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국회와의 사이에 놓여져 있던 정치적 폭탄들의 ‘뇌관 해체’에 나서면서 정국에 숨통이 열릴지 주목된다. 청와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셈이지만 보수세력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반발 여론을 키우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등을 임명했다. 애초 야권이 문제 삼았던 부적격 후보자 중 한 명인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조대엽 후보자는 “본인의 임명여부가 정국 타개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사퇴의 길을 택하겠다. 이 선택이 부디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조대엽 후보자의 사퇴는 그간 야당들이 국회를 경색시키는 명분으로 작용했던 ‘인사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간 야당들은 송영무 조대엽 두 사람의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평가하며 지명 철회를 요구해왔다. 야당들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청와대로서는 이들의 요구를 절반 정도는 들어줌으로써 ‘명분’을 주려는 시도를 한 셈이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국회를 대치전선으로 이끈 또 하나의 폭탄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이다. 이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간 이 문제로 국회 일정을 보이콧 하고 있던 국민의당을 찾아 사과의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 일정 복귀를 결정했다.

청와대가 ‘두 가지 폭탄’의 해체를 강행한 것은 추경이 7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돼야 한다는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보좌관 회의에서 추경과 인사를 연계시키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국회에 추경 처리를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공개된 6월 고용동향에서 청년실업률이 18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고, 체감실업률로는 청년 4명 중 1명이 백수라는 점이 드러났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정말 어깨가 무겁고,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다”라고까지 했다.

추경이 청년실업률 개선에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필요성은 한국은행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행은 이날 올해 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8%로 상향 추정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불어 주목할 대목은 2016~2020년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2.8~2.9%로 추정했다는 대목이다. 잠재성장률 추정치가 3%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재성장률에 비추어보면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잠재성장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적절한’ 정도다.

그럼에도 이주열 총재는 추경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고용시장 여건이나 가계소득 여건 등 질적 측면에서 보면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정부의 추경도 성장세를 확대하는 데 초점 맞춘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계획대로 추경이 편성돼 집행된다면 고용시장에 질적 양적 개선이나 청년고용 증대 등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주열 총재의 이러한 발언은 금리를 동결한 것에 대해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면피’를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추경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국회에 대한 압박 근거로 작용할 수 있게 됐다.

일단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은 추경 처리와 관련해 여지를 두면서도 청와대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임명 강행한 것에 대한 비판을 키우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는 13일 보수언론의 지면을 통해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조 후보에 비해 하자가 더 심각한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는 야당들 반대에도 임명을 강행했다”면서 “비판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통이다. 더구나 뒷거래라는 느낌까지 주고 있다”며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문 대통령이 또 다른 문제의 인물인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어제 저녁 청와대로 급히 불러 임명장을 수여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동아일보 역시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인사는 인사대로, 추경은 추경대로 논의해 달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그래 놓고 물밑 조율로 ‘조대엽 카드’를 버리는 대신 송 장관은 살리면서 추경 심의와 맞바꾸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쨌든 청와대가 일정 수준의 양보를 했고 여기에 야당들이 적정 수준에서 호응해야 한다는 점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쟁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은 추미애 대표 문제다. 애초에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추미애 대표이기 때문에 사과를 한다면 추미애 대표 본인이 결자해지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청와대가 직접 국민의당에 사과를 함으로써 당 대표가 ‘배제’된 모양새가 돼버렸다. 청와대가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에 사과를 하는 과정에서 추미애 대표를 언급한 일이 없다고 브리핑을 하면서 혼선은 배가됐다. 결과적으로 추미애 대표만 ‘스타일을 구긴’ 모양새가 돼버렸다. 일각에선 ‘추미애 패싱’이란 말까지 만들어 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3일 오전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주한 호주대사 접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이 틈을 놓칠 이유가 없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언론을 통해 “임종석 실장이 당 지도부에 ‘(추미애 대표는) 대통령도 못 말리는 언컨트롤러블(uncontrollable)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과 표명을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의 이런 발언은 과거 추미애 대표가 국회 환노위원장이던 시절 당의 방침에도 불구 노조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징계를 받은 과거를 상기하게 한다. 언론은 추미애 대표가 최근까지도 인사 문제 등으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대립 충돌했다는 사실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이러니 추미애 대표의 의도와 앞으로의 전망을 두고 해석이 분분해질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가 이날 지면에 실은 강찬호 논설위원의 글이 대표적이다. 강찬호 논설위원은 추미애 대표의 발언을 돌발적으로 나온 것으로 보면서도 이후 강공을 이어간 것에 대해서는 내년 지방선거 대비와 청와대에 대한 견제구의 성격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해석은 여의도 주변에서는 ‘정설’에 가깝다.

추미애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국민의당에 ‘문준용 특검법’이라는 명분을 줬고 그런 점에서 정치적으로 미숙한 점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틀린 말’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국민의당이 이 발언을 문제 삼으며 매달린 방식은 “너나 나나 다 똥 묻은 개”라는 식의 구태한 정치의 문법 그대로였다.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문준용 특검법’은 내려놓고 가치와 노선이란 측면에서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는 것이 옳다. 추미애 대표와 청와대를 이간질 하는 행동을 지속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언론 등은 내심 추미애 대표가 청와대에 복수(?)를 하고 ‘자중지란’에 빠지길 원하는 듯하다. 그러나 추미애 대표 입장에서도 정치적 실기를 반복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당청 간의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시급한 추경과 정부조직법의 국회 통과에 역점을 두어야 할 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당청 간의 화합을 모색하는 자리를 만들어 상황을 수습한다면 더 이상의 논란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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