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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제3의 길' 찾아야 한다북한 ICBM 시험 발사…'핵보유 인정'이냐 '레짐체인지'냐, 양자택일 벗어나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7.07.31 08:02

북한의 새로운 미사일 발사 시험이 동북아 정세를 그야말로 ‘격랑’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북한의 의도가 뭐냐”고 묻는다. 언론은 그럴듯한 분석 기사를 써낸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의 장소, 날짜, 시간을 택한 이유에 대한 여러 해설이 등장한다. 공통된 해석은 결국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의식한 시도라는 거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의 ‘베를린 구상’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북한은 왜 문재인 정권의 대화 제의를 모른 체 하는 것일까? 언론의 분석을 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문재인 정권이 제시하는 대화의 결론이 ‘비핵화’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기로 했고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수단도 갖추기로 했다. 북한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핵 포기는 협상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핵무기와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같은 군사적 수단은 체제를 보장해주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카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1시 북한이 28일 밤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기습 발사한 것과 관련해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소집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청와대)

둘째는 믿지 못하겠다는 거다. 여기서 믿지 못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권의 진정성이라기 보다는 대한민국의 체제이다. 북한은 그간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얻은 성과가 정권교체로 뒤집히는 걸 지속적으로 경험해왔다. 문재인 정권과의 관계 개선에서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5년 후에는 언제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질지 알 수가 없다. 이 학습효과로 북한은 제재와 고립에 익숙해졌고 이 점이 새로운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는 한 요소로 기능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말하는 대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주도권을 우리 정부가 발휘할 조건 자체가 이미 붕괴돼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북주도권을 발휘할 조건의 붕괴 원인은 과거 보수정권이 스스로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포기했다는 것과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더욱 첨예하게 부딪치게 되었다는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는 ‘브레이크’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과거의 경우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나마 개입이 이뤄질 수 있었으나 우리 정부와 미국, 북한은 과거 이 모델을 성급하게 걷어차 버렸다. 제재 일변도의 국면으로 넘어간 이후에는 ‘중국책임론’이 북핵문제에 대한 거의 모든 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에서 보듯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의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현지시간) 네이멍구 주르허 훈련기지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건군절(8월 1일) 기념 열병식에서 위장용 얼룩무늬의 전투복을 입고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AP)

중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비춰지기 위해 북한에 개혁 개방을 요구하면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둬왔지만, 지정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북한의 경제가 붕괴할 정도의 제재를 단행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러시아의 역할이다. 러시아가 경제와 군사 양쪽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번 ICBM 발사 시험에 대해서도 북한을 강하게 비난한 중국과 달리 북한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양국의 움직임은 그렇잖아도 무용하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하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충격을 축소하고 있다.

이 구도를 확대하면 동아시아의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놓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양상에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2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대미수출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으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대북압박에는 미온적이라는 취지의 비난을 퍼부었다. 미중정상회담 이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던 양국관계가 본격적인 갈등을 겪게 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그림이다.

미국 의회가 북한, 이란, 러시아에 대한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 법안에는 북한의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 봉쇄,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북한 선박 운항 금지, 북한 온라인 상품 거래 및 도박 사이트 차단 등의 전방위적 제재 수단이 담겨있다. 눈여겨 볼 것은 이 내용대로 제재가 작동한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북한에 원유와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중국이며 북한 노동자의 경우 중국에 7~8만 명, 러시아에 3만 명 규모가 파견돼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재 법안 처리 과정에서 러시아가 명시된 것은 국내정치적 맥락이 작용한 것으로도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잖아도 러시아 스캔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까지 워싱턴의 사정권 안에 들게 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내 이성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공화당 주류’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의 사퇴를 유도하고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을 내쫓아 더욱 극단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려 하고 있다. 그간 배제돼 있다가 이들의 퇴조와 함께 등장한 앤서니 스카라무치 공보국장이 연일 격렬한 폭언으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수놓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일 오후 (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 메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세션4 일정을 마친 뒤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청와대)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가시적 행동에 들어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하는 듯 보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를 향한 이 비열한 조치를 영원히 참을 수만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양국 관계의 악화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현실정치의 문법으로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를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어쨌든 미국의 이 조치로 당분간 동아시아의 갈등 구도가 ‘한국 미국 일본 대 북한 중국 러시아’라는 형태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당면 목표를 대화가 아닌 핵무기 개발과 ICBM 기술 확보로 놓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한편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이 기회를 놓칠 리가 만무하다. 이번 ICBM 발사 시험 결정에도 이런 정국이 고려됐을 것이다. 미국과 우리 정부가 별도의 개입 수단을 강구하지 못하면 북한은 순식간에 SLBM 발사 시험과 6차 핵실험이라는 스케줄을 이행할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만일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대북정책의 옵션은 사실상 두 가지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첫째는 과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요구한대로 북한을 어찌됐든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선 차라리 이게 속 편할 수도 있지만, 우리 정부는 절대로 이를 선택할 수 없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했는데 대다수 국민은 마찬가지 정서를 갖고 있다. ‘핵보유 인정’이란 가능성만 내비쳐도 문재인 정권은 언론과 보수세력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고 한다면 ‘레짐체인지’와 ‘북한붕괴론’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마이크 폼페오 미 CIA 국장은 연일 다양한 자리에서 ‘레짐체인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 조야(朝野)의 분위기도 ‘군사적 수단’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쪽으로 더 기울었다. 그러나 전쟁은 남한 영토에 영구적 피해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4일 방영한 '화성-14'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기념공연 영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 시절의 김정은과 함께 미사일 개발현장을 시찰하는 모습의 사진을 십여 장 공개했다. (연합뉴스/조선중앙TV)

만일 전쟁이 싫다면 북한 정권이 내부 모순으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방법만 남는다. 국내정치의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선택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 일했던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은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붕괴론에 대해 “wishful thinking”이라고 했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선택지는 그저 이대로 살며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시키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느니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게 보수세력 일각의 요구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다.

즉, 거칠게 말한다면 문재인 정권은 지금 김정일의 길이냐 박근혜의 길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받고 있는 것인데, 어떤 선택이든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려운 국면이라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앞서 언급한대로 제3의 길, 즉 ‘별도의 개입(engagement) 수단’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독자적 대북제재 검토와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한미미사일지침 개정 협상 착수 등은 양자택일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볼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그야말로 시험대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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