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 TV를 통해 소개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찬조연설원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자칭 '청년백수'라는 이영민씨(30)가 주인공이다.

이씨가 방송을 통해 소개한 가정사는 비극적이었다. 집안은 IMF로 망했고 어머니는 부산 동래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하루벌이는 1만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이씨 자신은 지방의 2년제 대학을 마쳤지만 취업을 못하고 있다. 그동안 여기저기 내놓은 이력서만 100여 통에 이른다고 한다.

이씨는 시종일관 격한 어조로, 때론 울먹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토해냈다. 노무현 정부를 성토하고, 이명박 후보를 믿는다고 주장했다. “이대로는 못 살겠으니 제발 좀 살려달라”고도 했다.

▲ 한국경제 12월4일자 8면.
이씨의 방송내용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놓고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이다. 그런데, 왜 방송을 보는 순간에는 그렇게 짜증이 밀려왔을까.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이씨의 찬조연설이 전파를 탄 직후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실 이씨의 찬조연설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들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몰락한 집안, 고단한 일상, 실업으로 인한 암울한 미래, 거기에 이씨의 투박한 부산 사투리와 눈물까지. 뭐 하나 부족함이 없다. 딱 하나 빠진 게 있다면, 진솔함이다. 진실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우선 이씨의 부산 사투리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부산이나 대구 출신 한나라당 관계자들까지도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이씨에게 당부하고 싶다. 혹시 방송에서 꼭 부산 사투리를 써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었다면, 다음부터는 그냥 편하게 표준어와 표준 발음을 구사하셔도 욕할 사람 아무도 없다.

눈물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연설원 선정을 위해 수 차례 진행한 오디션에서는 눈물연기가 '필수요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에서는 '굳이' 눈물을 훔치지 않으셔도 욕할 사람은 역시 없다.

무엇보다 불편했던 것은 여과없이 튀어나오는 이씨의 '막말'이었다. 방송에 대고 '쪽팔린다'거나, 청와대 '노모씨' 운운할 때는,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 오히려 불편했다. 한나라당 오디션에서 왜 이씨의 이러한 단어 선택은 거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연기라면 NG감이었고, 연기가 아니었다면 방송사고감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다가 길어져 버렸는데, 이씨의 찬조연설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핵심이슈를 잘못 선정했다는 것이다. 이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취직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즉 '청년실업' 문제가 이씨가 강조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찬조연설자'로 나선 이영민씨.
이씨가 취업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력서 100통을 여기저기 넣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방송내용이 전부라면 내가 사용자라도 이씨를 고용하지 않을 것 같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이력서 100통을 넣고도 취업의 기회를 한번도 갖지 못한 사람을 고용할 사람은 별로 없다.정말 이씨가 구직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자신의 절박함을 말하고 싶었다면, 단순히 이력서 100통 남발했다는 말 대신 자신이 얼마나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지도 함께 호소하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호소의 대상을 잘못 찾았다. 대선 후보에게 취직을 시켜달라는 요구는 무리한 것이다. 물론 대선 후보가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 수는 있다. 찾아보니 이명박 후보는 5년간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또한 10만 명에 이르는 글로벌 청년리더를 육성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5년간 300만 개 일자리라면 많은 것 같지만, 매년 60만 개 정도이다.

60만 개라도 어디냐고? 만약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면 대단히 착각하는 것이다. 왜냐면, 지금도 그 정도 일자리는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비전2030 등을 통해 연간 수십만개, 최대 6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명박 후보가 설령 대통령이 된다 해도 갑자기 일자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자리 공약으로 유명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약속한 일자리도 500만 개 정도이다. 연간 100만 개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도 이명박 후보도, 그리고 심지어 문국현 후보도 이씨를 직접 취직시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고용안정시스템을 구축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취업상담이나 능력개발서비스, 직업알선시스템 등을 통해 구직자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정도를 국가 영역에서 해줄 수 있다. 여기에 조금더 바란다면 저임금 문제와 소규모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문제 등을 정부에서 나서서 방패막이를 해줄 수 있다.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고 해서 막혔던 취업운이 로또 한 방 터지듯, 확 트이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취업문제를 해결해줄 '지도자'는 오직 이명박 후보뿐이라며, 공개 지지선언 해프닝을 벌인 42명 대학 총학생회장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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