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을 얼마 전에 지냈다. 설을 쇠고 보름 후가 정월대보름이지만, 요즘 들어 대보름을 명절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그저 부럼을 먹거나 각별히 나물을 먹는 날 정도로 알거나 그조차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명절과 절기의 구분도 대부분 모를 것이라고 짐작된다. 명절은 다른 말로 아름다울 가(佳)를 써 가절이라고도 하는데, 말처럼 잘 먹고 즐기는 날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절기는 1년을 보름 단위로 나눠 기후변화에 중심을 둔 농사와 일상생활을 위한 구분이다. 물론 절기에도 특별한 음식이나 벽사의 의미를 담은 의식들이 있어 설과 추석 외에는 의미가 많이 축소된 다른 명절들과 혼돈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드물게 정월에 몰려 있는 까닭에 대보름은 특히 손해를 보는 편인데, 농경사회를 벗어나 개인주의 삶의 형태가 보편화된 현대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다문화, 다민족 시대로 치닫는 경향 속에서 민족 정체성이라는 이제 희미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의미를 위해서 명절은 지켜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정월의 두 명절인 설날과 대보름은 서로 만만치 않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설날이 개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 단위의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농경사회의 생산기반을 유지키 위한 마을 단위의 대동놀이의 의미가 더 크다.

대보름이 부럼과 나물을 먹는 정도로 축소됐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축제 요소는 축제를 위한 걸립을 통해 마을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유도하고, 달집태우기, 다리밟기 등 개인의 영역보다 모두가 함께 하는 대동놀이가 대부분이다. 특히 대보름 풍습 중에 세 집 이상 성이 다른 집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며 이 날은 아홉 번 먹기를 했는데, 밥 먹는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눔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름 음식을 만드는 신영 등이 부엌에서 역할 바꾸기 상황을 만든 것이 남의 집 밥을 먹는 대보름 풍습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어 예능하기에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청춘불패를 보면서 흐믓한 마음을 가졌던 것은 이들이 대보름을 위해 종일 준비했다는 것이다. 신 귀농일기 버라이어티라는 애초의 약속을 잊지 않고 챙겨가는 제작진의 의지가 돋보였다.

한편 지난주 집들이에 이어 미국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김태우 대신 노유민, 신동이 대타로 등장해 녹슬지 않은 예능감을 발휘했는데, 그 바람에 달집용 나무를 하러 간 노촌장 팀은 대부분의 분량을 노유민에게 내주어야 했다. 여기서 예전 자장면 먹기와 마치 1박2일 박찬호 편의 찬물 들어가기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노출되었는데, 자장면 먹기는 위생상에는 조금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웃으며 볼 수 있었다.

청춘불패 대보름 편에서의 백미는 역시나 달집태우기와 깡통돌리기였다. 달집태우기는 국립극장에서 매년 해오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도시사람들에게 대단히 낯선 놀이이며 깡통돌리기는 아예 잊혀진 놀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 한두 번 해본 기억이 남아 있는 깡통돌리기를 티비를 통해 본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로웠다. 여자들이 돌리고 던지는 깡통이라서 아주 시원한 포물선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구체적인 장면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아주 먼 기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청춘불패 리뷰 초기에 말했던 귀거래사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청춘불패가 말하고자 하는 귀농이란 농사란 직능적 회귀가 아니라 그것을 통한 추억찾기가 아닐까 싶다. 보통 청춘불패가 예능적으로 웃기는 면이 부족하다는 말들을 많은데, 과연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을 시청하는 1시간 동안 웃는 시간을 잰다면 몇 분이나 될까? 정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재미라는 것은 비단 웃음만은 아니다.

청춘불패가 심야라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두 자리 수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이렇듯 소위 빵 터지는 웃음 폭탄은 다른 버라이어티보다 덜 하고, 그 수위도 다소 낮을 수 있지만 각종 명절과 절기 등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통해 도시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주는 것이 적지 않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향수는 웃음처럼 바로 감지되는 것이 아니지만 어쩌면 금방 터졌다 식는 웃음보다 더 진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풋풋한 소녀들과 한편으로 잘 어울리지 않는 오래 된 향수의 결합은 의외로 청춘불패만의 콘셉트로 자리 잡은 듯싶다. 다음 주 워낭소리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것 역시 그런 이유로 기다려진다. 청춘불패는 다큐 바깥에서 만나는 또 다른 다큐 같은 프로그램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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