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박근혜 게이트의 헌정 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 꼽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징역 3년, 조윤선 전 장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와 성향이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 및 단체들의 리스트를 정리해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배재하는 등의 행각을 벌인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또한 김기춘 전 실장은 조윤선 전 장관 등을 통해 블랙리스트 업무에 소극적인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모르는 것처럼 위증을 한 혐의도 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지원배제로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 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을 배제한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좌편향 시정을 통해 정책 결정을 시행한 것으로 평가받으려면 투명하게 추진했어야 한다"면서 "이 사건은 반대로 은밀하고 위법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배제 잣대도 '야당 지지', '세월호 시국선언',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등 자율적 심사과정에서 적용돼야 할 기준과도 무관해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김기춘 전 실장 측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예술계 지원배제 업무는 편향된 정부 지원을 바로잡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궤변을 펼친 바 있다.

다만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작성이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참작 사유로 판단해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대통령과 비서실장 등 통치행위상 상정할 수 있는 국가 최고 권력을 남용한 것으로 보고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징역 7년, 조윤선 전 장관에게 징역 6년의 중형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조윤선 전 장관의 경우 블랙리스트 집행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직권남용 등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박근혜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에서 위증을 한 부분은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면서도 위증을 했다"면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일각에서는 항소심에서 형량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률소비자연맹 이민석 사무총장은 "양형의 사유 중 김기춘 전 실장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재판부가 블랙리스트를 김 전 실장의 소신으로 판단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선고"라고 지적하면서 "검찰이 양형 부족을 이유로 항소할 것으로 보이고, 형량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장관과 별도로 재판을 받은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에 대한 형도 선고됐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징역 2년,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편,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의 실체가 인정됨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의 공소사실에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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