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가 이번 주 들어 ‘급’ 지겨워졌다. 이야기가 박진감 있게 전개되지 않고 슬슬 반걸음씩 걸어가는 느낌이다. 속도감과 박진감이 장점이었던 <추노>에서 그 미덕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과거 회상이 너무 많이 나왔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인물들의 비극적인 심정에 시청자들이 몰입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몰입은커녕 짜증만 났다.

더 큰 문제는 이야기가 너무 말이 안 된다는 데 있다. 아무로 퓨전 사극이라고 해도 작품 내적으로는 논리적으로 말이 돼야 하는데, 말이 안 되니 어처구니없을 뿐 몰입이 안 되는 것이다. 몰입이 안 되니 주인공들의 절절한 심정에 공감도 안 간다. 그러니 지겨울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오지호와 장혁의 대결 장면이 그랬다. 아무리 이다해가 종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렇지, 어떻게 조선 최고 무장이 일개 추노꾼에게 진단 말인가? 게다가 장혁이 쓰러진 오지호를 죽이려 할 때 오지호는 뻔히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부인의 출신이 의심되니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게 혁명을 이제 막 시작하던 차에 부하들을 비참하게 잃은 무장의 태도인가? 도대체 여태까지 목숨을 걸고 굴욕까지 참아가며 대의를 추구했던 캐릭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목숨보다 더 중하다던 소현세자의 유지와 원손은 몽땅 잊어버렸나?

오지호가 순간적으로 바보로 돌변한 것이다. 진 것도 진 것이지만, 잡혀가는 건 더 황당했다. 장혁에게 고분고분 잡혀가 무려 도성 한 복판까지 끌려간 것이다. 제주도 화보촬영에서부터 한양 압송까지 오지호 캐릭터가 바보로 일관하고 있다.

감정에도 몰입이 안 됐다. 한정수는 동생을 애타게 찾으며 울부짖다가 어이없이 칼을 맞고, 장혁은 사라진 동료들 때문에 갑자기 미쳐버렸다. 이다해의 얼굴 그림을 불태우면서까지 말이다. 전부터 이 추노꾼들의 끈끈한 관계가 부각됐더라면 그런 감정선에 공감이 갔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건 장혁의 이다해를 향한 사랑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다해보다 추노꾼들에게 더 뜨거운 정을 보여주니, 그 비감함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초사이어인 이종혁

이종혁도 황당하다. 오지호가 어이없이 바보가 되어 황당했다면, 이종혁은 어처구니없이 무적의 터미네이터 홍길동이 되어 황당했다. 이종혁은 중상을 입고 제주도에서 한양까지 온 후, 좌의정에게 박대 받고 치료조차 못한 상태에서 다시 길을 떠난 사람이다. 몸이 정상이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무적의 터미네이터가 됐다. 마치 죽을 고비를 넘기면 갑자기 전투력이 상승하는 만화 속의 초사이어인처럼 말이다. 오지호의 부하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죽이는 장면에는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이종혁의 임무는 원손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면 무사들이 다 나갔을 때를 기다려 본거지인 서원부터 쳐야지 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고 시간을 끌까? 납득이 안 되는 것이다. 납득이 안 되면 몰입이 안 되고, 그러면 지겨워진다.

드라마가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것도 지겨워진 것의 한 요인이다.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던 사람들, 극의 역동성을 책임지던 사람들을 너무 무의미하게 죽이고 있다. 그야말로 죽음의 굿판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상실감을 느낄 만한 일이다.

그런 상실감을 채워줄 만한 다른 캐릭터들이 나온 것도 아니고, 답답한 양반네들의 권력다툼이 전면에 나섰으니 지겨울 수밖에 없었다. 박진감 있게 집결해 상당한 기대를 갖게 했던 오지호의 부하들은, 아무 한 일도 없이 몇 차례 만담이나 나누다가 이종혁에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해 허탈했다.

그나마 밤중에 주모를 만난 성동일이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농짓거리를 던질 때 빵 터졌다. 감옥에 잡혀가 오포교와 수작을 부리는 장면도 능수능란했다. 권력의 개로 변신한 오포교가 ‘좋아, 아주 좋아’라는 대사를 해서, 마치 권력에 대한 야유처럼 보인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삶은 계란 오열의 위력, 장혁이 혼자 먹여살렸다

이번 주 <추노>에서 그저 볼 거라곤 장혁의 피를 토하는 열연뿐이었다. 장혁은 이번 주에 동료들을 잃고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닌 이다해의 그림을 태워버리고, 이다해에게 칼을 겨누기까지 했다.

분노와 오열, 위악이 겹친 그의 살벌한 연기는 대단히 강렬했다. 만약 <추노>에서 조금만 더 개연성이 있는, 그리고 밀도 있는 설정이 펼쳐졌다면 장혁의 연기가 훨씬 빛났을 것이다. 게다가 장혁과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하는 상대역도 너무 약했다.

위에 설명했듯이 오지호가 무너진 것이다. 장혁과 오지호가 용호상박으로 불을 뿜듯이 대결해야 폭발력이 생겨날 텐데 오지호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밋밋했다. 그래서 장혁이 홀로 <추노>를 먹여 살린 형국이 되었다.

오지호가 잡혀갈 때는 어이없이 잡혀갔지만, 장혁이 잡혀갈 때 <추노>는 롱테이크로 밥상에서 동료들을 추모하는 장혁의 감정연기를 보여주고(삶은 계란 오열), 그다음엔 목에 오라를 걸고 시뻘게진 얼굴을 보여줘 장혁을 부각시켰다. 뒤이어 장혁은 한동안 칭칭 싸맸던 옷을 풀고 다시 팽팽한 복근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이번 주는 장혁의 원맨쇼였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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