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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눈물보다 진한 땀의 가치[탁발의 티비 읽기] 이경규의 건재함이 반가운 남자의 자격
탁발 | 승인 2010.02.22 14:31

남자의 자격 '먼지 덮인 밥'은 자객의 비수처럼 조용한 타격을 주었다. 남자의 자격 7명은 각기 아파트 공사장, 드라마 세트장, 비탈면 녹화장 그리고 순대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자체로 이미 재미란 부분은 미리 포기한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재미는 적었을지 몰라도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노동에 대한 진지한 존중은 오히려 존경심을 갖게 했다.

특히 이경규, 김성민의 아파트 조와 이윤석, 이정진조의 분량이 나머지 김국진, 윤형빈조와 김태원 보다 월등히 높았는데, 노동 강도에 따라 재미의 강도가 매겨진 흥미로운 결과였다. 말 그대로 체험 삶의 현장이었지만 남자의 자격이 다른 점은 봉사라는 의미를 뚝 떼어놓고 그야말로 체험 그 자체로 접근한 점이다.

   
 

특히 이경규의 아파트 현장에서는 주옥같은 명 애드리브도 몇 개 탄생되었는데, 결코 공사장 노동이 막노동이 아니라는 등이다. 50대의 이경규는 그렇다 치더라도 30대의 펄펄 나는 김성민 조차 성공하지 못한 벽돌 47장을 지고 나르기를 가뿐하게 해내는 아주머니를 보면 그렇다. 노동은 막하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삶을 위해 하는 진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팀처럼 하루 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다음날, 그 다음 다음날도 계속하기 위해서는 숙련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이 참 놀랍다.

아마도 지금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젊어서 공사장 등짐 한 번 진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 세대만 해도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것이 어쩐지 근사한 낭만처럼 여겨졌고, 지금처럼 다양한 아르바이트 거리도 없던 시절이라 남자라면 방학 때 공사장에서 먼지 밥 먹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과거 남자라면 군대와 소위 노가다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젊음의 단계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이틀 일하고 나면 누구나 몸살 한번 겪게 하는 공사장 일이 좋아서 할 수는 없다. 방송이라서 밥맛은 허기와 땀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실제 노동은 소주의 힘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을 끝낸 후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슬레이트 판 위에 돼지 삼겹살을 올려놓고 거침없이 들이키는 막소주의 아찔한 음주는 피로를 잊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날 이경규는 평소에도 즐기는 술이지만 유난히 몸에 짝 달라붙는 소주 맛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해보게 된다. 매일 매일을 그렇게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아직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어느 추운 겨울 신새벽에 해장국집이었다. 전날 친구들과 진탕으로 보낸 속을 달리기 위해서 해장국집을 찾았는데, 한참 뜨거운 해장국을 시원하다 어쩌다 맛있게 먹는데 한 사람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곳 단골인 듯 들어와 말없이 등 돌리고 앉자 해장국집 아주머니는 소주 한 병과 깍두기를 들고 그 사내 식탁에 내놓는다. 그는 소주를 맥주잔에 따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손으로 깍두기 하나를 입에 쏙 넣었을 뿐이다. 남은 반병도 그렇게 마찬가지로 비우고는 '잘 먹었수'다고 무뚝뚝하게 한 마디 남기고 자리에 일어섰다. 그는 매일 새벽 거리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이었다.

당시로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도 아니지만 전날 밤을 흥청망청 보낸 나로서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의 경험 때문에 이후 딱히 돈이 필요해서가 아닌데도 공사장을 찾아 며칠 일을 해보기도 했다. 그때 흘린 땀은 매일 말없이 소주 한 병을 들이키는 그 중년의 사내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이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나왔다. 일을 마치고 추렴해서 마련하는 저녁자리의 돈도 아까워서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오래 잊고 지냈던 노동의 기억을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 끄집어냈다. 누구나 살면서 원치 않은 고생을 겪는 일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남자라면 대표적으로 군대가 그럴 것이고, 요즘도 학비 마련을 위해 공사장을 찾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꼭 그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는 있다. 그렇게 온몸이 부숴질 듯한 노동은 눈물보다 진한 땀의 가치를 알게 해주고, 술이 유흥이 아니라 위안이고 때로는 보약인 것도 배우게 된다.

남자의 자격을 마칠 즈음 이경규는 특유의 너스레로 고백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편한 일인지 알았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한다. 일찍부터 개그맨으로 방송일을 한 그가 늙으막(?)에 경험한 노동은 딱 하루에 불과하지만 땀의 가치를 알게 해준 모양이다. 아무도 원치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이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 노동, 그것은 생고생이 아닌 남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첫걸음이다.

남자의 자격은 갈수록 진화하는 면을 보이는데, 특히 버라이어티의 살아있는 교과서 이경규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요즘은 아우들이 형보다 나은 형편이지만 남자의 자격을 보자면 여전히 형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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