오빠오빠’ 찾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일종의 퇴행이라고나 할까?

티아라의 경우는 ‘싼티’의 절정이다. 너무나 노골적이고 안일하다. ‘너 때문에 미쳐’뿐만 아니라, ‘처음처럼’과 ‘보핍보핍’도 모두 그랬다. 섹시, 노골성, 귀여움, 엉덩이춤, 등 뭔가가 된다 싶으면 그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들이대 싸게 느껴진다.

소속사가 왜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노래들을 계속 부르게 하는지 이상할 정도다. 포미닛 같은 경우는 처음 데뷔했을 때 2NE1과 비교해 싼티가 느껴졌었지만, 곧이어 다른 노래들을 통해 위상을 상승시켰었다. 티아라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싼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것도 차별화라면 차별화일까?

그래서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와 소녀시대의 ‘오!’ 사이에 낀 카라가 압도적으로 돋보인다. 카라의 ‘루팡’은 기존에 유행하던 안일한 댄스음악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개성이 느껴진다.

걸그룹들이 흔히 노골성, 귀여움, 섹시, 노출 등을 편안한 댄스 리듬에 맞춰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 카라의 ‘루팡’은 그런 익숙한 전략을 따르지 않았다. 기획만 돋보인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도 돋보인다. 박진감 있고 드라마틱한 전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오!’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너 때문에 미쳐’와는 확연히 다르다.


드디어 소녀시대에 완승

그동안 카라는 마이너였다. 카라의 데뷔 시기는 무려 소녀시대보다도 빠르다. 하지만 뒤늦게 데뷔한 소녀시대가 한국 최고 걸그룹으로 각광을 받는 동안 카라는 케이블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오죽하면 생계형 아이돌이라는 연민 섞인 별명까지 생겼겠는가.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국민 걸그룹의 위상을 확립하고 쥬얼리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간간히 넘버원 싱글을 터뜨리는 동안, 멤버를 정비한 카라도 걸그룹다운 귀여운 노래들로 조금씩 인지도를 높여갔다. ‘프리티걸’과 ‘허니’에 이르러선 남성팬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소녀시대와는 견줄 수 없었다. ‘허니’가 나왔을 때는 소녀시대가 ‘지’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을 당시였다. 카라는 소녀시대와는 급이 다른 만년 이등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여름에 엉덩이춤으로 잠깐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었지만, 노래 자체의 힘이 약했다. 엉덩이춤은 이벤트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고, 강력한 노래가 받쳐준 시건방춤에 밀리고 말았다.

대중적인 인기도 그렇지만, 작품적인 존재감으로 봐도 카라는 언제나 2등으로 느껴졌다. 귀여움만을 내세우는 노래들은 너무나 뻔했고, 2009년에 내세운 엉덩이에서도 새로움이나 개성은 느낄 수 없었다. 자극성은 엉덩이춤이 더 강했지만, 존재감은 소녀시대의 제기차기춤이 더 강했다. 제기차기춤이 더 개성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엉덩이를 흔드는 것은 노골적이고 뻔한 상업적 기획으로 보여서 한 수 아래로 느껴졌다.

‘루팡’ 무대를 보며 카라에게 감탄한 것은 여태까지 카라의 2등 이미지, 소녀시대와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됐기 때문이다. 이번엔 카라의 무대가 훨씬 야심적이고, 창의적이고, 개성적으로 보인다. 반면에 ‘오빠오빠’ 찾는 소녀시대는 티아라와 함께 뒤처진 그룹으로 느껴진다.

카라가 드디어 몸을 일으킨 것이다. 걸그룹이 흔히 내세우는 귀여움이나 섹시한 엉덩이만을 부각시키던 그 카라가 아니다. 과거에 핑클이 ‘나우’를 발표하며 차원이 다른 걸그룹으로 도약했던 일이 떠오를 정도다. ‘루팡’이 ‘나우’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그와 유사한 야심이 느껴진다. 물론 대중적 인기의 향방은 현재로선 점칠 수 없다. 하지만 작품성만으로도 충분히 카라의 회심의 성공작이라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 흔드는 것을 봐야 하는 민망함이 줄어들어 반갑다. 구하라가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툭하면 ‘엉덩이 좋아하시죠?’라며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것은 좀 부담스러웠었다. 이젠 신곡의 안무를 볼 수 있겠지.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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