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사내 연애가 아니더라도 경험 없는 풋내기 사랑은 참 어렵다. 이번 주 파스타는 그 사랑이 어떻게 아프게 하고 또 단련시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한수산의 소설 중 유명한 아포리즘 '성이여 계절이여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를 떠올리게 한다. 거꾸로 사랑을 하게 되면 반드시 겪게 되는 아픔과 상처는 피할 수 없는가보다.

13회에서, 은수를 설득시키고 기분 좋게 돌아온 현욱을 본 세영은 출근하려던 유경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오세영의 기본 성격이 성공을 위해서 사랑도 배신할 정도로 목적을 위한 수단불사의 케릭터라는 전제 속에 개연성은 있으나 잠시의 망설임 없이 바로 유경에게 현욱에 대한 일들을 털어놓는 장면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세프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듣는 유경은 내색도 못할 아픔을 속으로 삭혀야 했을 것이다.

사실 딱히 악역이 없이도 신통하게 잘 돌아가는 드라마 파스타는 돌연 변이 같다. 드라마가 영화와 유달리 다른 점은 갈등이라고 개론에 나오지만 파스타는 특별히 갈등에 집중할 틈도 없이 벌써 후반으로 치닫고 있다. 인물 간의 갈등에 목마를 새가 없이 시청자들은 공효진의 '배시시 웃음'에 홀딱 빠져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조차 조금 단련될 만하니 현욱의 버럭에 길들여져서 이 유치한 캔디시 드라마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여성취향의 파스타지만 남자라면 아마도 다 필요 없고 공효진의 배시시 웃음 몇 번이면 한 시간쯤 아무렇게 지나도 좋을 것이다. 여자조차 빠지게 만드는 공효진의 배시시는 항상 시청자를 조련한다.

그러다보니 오세영의 잘못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그로 인해 현욱이 상처받은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현욱에게 얼마나 큰 것인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다. 배우들이나 받아봤을 대본의 설정을 마치 읽어본 것처럼 그들의 관계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이미 인정해버리고 있다. 해서 오세영이 좀 이상하게 라스페라 주방으로 들어오고, 분명 동등한 세프임에도 부주방장이나 다름없이 파스타 라인에 매여 있어도 흠잡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파스타 시청자들이 순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오세영의 존재감이 식은 크림스프처럼 미미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해서 현욱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오세영 애틋함에 몰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유경에게 세영이 주저 없이 '현욱이 내 꺼야'라고 말하게 한 것은 의도적인 '유경 아프게 하기' 작전에 불과하다. 이해할 만도 한 것이 유경과 현욱이 사랑하기까지 너무 장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주방에서의 애정행각을 발견한 은수가 첫번째 장애가 될 뻔 했지만 휴머니즘을 감춘 독재자 현욱의 깊은 마음 씀으로 시청자를 안도케 하더니 결국 들통 나게 될 비밀연애의 고통을 유경에게 집중시켰다. 13회에서 알렉스가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없다'는 간접적 단념 시도에 '그 토끼가 같은 토끼'라며 꽤나 멋지게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재치 넘치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역시나 토끼는 두 마리일 수밖에 없었다.

제과점에서 발렌타인 초콜릿을 퇴출 요리사들에게 발각된 후 유경은 왜 잡아떼지도 않느냐고 답답해 하지만 때마침 파스타 라인으로 옮겨달라는 정호남 대신에 그릴라인으로 옮겨간 후 쏟아지는 현욱의 구박에 아파한다. 처음에는 벌주는 현욱을 향해서 벌주니 눈치 보지 않아서 좋다며 또 배시시 하던 공효진도 꾹 참는가 하더니 결국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시작 했어'라는 폭탄선언을 할 정도로 견디지 못해 한다.

아무리 공과 사를 가르는데 추호의 틈도 없는 세프인줄 알면서도 매에 장사 없다고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유경도 못 견디는 것이 당연하다.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 한들 적어도 때리는데 아프지 않으면 그것은 식물인간이다. 사람이니 사랑도 하고, 아프기도 한 것이 당연하다.

파스타 13,14회는 후반 락커부터가 진짜배기다. 지칠 대로 지친 유경이 모든 것을 다 밝히자며 눈물짓는 장면이다. 셰프는 잘되는 것 같은데 자기는 안된다면서 뛰쳐나가고 한참을 고민하던 현욱이 레시피 노트를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유경을 쫓아가는 것 그 단순한 동선에 이번 주의 알맹이가 모두 들어있다.

그 사이에 잠시, 유경에게 현욱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어설프게 찜하려 했던 세영에게 마치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현욱이 "내가 더 좋아한다. 서유경"이라고 말하게 한 것은 유경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작가의 다짐일 수도 있고 오세영이란 케릭터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 둘 다일 수도.

넌 뭘 먹고 그렇게 이쁜 말만 하냐며 공효진이 이뻐 미치겠다는 이선균의 표정은 멜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의 정제되고 멋으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마치 실제인 듯 리얼하다. 14회의 최고표정은 단연 이 장면.

남녀관계의 기본공식을 깨고 시작한 파스타지만 성공 때문에 남자를 배신하고 곤경에 빠뜨린 여자가 너무 자신 있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었다. 그 말에 세영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지어 살짝 동정심을 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시청자는 아주 빨리 세영의 슬픈 표정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서작가) 유경을 쫓아간 (그 사이의 시간이 꽤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버스정류장에 머물고 있는 유경에 대해서는 너그러이 용서키로 하고) 현욱은 다시 파스타 라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런데 유경은 "셰프빽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 말에 현욱은 "나 점점 네가 더 이뻐진다"며 좋아 미칠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파스타 제작진의 발칙한 조련이 또 다시 시작된다. 현욱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아하는 소리, 서유경이 예 셒 하는 소리'라고 하며 드디어 입맞춤을 한다. 그런데 때마침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서고 길 건너편에서 훔쳐보던 설사장은 헉 소리 내며 놀란다. 여기서 현욱의 대사나 설사장의 놀람은 모두 시청자 빙의나 다름없다.

어디 현욱만 그렇겠는가. 파스타에 조련받기 원하는 시청자 모두는 유경이 다양한 톤과 표정으로 말하는 "예 셒"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가. 소녀시대 수영까지도 개인기라며 달랑 "예 셒"을 흉내를 낼 지경이다. 요즘 드라마 보는 눈이 까다로워서 주연에만 결코 집중하지 않는다. 조연도 보고, 하다못해 단역까지도 꼼꼼히 챙기게 된다. 그러나 파스타를 볼 때는 그런 기존의 관행을 모두 버리게 된다. 조금 과장한다면 조연. 단역 다 버리고 이 둘만 어디 무인도에 버려두고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닭살행각에 흠뻑 취하고픈 충동을 줄 정도이다.

사랑 참 어렵다는 이승철의 노래가 현실 속에서는 딱 맞는 것인데, 이 비현실적인 연애 이야기에 비판의식조차 포기하게 되는 것이 참 희한한 일이다. 나이 서른 넘긴 두 남녀가 딥키스를 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상황에서 버스로 가리고, 볼에다 입 맞추고 결정적 장면은 어둡게 가리고 하는 이 감질나는 파스타가 진짜 성질나게 재미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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