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하고 요점만 추리자.

이른바 ‘신정아-변양균’ 파문에 있어 본질은 신정아씨가 기업후원금 모금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이 과정에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여부도 역시 본질에 포함된다.

그런데 파문 초기부터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사생활 들추기’에 주력했던 한국의 많은 언론들.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 ‘누드파문’까지 일으키며 한국 언론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지만 이를 교훈으로 삼기는커녕 여전히 이들의 시선은 ‘과거 그때’에 멈춰 서 있다. 고민이다. 이럴 땐(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때) 어떡해야 하는지.

▲ 경향신문 12월4일자 11면.
오늘자(4일) 조선일보에 학생을 체벌한 한 교사가 이런 얘길 했다고 한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도 반성하는 기색 없이 태도가 불량하다.” 한마디로 말 듣지 않는 걸 체벌 이유로 내세운 셈이다. 그래서 그 학생. 머리에 골절상을 입고 병원신세를 졌다. 이 교사의 전철을 따를 수도 없고. 매체비평 하는 입장에서 고민이 많다.

3일 오전 서부지법 406호 법정에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이 열렸다. 오늘자(4일) 아침신문들 사회면에 이 소식이 ‘주르륵’ 실려 있다. 그런데 신문사들이 공동 편집회의를 한 모양이다. 너무 비슷하다.

경향신문 <“변 전실장과 연인사이 맞아요”>
동아일보 <신정아씨 “변 전실장과 연인관계 맞다”>
서울신문 <신정아씨 “변양균과 연인사이”>
세계일보 <신 “변양균과 연인 사이 맞다”>
조선일보 <“변양균씨와 연인 맞나” 묻자 신정아씨 “네”>
중앙일보 <검사 “변양균 전 실장과 연인관계죠?” 신정아 “네”>
한겨레 <신정아 “변양균과 연인관계 맞다” 시인>
한국일보 <신정아씨 “변양균씨와 연인 맞다” 시인>

제목만 얼핏 보면 이 기사가 사회부 기사인지 연예·오락 기사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동안 연인사이를 부정해왔던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네 사실은 우리 연인사이 맞아요”라며 시인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신정아-변양균’ 파문 초기부터 많은 신문들이 자신들이 ‘정론지’임을 표방하며 의혹을 파헤치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신정아-변양균’ 파문에서 보여준 이들의 행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신문들의 모습과 가판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옐로우페이퍼’의 차이점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그러려니’ 잊고 살았는데 오늘자(4일) 신문을 보면서 다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중앙일보는 아예 ‘Q&A’ 방식을 택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충격! 본지 긴급입수’라는 제목을 달고 가판에서 판매하고 있는 타블로이드지가 가끔 쓰는 방식 아닌가.

▲ 중앙일보 12월4일자 12면.
국민일보 김아진 기자는 오늘자(4일) ‘기자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씨의 뒤늦은 ‘연인 고백’은 두 사람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을 뒤늦게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서 고위 공직자가 그토록 무리하게 권력남용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변 전 실장의 ‘권력남용’과 관련해선 단정하기엔 이른 측면도 있지만, 오늘자(4일) ‘신정아-변양균’ 기사 가운데 가장 나은 걸 고른 게 이 정도다.

그러고 보니 참 웃긴다. “연인 사이 맞아요”라는 데 초점을 맞춘 언론들이 정작 중요한 건 묻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 여부를 확인하는 게 이들의 주목적이었다는 얘길까. 그래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 둘이 연인사이인데, 그게 이번 사건과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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