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수행과 관련한 증세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100대 국정과제를 두고 재원 대책 미비를 근거로 비판을 가했다. 이번에는 증세를 중심으로 하는 재원 마련이 논의되자, 조세 저항을 꺼내들었다. 어제는 재원 대책을 문제삼더니 막상 마련하려고 하니까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를 반대하겠다는 의도 이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20일 문재인 정부의 본격적인 증세 논의가 시작됐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던진 화두가 문재인 대통령의 첫 국가재정전략회의의 안건으로 논의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인세와 관련해 "세입 부분과 관련 아무리 비과세 감면과 실효세율을 언급해도 한계가 있는만큼 법인세를 손 대지 않으면 세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면서 "소득 200억 원 초과에서 2000억 원 미만까지는 현행 법인세 22%를 유지하되 2000억 원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과표를 신설해 25%로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추미애 대표는 소득세에 대해서도 "소득 재분배를 위한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으로 현행 40%로 돼 있는 5억 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가재정전략회의 결과 서면 브리핑에서 "일부 국무위원들도 이에 대해 공감을 표시했다"면서 "청와대는 당이 세제개편 방안을 건의해옴에 따라 민주당과 정부와 함께 관련 내용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1일자 조선일보 1, 3면에 게재된 기사.

이와 관련해 21일자 조선일보는 헤드라인에 <민주당이 깃발 든 '부자 증세'>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증세는 국민의 세금 부담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인기 없는 정책으로 통한다"면서 "박근혜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급증하는 복지 지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증세를 추진했다가 조세 저항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3면에서는 <'노무현표 복지+증세' 다시 꺼낸 민주당…정부는 뒤따라가기> 기사에서 "증세론이 제기된 이유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과제를 실천하는 데 돈이 모자라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계산도 깔려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곳에 쓰고 있는 예산을 줄이는 세출 절감으로 95조 4000억을 끌어오고, 세입 확충으로 92조 6000억 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라면서 "그러나 세입 확충으로 마련하겠다는 82조 6000억 원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한 것이라 증세로 충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자산가를 상대로 비과세·감면을 줄이더라도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의 세금 감면 혜택을 늘릴 방침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비과세·감면에 따른 세수 증가 효과는 상쇄될 수밖에 없다"는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5년 내내 올해처럼 세수가 기대 이상으로 잘 걷힌다는 보장도 없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는 "증세와 관련해 청와대와 여권은 민주당이 전면에 서고 청와대와 정부는 일단 뒤로 빠지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부담이 있는 증세에 대해 청와대가 몸을 사린다는 듯한 뉘앙스다. 이처럼 조선일보 기사를 살펴보면 증세에 대해 '노무현표 복지+증세', '민주당이 깃발 든' 등의 표현을 사용해 부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그러나 불과 전날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 과제에 소요될 재원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질타를 가했다. 20일자 조선일보는 <선심 국정과제에 178조 원, 국민 세금을 물 쓰듯> 사설에서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것 가운데 일부를 손질했지만 큰 돈이 들어가는 정책들은 대부분이 그대로"라면서 "그런데 이 비용이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다. 정말 178조 원으로 되는지 의문"이라고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에 들어가는 비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박근혜 정부가 비과세·감면 축소 등 사실상 증세를 해서 문재인 정부 5년간 60조 원의 초과 세수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면서 "새 정부는 그걸로 선심 정책을 편다고 한다. 국민 세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과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20일에는 언론사 입장에서 대놓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반대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비용을 빌미로 비판을 가했고, 21일에는 비용을 증세로 충당하려는 움직임이 제기되자 증세 저항을 유발하려는 시도를 한 셈이다. 조선일보가 제공하는 것은 인지부조화다.

조선일보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세금이라는 서민들에게 민감한 주제를 빌미로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질'을 할 게 아니라, 정책 자체에 대한 보수로서의 인식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정정당당'하다. 조선일보는 언론이지 정당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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