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비난하는 건 현대 사회의 공론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정치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국민은 언제나 그들을 감시하고 비판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거다. 그렇기에 일반인의 정치인에 대한 비난은 일정 정도 이상의 정당성을 언제나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국민이 정치인을 비난하는 논리가 다소 미비하더라도, 정치인은 거의 언제나 이를 넘는 흠결을 갖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이 공리(公理)가 돼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야심차게 준비한 추경안이 22일 국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표결 불참을 불사하려 한 자유한국당에 대한 태도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자기들이 창출한 정권의 추경안 표결에 안이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비판하고 있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니 두 당은 서로의 책임을 부각시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각자 ‘남 탓’을 하는 것 외에는 국민의 비난에 답할 말이 딱히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건 중요하다. 그런데 좀 더 상황을 심층적으로 이해해볼 필요도 있다. 여기서 ‘이해’라는 건 일상어법의 “그냥 네가 이해해라” 같은 얘기가 아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를 ‘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넓은 이해를 갖고 문제에 접근할 때 비판은 좀 더 생산적이 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평범한 진리다.

22일 오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3명이 미달돼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왼쪽)가 본회의장에 들어온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와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생각해볼 것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불참에 대해서다. 여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이날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여당 소속 의원이 추경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일부 지지자들은 ‘배신자’ 프레임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24일 신문 지상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비판은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표 계산도 못하는 안이한 원내전술로 일관한 결과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추경 처리가 급하다고 야당을 압박하고 이례적으로 토요일에까지 본회의를 열어 놓고 여당 전체 의원 중 20%가 넘는 의원들이 빠진 것”이라며 “국회의원들은 4년마다 바뀌고 여야도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말만 그럴듯하게 내세울 뿐”이라고 주장해 정치에 대한 일반적 불신을 부추겼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에 “120석인 집권여당 민주당의 본회의 불참 의원은 26명이나 됐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뒤늦게 기강 확립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과연 지도부가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썼다. 자당 의원들을 단속하고 불출석 의원들의 출석을 독려해도 모자랄 판에 추미애 대표는 페이스북으로 야당 의원들을 비난하는 데만 열을 올렸고 우원식 원내대표 역시 전략 없이 갈팡질팡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여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 불참 이유는 제각기 다르지만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해외의 중요 일정에 참석하는 등 ‘공무’를 수행한 경우가 그렇다. 반면 ‘효도여행’ 같은 개인적 일정을 불참 사유로 드는 의원도 있다. 국회의원이 선거로 당선되고 세비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 경우는 적절한 해명으로 보긴 어렵다.

그런데 의원들의 불참 사유를 통해 전반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22일 추경안이 통과되지 않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던 게 아니냐는 거다. 7월 임시국회의 애초 합의된 마지막 본회의 일정은 지난 18일이었다. 이날 추경안과 정부조직법 처리가 무산되자 정치권에서는 7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8월 2일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언급됐다. ‘효도여행’ 해명의 당사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이 “18일 모든 일정이 끝난다고 예상했지만 의총에서는 8월 2일 본회의 얘기가 나왔다”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즉, 22일 본회의에 불참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 중에는 “어차피 오늘은 처리가 안 될 것 같으니 다른 일정을 효율적으로 소화하자”는 안이한 판단을 내린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직전 원내대표직을 수행했던 우상호 의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직을 맡았던 송영길 의원, ‘친문 핵심’이라고 불리는 전해철 의원 등이 표결에 불참한 것도 이런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이날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자유한국당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간 추경안에 대한 협상 결과는 자유한국당의 태도에 달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3당은 이전까지 추경 처리 반대 입장을 유지했으나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사실상 돌아서면서 자유한국당은 다소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자유한국당이 22일 다소 오락가락하는 태도로 추경안 표결에 임한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드러난 이들의 행보를 통해 기존에 수립된 전략을 추정해본다면 추경안 처리를 막을 수 있으면 막되, 처리될 것 같으면 표결에 참석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추경안이 처리된다고 할 때는 본회의장에 같이 있는 게 모양새가 좋지만, 처리되지 않는다고 하면 8월 2일까지 협상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이날 상황은 이전까지의 국회 협상의 맥락에 다당제 구도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란 결론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자당 소속 의원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유효하지만 적어도 이 상황이 ‘사고(accident)’의 범주 내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좀 더 절박한 현실인식을 갖고 원내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점은 숙제다. 미국 등 서구 정치에서 원내부총무를 ‘whip’이라고 하는데, 이는 ‘whipper-in’을 줄인 말로 사냥을 나갈 때 사냥개를 부리는 사람을 뜻한다. 정치인을 굳이 개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사건을 볼 때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에 그런 ‘기술’이 필요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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