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제작에 들어갔을 때 계획으로는 대단원이었을 16회는 지난 파스타 중에 가장 혼란스러웠던 내용이었다.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버린 현욱과는 달리 현명한 대처지만 낭만을 기대했던 시청자에게는 다소 차가운 유경의 라스페라 지키기는 실망으로 받아드려질 수도 있었다. 현욱과의 주방이 좋다고 후크송의 후렴 부분처럼 반복했던 유경으로서는 당연히 함께 라스페라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말인즉 옳지만 현욱이 라스페라를 떠난 뒤 아파트에서 오간 말들은 이기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랑을 위해서 자기를 버린 멋진 행동이지만, 사실 곧은 성격의 현욱으로서는 설준석의 폭로로 인해 라스페라 주방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 현욱에게 라스페라를 떠난 사실을 따지며 쌀쌀맞게 등돌리는 모습은 지나친 느낌을 주었다.

애초에 유경이 자립심이 강해서 애인이 셰프일지라도 결코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생각지 않았으니 충분히 가능한 말이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남자라면 삐칠 수밖에 없는 쌀쌀맞은 태도였다. 적어도 현욱이 직장을 떠난 당일에 취할 행동은 아니었다. 유경은 아직은 달콤해야 할 현욱의 애인이다.

애초부터 불안한 사내연애가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은 작가도 알고, 시청자도 아는 상황인데도 유난히 유경만 아니라고 우기는 것 같아 어색했다. 그렇다고 홀로서기 하겠다는 유경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락카에 붙은 선인장에 반색하고 곧바로 마음을 김산과의 화기애애한 장면들은 조금 심하게 말해서 어장 관리 하는 여자로 비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다소 불만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유경과 현욱 사이의 냉기류에 골몰할 짬을 주지 않았다. 현욱이 떠난 라스페라를 찾은 한 중년신사는 인삼 파스타를 예약하고 돌아간다. 그는 은수 방에서 유경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셰프의 셰프로 국내파 요리사들이 비밀리에 준비해온 뉴 셰프 대회 심사를 위해 이태리에서 잠시 귀국한 것이다. 인삼파스타는 모두 기억하듯이 연인 사이였던 현욱과 세영이 불편한 배신의 관계로 돌변하게 된 계기였다.

셰프의 셰프가 굳이 5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을 찾아 와서 인삼파스타를 시킨 까닭은 결과적으로는 세영에게 뒤늦은 진실을 밝히러 온 것이다. 굳이 현욱의 와인을 상하게 하지 않았더라도 인삼 파스타는 완성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세영은 그 자리를 뛰쳐나간다. 연인이자 동료를 배신한 마음만으로도 세영은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지만 당시 요리 경쟁에서 현욱을 떨어뜨린 결정적 원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인삼파스타로 인해 세영은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유경은 모든 것을 얻을 듯한 웃음을 입에 문다. 인삼파스타는 두 여자의 엇갈린 운명의 오브제이다.

온갖 후회와 회한에 휩싸여 뛰쳐나가는 세영을 잡으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던 셰프의 셰프에게 칭찬 받은 유경은 현욱을 녹인 "예 솁"에 이어 "예, 솁의 셉" 필살기로 현욱보다 더 센 마초 셰프의 셰프마저도 미소 짓게 한다. 그리고 현욱에게 그 인삼 파스타는 최현욱이 아닌 서유경의 것이라는 인정과 칭찬을 받고 전날 이태리를 가니 마니 투닥거리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게 곰살 맞은 모습으로 행복해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중요한 복선이 던져졌다. 뉴 셰프 대회 심사위원 위촉을 받고 회심의 미소를 짓던 세영이 셰프의 셰프의 오더를 수행하기 위해 정신없을 때 전해진 부재중 메시지를 통해 인삼파스타 와인 사건과는 다른 현실적인 타격을 암시하고 있다. 5년 간 알려지지 않았던 와인 사건이 셰프의 셰프의 귀국과 함께 식당가에 퍼져버린 것이다. 라스페라의 모든 직원들까지 다 알정도로.

그 사건이 갑자기 퍼져나간 개연성의 근거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세영은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반면 현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예 요리사님이 셰프 따라서 다시 우리 주방에 안 나올까봐 겁나는 것도 사실이고. 두 사람 다 고우나 미우나 매일같이 보는 게 낫겠다 싶다. 솔직히."라고 짝사랑하는 사내의 쓸쓸함을 감추고 털어놓는 김산의 변함없는 따뜻한 배려 덕택에 유경은 궁극적으로 인삼의 쓴맛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인삼파스타의 비법이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알고 나면 간단한 것인지는 요리에 문외한으로서는 판가름할 수 없지만 유경은 우연히 기적을 경험해버렸다. 인삼파스타는 두 여자에게 너무도 다른 모티브가 되었다. 세영에게는 악마의 유혹이었으나 유경에게는 천사의 합창이었다.

그것은 이제 4회밖에 남지 않은 파스타의 결말에 대한 추리를 강력하게 유도한다. 5년 전 현욱이 중요한 콘테스트의 아이템으로 정할 정도의 대단한 아이템을 유경이 해결했으니 그것을 들고 뉴 셰프 대회에 나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뉴 셰프 대회의 부상으로 유학의 특전이 있으니 이태리로 가고 싶어 하는 현욱과 유경의 생이별 위기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결말로 가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렇지 않고는 셰프의 세프가 그저 세영을 혼내주기 위해 등장했다고 보기 어렵고 더욱이 그동안 뉴 셰프대회에 대한 국내파들이 들인 노력이 너무도 크다. 분명 뉴 셰프 대회는 파스타 결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라스페라 요리사들의 갈등, 김산의 짝사랑, 현욱과 세영의 관계 등 지금까지 진행된 관계와 에피소드를 정리할 수 있는 극적인 반전 요소는 현재로써는 그것밖에 없다. 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단원다운 임펙트 있는 결말을 위해서는 유경이 좀 더 행복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과 4회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무엇이 튀어나와서는 정말 막판에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며, 지금까지의 파스타 작가의 성향으로 보아 그런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유경과 세영, 두 여자의 운명을 갈라놓은 인삼파스타가 어떻게든 유경과 현욱의 해피엔딩의 매개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번번이 스포일러를 빠져나갔던 앙큼(?)한 작가의 함정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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